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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내누 Jul 19. 2022

딸과 아들의 차이

우리들의 해방일지: 남편 25일째

7월 18일 월요일 후덥지근


오늘은 내 생일이었다. 아내는 어젯밤 12시부터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줬다. 미리 주문했던 선물도 타이밍 좋게 오늘 아침 배송됐다. 아내에게 전달할 물건을 주고 지금까지 유축해둔 것을 받아오느라 조리원도 들렸다. 말로만 듣던 유축의 결과물을 이렇게 실제로 받아서 집에 가져오니 뭔가 반으로 분열되었던 우리 가족이 다시 하나로 뭉칠 날이 머지않았단 생각이 들었다. 집에서 조리원 방문했을 때 받은 생일카드를 읽으며 감동도 했다. 비록 어디 좋은 데 갈 수도 없고 그냥 집에 있지만 근래 생일 중에 가장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았다.


요즘은 카톡에 생일이 뜨다 보니 아침부터 저녁까지 많은 지인들의 축하도 받았다. 절친들은 선물도 보내줬다. 물론 간혹 별로 내 생일에 관심 꺼도 될 것 같은 불편한 사람의 성의 없는 축하나 그냥 주민등록번호가 입력된 결과로 자동으로 보낸 듯한 각종 업체들의 문자메시지는 그리 달갑지는 않았다. 그래도 굳이 비교하자면 오늘이 내 생일이라는 걸 저절로 여러 사람에게 알려주는 것이 아무도 모르는 것보다는 긍정적인 면이 많은 것 같다. 덕분에 첫째 유치원 등원 이후 오후까지 혼자 쓸쓸한 시간을 보내지 않을 수 있었다.


특히 좋았던 것은 이렇게 생일이라고 뜨는 걸 보고 예전에 친했던 사람한테서 오랜만에 연락이 오는 경우였다. 나도 이참에 그분의 프로필 사진을 보면서 근황을 확인했다. 그분은 내가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는 딸 하나가 있는 아빠였는데, 어느새 아들도 낳아 애가 둘이었다. 이야기를 나눠보니 딸은 지금 7살이고 아들은 이제 막 돌을 지났다고 했다. 나는 아들이 얼마 전 생일 지난 5살이고 딸은 태어난 지 2주 됐다고 알려주었다.


"근데 너는 아들 키우다가 딸 키우면 발로도 키우긴 할 거다ㅋㅋ"

"그렇게 많이 차이 나나요?"

"아들이 힘들지 여자애는 그닥ㅋㅋ 아들은 망나니다 진짜로ㅋㅋ"

"저는 아들만 키워봐서 아직 잘 모르지만 아들 키우면서 인내심이 좋아져요ㅋㅋ"

"야 딸 7년 키우면서 소리 한번 안 질렀는데 아들 1년 키우면서 어찌나 열받은 적이 많던지ㅋㅋㅋㅋ"


공교롭게도 지금까지 가까운 지인 중에는 아들과 딸이 다 있는 집이 없었다. 애 하나씩만 키우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아들 키우는 게 더 힘들다더라 하면 딸 키우는 사람이 발끈하곤 했다. 물론 사람은 늘 자기가 제일 힘든 법이다. 그래서 둘 다 키워본 사람이 저 말을 해주니까 정말 신뢰가 가고 희망적인 기분이었다.


그런데 저녁에도 간접적으로 딸 키우기를 미리 체험해볼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내 생일이라 집에 또 오신 어머니가 놀이터에서 첫째의 여자 친구 A를 우리 집에 같이 데려온 것이다. 일단 애가 둘이 되면 두배로 신경 쓰고 더 놀아주기 힘들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애들끼리 더 잘 놀았다. 내친김에 저녁까지 우리 집에서 같이 먹고 내 생일 케이크 불기도 같이 했다. 5살 여자아이가 집에 있는 게 처음이라 신기하고 독특한 경험이었다.


일단 둘 다 공통적으로 밥은 별로 잘 먹지 않았다. 첫째가 친구가 같이 있으면 밥을 훨씬 잘 먹지 않을까 기대한 나로선 실망스러웠다. 반대로 다른 집 애들도 밥 먹이기 힘든 건 별반 다를 거 없구나 위안도 됐다.


하지만 밥을 안 먹어도 여자아이는 식탁 의자에 앉아는 있었다. 우리 아들은 의자에서 일어났다가 뒤돌아 앉았다가 식탁 아래로 내려갔다가 돌아다니고 쉴 새 없이 부산했다. 놀 때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자기 집인 것과 남의 집에 놀러 온 것의 차이도 있겠지만, 상대적으로 A는 차분했고 위험한 행동도 하지 않았다. 뭔가 물어보면 대답도 잘하고 의사소통이 잘 됐다. 엄마가 5분 뒤에 데리러 오시면 집에 가야 한다고 하자 바로 수긍했다. 엄마가 오자 같이 하던 놀이를 바로 끝내고 신발을 신으러 나왔다. 불과 얼마 전에 아내가 첫째를 데리고 A의 집에 갔다가 집에 안 간다고 떼를 쓰고 난동을 부려서 난처했다고 했던 기억이 났다.


이제 나도 내일모레면 드디어 딸을 키우게 된다. 5년이나 애를 키워놨는데 또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신생아부터 키울 생각을 하니 막막하다. 힘들겠지만 그래도 일단 아들보다 덜 힘들 거라는 행복 회로를 돌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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