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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내누 Oct 22. 2022

먼지가 되지 않길

우리들의 해방일지: 아내 121일째

10월 22일(토) 뿌옇고 따듯한 날


하루하루에 크게 의미 부여하게 된다. 휴직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여유로운 시간은 소중하다. 엄마는 내 얼굴이 좋아졌다고 한다. 나도 뽀로로처럼 '노는 게 제일 좋다'.


아이를 키우다 마음이 순백처럼 깨끗해지는 순간들이 있다. 며칠 전엔 아침을 먹을 때 우리가 전에 방문한 적이 있었던 '레고랜드 부도' 관련 기사를 보고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이가 '부도'라는 어려운 말을 당연히 이해하지 못하고 그게 뭐냐고 묻길래 남편이 설명했다.


"아빠가 너한테 돈을 100원 빌렸는데, 돈이 없어서 못 갚으면 어떻게 되겠어?"

"그래도 괜찮아~ 안 갚아도 돼."


순간 남편과 나 모두 이 순진무구한 아이의 마음이 너무 소중해 함박미소가 절로 났다. 그래 너는 괜찮겠지만 이 세상은 그렇지 않거든. 우선 그들이 빌린 돈이 100원이 아니라 2000억 원인 것부터가 문제고..


이런 여유로운 대화는 우리가 휴직 중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아이가 2살에서 4살이 될 때까지 아침마다 나는 아이를 제대로 깨운 적이 반, 아이가 일어나든 말든 일을 하거나 회사에 출근한 게 반 정도다. 아침마다 엄마의 목소리를 들으며 손길을 느끼며 이야기를 나누며 일어나는 아이들이 있는 반면, 그러지 못한 우리 아이 같은 경우도 있다. 이제 5살이 되어 동생이 태어남으로 생긴 엄마와의 풍족한 시간. 아이는 행복하지만 한편 이 행복이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함을 동시에 느낀다.


그렇다고 해서 평생 아이 곁에서 손가락만 빨며 살 순 없겠지만 어떻게 하면 나와의 이 금쪽같은 시간을 아이도 충만하게 보낼 수 있을까? 우리들의 12월이 기다려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오늘은 이종사촌동생이 놀러 왔다. 5년여 동안 신문기자일을 하다 때려치고 평범한 회사원이 된 동생은 바뀐 생활에 만족한다고 했다. 서울살이에는 지쳐 보였다. 바퀴벌레가 나오는 자취방에 사는 게 아무렇지 않은 28살 아가씨가 안쓰러워 다음엔 부동산에 같이 가자고 했다. 어떻게든 좀 더 쾌적한 공간에 지내며 행복한 이십 대를 보냈음 하는 마음이다.


내 아이의 순수한 모습도 사촌동생의 이십 대도 나의 자유로운 생활도 다 때가 있다.

그러니 우리 모두 지금을 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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