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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내누 Oct 22. 2022

제주도 가볼만한 곳 추천 받습니다

우리들의 해방일지: 남편 121일째

10월 22일 토요일 맑고 따뜻


육아휴직이 이제 점점 후반부로 접어들고 있다. 그건 아쉽지만 대신 그만큼 우리 가족이 고대하는 제주도 한 달 살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일기를 읽는 분들이 저마다 마음에 품은 제주도 히든 스팟을 하나씩 추천을 해주신다면 참으로 감사할 것 같다.


전에 어떤 일기에서인가 언급한 바 있었지만 나는 원래 20대 때까지는 계획적인 성향이 아니었다. 아내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예전에 연애 초반에 제주도 여행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항공권과 숙소와 렌터카만 미리 예약했을 뿐 그 외에는 모든 걸 즉흥적으로 결정했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키우면서 특히나 여행에 있어서는 더욱더 MBTI에서 J의 성향이 강해질 수밖에 없었다. 사실 성향과 상관없이 누구라도 아이 둘을 데리고 제주도 한 달 살기를 한다면 당연히 어느정도는 미리 계획을 세울 것이다.


계획을 미리 세우면 타임머신을 탄 기분이 든다. 물론 계획을 한다고 다 완벽하게 그대로 될 리는 없다. 계획대로 안 된다고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도 없다. 그러나 계획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일단 계획을 세우려면 지금 정보를 알아야 하고, 미리 결정을 해야 하며, 계획한 일정에 맞추기 위해 필요한 것들은 예약도 해야 한다. 즉 계획은 그냥 나중에 언젠가 이러면 좋겠다는 막연한 기대가 아니라 굉장히 구체화된 미래를 현재로 가져오는 행위인 것이다. 계획을 세움으로써 그 미래는 현재와 연결되기 시작한다.


아내와 네이버의 '마이플레이스' 기능을 이용해 수집하던 장소들을 좀 더 구체화하면서 엑셀 정리 작업도 시작하니까 한 달 살기라는 긴 기간임에도 계획을 세우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게 느껴졌다. 사실 몇 월 며칠에 어디에 가고 몇 시에 어디로 이동하고 이런 계획이 아니라서 그렇다. 그보다는 5명 전원이 다 가는 곳, 너무 어린 둘째는 매일 여기저기 다니기엔 무리이므로 한 명이 집에서 얘를 보고 나머지 3명이서 가는 곳, 이런 식으로 멤버 구성에 따라 분류했더니 아주 심플해졌다. 아마 갈 때쯤엔 더 구체화되긴 하겠지만 대략 하루에 가장 메인 방문지 하나를 정하고 나머지는 그 동선이나 주변에 있는 곳을 임기응변으로 추가하게 될 듯싶다.


제주도 한 달 살기를 기대하는 건 나뿐만이 아니다. 오늘 아내 사촌동생이 집에 놀러 오는 날이라 우리 집에 들리신 장모님도 오시자마자 제주도 갈 짐 얘기부터 꺼내셨다. 친구분에게 전화가 와서 이야기를 나누시다가 대뜸 연말에 제주도 한 달 살기 해야 돼서 바쁘다고 한다. 사실 지금 바쁠 건 하나도 없는데 그냥 자랑이 하고 싶으셨던 것 같다. 더군다나 장인어른이 일 때문에 같이 못 가시니까 오히려 더 좋아하시는 눈치다.


장모님은 애들을 봐주시고 집안일이나 음식 등을 적극적으로 해주실 테니 정말로 큰 도움이 되겠지만, 사실 나는 그렇게 도움을 받으려고 모시고 간다기보다는 여행의 재미를 알려드리고 싶은 마음이 크다. 전에 제주도 가셨던 이야기를 들어보면 정말 어르신들 패키지 관광버스 여행은 갈 게 못 되는 것 같다. 아주 유명한 관광지만 몇 군데 돌아보면서 남들 시간도 맞추느라 대충 인증샷만 남기고 이동하기 바쁘다. 단체 관광에 적합한 곳만 다니려면 당연히 식당이든 카페든 상점이든 제한적이고 정해진 곳들이 뻔하게 있다. 이번에 우리와 지내시는 동안에 지금까지의 여행과는 다른 차원의 '자유 여행'의 재미를 알게 해 드리는 게 목표다.


하지만 사실 내가 장모님 보다도 가장 이번 제주도 한 달 살기에서 기대하는 건 이 여행이 첫째의 생애 첫 기억으로 남는 것이다. 나 포함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주 아기 때는 기억하지 못한다.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부터 어렴풋이 드문드문 기억이 나고, 그보다 어린 유치원생 시절은 정말 인상적이었던 몇 장면만 기억에 남아있다. 어차피 기억에는 5살 시절이 아주 조금만 남을 거라면 우리 첫째의 인생 최초의 기억이 '부모님이 동생이 태어나 휴직을 하고 온 가족이 정말 신나게 한 달 동안 제주도에서 살았던 시간'중에 있었으면 좋겠다.


연초에 숙소 계약금을 보낸 것을 신호탄으로 시작된 5인 가족 제주도 한 달 살기는 부부가 육아휴직을 하면서부터 신기루가 아닌 오아시스가 되었다. 항공권과 차량 탁송을 예약함으로써 우리는 거기에 한발 더 다가섰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는 지금 이미 마음은 12월의 제주도를 거닐고 있다.


이제 제주도로 가는 날이 46일 남았다. 갔다가 돌아올 때까지 휴직이 며칠 남았는지는 세지 말자.


P.S 60대 할머니 혹은 5세 아이와 가면 좋은 제주도 여행지 댓글로 추천 해주신다면 계획에 참고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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