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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내누 Jul 19. 2022

조리원에서의 하루

우리들의 해방일지: 아내 25일째

7월 18일(월) 더웠던 것 같다


조리원에서의 하루를 기록해본다.


아침 7시쯤 기상 (신생아실 울음소리에 반응하고 눈이 떠진다)


"산모님, 수유하실래요?"


우리 아기 잘 잤나 하고 아이 상태를 보러 가면, 신생아실 선생님이 막 목욕을 마친 나의 아기를 안고 물어본다. 아직도 작디작은 내 아기. 신생아실 선생님 품에 안겨 우는 모습을 보며 차마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아이를 안고 방으로 와서 밤새 퉁퉁 불은 가슴을 마사지한다. 아이는 잠시 방에 있는 아기침대에 내려놓는다. 그 잠시의 시간이 아이에게는 그렇게 서러울 수가 없다.


하지만 그냥 밤새 불은 가슴을 아이에게 내밀 순 없다. 모유를 먹일 때 처음 나오는 전유는 포도당이다. 그렇게 영양가 있는 게 아니다. 처음 나오는 전유는 말갛다. 이걸 짜내다 보면 좀 더 진한 모유가 나오는데, 거기에 단백질이 많다. 아직 신생아라 빠는 힘이 약하기 때문에 이걸 짜내지 않고 모유를 직수하면 별 영양가 없는 숭늉 같은 것만 잔뜩 마시고 물배 채우고 그만 먹겠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잠시 아이가 우는 동안 가슴을 마사지하며 전유를 뽑아내고(?) 아이에게 젖을 물린다. 배가 고팠던 건지, 엄마 젖이 그리웠던 건지, 아님 그냥 단순히 뭔가를 물고 빨고 하고 싶은 건지 사정없이 나에게 매달려 가슴을 쭉쭉 빤다. 그러는 동안 밤새 단단하게 뿔은 내 가슴도 부드러워진다.


그렇게 수유를 하다 보면 아이는 금세 잠이 든다. 그런 아이를 다시 깨워서 일으켜 트림을 시킨 뒤 이번엔 분유로 보충을 해준다. 2시간 30분에서 3시간마다 아가는 먹어야 한다. 우리 아기에게 내 젖이 애피타이저라면 분유가 메인이다. 사실 직수를 하는 건 내 가슴의 순환을 위해서가 더 크다. 영화에 나오는 '힐러(healer)'처럼 아기가 내 가슴통증의 주치의다.


그러다 다시 분유 수유를 하다 보면 또 아이가 잠이 들기에, 깨워가며 다 먹이고 다시 트림을 시킨다. 그렇게 눕혔다 안았다 방향 바꿨다 가슴 주물렀다 하다 보니 손목과 손 마디마디가 다 아프다. 손목 압박 밴드를 찾아서 손에 다시 끼운다.


그러고 나니 1시간이 지났다. 밥이 오는 소리다. 8시 30분쯤 밥이 오고 9시에 모자동실 시간이라 아기를 데려가야 하니, 밥도 빨리 먹어야 한다. 그나마 이곳에 있기에 매끼 국, 밥, 반찬들이 고루 갖춰진 밥을 제시간에 먹을 수 있다. 군대는 아니지만 10분 안에 허겁지겁 밥을 먹고 양치 세수를 하고 아이를 받으러 갔다.


오전 9시부터 10시까지는 1시간의 모자동실 시간. 밤새 잠을 잘 자지 않은 아이는 오늘 낮에 미뤄둔 잠을 잤다. 며칠 전부터 아이가 밤에 잠을 잘 안 잔다고 한다. 신생아실 선생님들이 한두 시간씩 안고 있다가 내려둔다고 한다. 벌써 손을 탄 것일까? 나 역시 자는 틈틈이 캠을 본다. 아이가 눈을 뜨고 있거나 없을 때가 많다.


'아까 밥 먹은 지 얼마 안 됐는데... 또 수유하나? 기저귀 가나?' 


다시 제자리에 온 아이. 그렇지만 또 금방 보채고 신생아실 선생님이 아이를 데리고 간다. 어제 새벽의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나도 모자동실 시간엔 아이를 깨워서 낮에 놀고 밤에 자게 하고 싶다.


하지만 100일 전의 신생아에게 낮과 밤의 구분이 없다. 자기 자고 싶을 때 자는 거라고 한다. 내 마음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는 밤을 새 공부를 한 것처럼 사정없이 잔다. 10시 30분쯤, 아이를 신생아실에 데려다주었다.

 

가슴엔 또다시 젖이 찼는지, 말간 전유가 또 조리원 옷을 타고 흘러내린다. 아참, 수유패드 붙이는 것을 깜빡했다. 옷에 붙여도 자꾸 떨어지는 수유패드. 덕분에 내 가슴은 2,3시간마다 핑-도는 젖으로 방금 세수를 하고 물이 튄 사람처럼 젖어든다.


너무 자주 유축하면 안된댔으니까 최대한 방에서 버틴다. 11시 반쯤, 잠시 쉬면서 신생아실을 지나는데 또 먹을 시간인가 보다.


"산모님, 데리고 가서 잠깐 수유하시고 이것도 먹여주세요."


신생아실에서 유축한 모유를 담은 젖병과 아이를 안겨준다. 방에 데리고 와 아이에게 잠시 젖을 물리고, 바로 젖병의 모유를 줬다. 배가 고팠는지 잘 먹는다. 마찬가지로 이제 내 젖은 애피타이저쯤으로 요기를 하기엔 부족하므로 남은 가슴의 젖을 빼기 위해 유축을 젖병과 유축기를 꺼내왔다. 오른쪽 10분, 왼쪽 10분 총 20분의 유축 시간 동안엔 tv를 본다. 유축할 땐 tv 보는 것 외에 동시에 할 수 있는 게 없다. 유축하는 중에 조리사 선생님이 점심밥을 가져다주었다. 유축한 젖양이 다행히 줄어들고 있다. 신생아실에 유축한 젖병을 가져다주고, 밥을 먹었다.


점심을 먹은 뒤, 지금이야말로 좀 여유롭게 쉴 수 있는 시간이다. 청소 타임이기도 하다. 공용공간에 가서 좌훈기를 한다. 좌훈기는 자궁을 조여주는 안마의자 같은 거다. 온열 기능도 있다. 좌훈기를 하면 젖도 갑자기 흐르고 오로도 나오는데, 자궁 수축을 도와주기 때문인 것 같다. 반대로 아기에게 수유를 해도 자궁수축이 된다. 여자의 가슴과 자궁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참 신기한 자연의 신비다.


어제부로 친한 산모들도 거의 나가서 아는 사람이 많진 않지만, 잠시 공용 소파에 나온 다른 산모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늘은 읽고 싶은 책이 있어서 금방 방에 들어왔다. 계속 책을 읽어나간다. <나의 이름은 ㅡㅡㅡㅡ엄마입니다>라는 책이다. 결혼과 임신, 출산을 함으로써 자기 이름을 잃어버리는 한 여자와 그녀의 딸의 이야기다. 아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엄마가 아이를 얼마나 끔찍이 사랑하는지 구구절절 표현된 책이기에 읽으면서 여러 번 울었다. 나도 두 아이의 엄마고 이들이 나에게 정말 소중하다. 그치만 아이 엄마가 되면서 당연스럽게 내게 요구되는 엄마로서의 의무는 무겁고 버겁다. 나는 그럴 깜냥이 될까. 그런 사람일까. 잘 모르겠지만 이미 나는 두 아이의 엄마다.


이 책을 금세 다 읽고 나니 벌써 오후 3시다. 좌훈기를 하며 이런저런 연락도 하고, 책에 대한 소감도 책을 선물해준 지인에게 전달했다. 방에 돌아와 두 번째 책도 읽다 보니 금세 오후 4시가 넘었다. 오후 5시 20분엔 밥이 나오고, 6시부턴 다시 모자동실. 쉬면서 밥을 먹으며 tv를 보았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3회가 나오고 있다. 자폐가 있는 변호사 우영우의 이야기다. 재미있다.


다시 아이를 데리고 왔다.


"산모님, 아이 6시 30분쯤 수유하시고, 이거 먹이세요."


조리원에서 먹는 분유와 나가서 먹일 분유를 혼합한 혼합분유 70ml와 아이를 받아 방으로 왔다. 아이는 배가 고픈지 금세 보채고, 나는 또 애피타이저인 내 젖을 물린다. 젖을 물면 금세 진정이 되고 쉽게 잠이 드는 아이. 아이를 눕히고 첫째의 사진과 영상을 보내주는 남편의 메시지들을 확인하였다. 첫째는 잘 놀고 있다. 할머니가 와서 더 신이 났고, 가장 좋아하는 친구까지 집에 놀러 와서 더 신났다. 이런 날엔 엄마의 연락도 귀찮아한다. 그 모습이 미래의 첫째를 미리 보는 것 같다. 나중에는 엄마고 뭐고 다 귀찮고 친구가 최고일 거다. 아이들이 엄마를 찾는 기간은 짧다.


특히나 우리 첫째는 맞벌이 부부인 우리를 대신해 매일 어린이집 시절부터 등 하원을 시켜주고 밥을 해준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도 좋아하지만 가끔 만나는 친할머니, 친할아버지도 무척이나 좋아한다. 어쩔 땐 내가 다 서운할 정도로 친할머니, 친할아버지를 좋아하기도 한다. 시댁에 가면 엄마도 찾지 않는다.


이상하다. 아이가 나한테만 매달리는 것도 힘들지만 나 없이 너무 잘 지내도 서운하다. 그냥 출산한 여자의 호르몬 불균형으로 여러 가지 감정이 복합적으로 드는 건가 싶다.


좌우지간 내 옆에서 둘째는 새근새근 잘 자고 있다. 잘 자는걸 굳이 깨워서 분유를 더 먹이고 싶지 않아 기다렸더니 7시쯤 낑낑대기 시작한다. 낑낑대는 아이를 다시 안고 분유를 먹인다. 아직 신생아라 그런지 한 번에 다 먹지 못하고 30ml, 30ml 이렇게 나눠서 30분 내내 분유를 먹는다.


분유 먹이는 내 자세가 이상한가? 또 손목과 손이 시큰거린다. 분유를 다 먹이고 아이를 안아 트림을 시켜준다. 아이가 계속 잠을 잔다. 아무리 깨워도 일어날 생각을 안 한다.


'이러다 또 새벽에 안 자면 어떡하지....'


걱정이 된다. 암튼 아이는 8시 가까이까지 내 방에서 자다가 신생아실에 돌아갔다. 그 뒤에 난 쉬고, 영어 튜터링도 했다. 역시, 할머니가 오셔서 그런지 아이는 나와의 통화도 금방 끊고 즐겁게 잠에 든 모양이다. 난 튜터링을 마친 뒤 11시쯤 흐르는 젖을 감당 못하고 또 유축을 한다. 이젠 유축해도 60-80 정도만 나온다. 유축도 4-5시간에 한 번씩 뿐이다. 단유 생각을 한 뒤부터 유축 텀을 늘리자 젖이 확실히 줄고 있다. 그래도 아기가 내 방에 오거나 같이 있을 때면 젖이 핑- 돌면서 (눈물이 핑-도는 것과 비슷하다) 뚝뚝 흐른다. 나의 뇌가 멋대로 젖을 만들어 내는 거다. 아니, 어쩌면 가장 자연스러울지 모른다.


유축한 모유를 신생아실에 가져다주고, 쉬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퇴실을 앞두고 있으니, 신생아실 콜이 더 자주 온다. 아무래도 적응할 시간을 만들어주고 싶은가 보다. 콜이 자주 오거나 아이가 내 옆에 있는 게 힘들 때도 있지만 괜찮다. 아이가 잘 먹고 싸고 자는 게 젤 중요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캠을 보니 아이가 한쪽 팔이 속싸개 밖으로 꺼내어 휘휘 젖고 있다. 쟤는 저게 지 팔인 지도 모를 텐데, 이게 뭐지 하면서 잠을 못 자는 것 같다. 시계를 보니 새벽 1시 30분이다.


"저희 아이 속싸개 좀 다시 싸주셔요."


못 참고 신생아실에 가서 이야기를 했다. 신생아실 선생님이 말한다.


"아이가 통 안자네. 11시부터 계속 안자요. 계속 안고 있는데도 보채고 안자네. 수유 좀 하실래요?"


마침 먹을 시간이라고 한다. 아이와 젖병을 받아 들고 방으로 와서 예상치 못한 새벽 수유를 했다. 눈을 땡그랗게 뜬 아이가 전혀 잘 생각이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엄마 맘마 먹고 언릉 코~ 자자"


수유를 하다 보니 아이 눈이 서서히 감긴다. 엄마가 보고 싶어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는 듯이. 엄마와 함께면 잘 잘 수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서서히 눈을 꼭 감는다. 가슴을 빼내고, 분유를 다시 먹이는데 뭔가 냄새가 난다. 아, 응가를 했다. 아무래도 남은 분유는 응가를 치우고 먹여야 할 것 같아 아이를 신생아실에 데려다주었다. 다행히 아가는 응가를 치고 분유를 먹은 뒤부턴 잘 자는 것 같았다. 친정엄마가 새벽 4시부터 캠을 보셨다고 알려주었다.


여러 가지 바빴던 내 이야기, 남편의 생일은 어땠는지, 첫애는 친구와 어떻게 놀았는지 하루의 이야기와 오늘 하루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남편과 길게 얘기할 기회는 없었다. 내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과연 뭐였을까? 우리 아이의 밤낮이 바뀌어서 걱정된다. 오늘 생일에 같이 시간을 못 보내 아쉬운데, 나가서 단둘이 언제쯤 시간을 가질 수 있을까. 첫째는 내가 없어도 이제 잘 지내는데 서운하다. 오늘 읽은 책이 너무 좋았다. 뭐 이런 말들이었던 것 같다. 결국 전할 수 없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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