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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내누 Jul 22. 2022

애 둘 낳은 엄마의 몸몸몸(+매)

우리들의 해방일지: 아내 29일째

7월 22일(금) 날씨: 소나기


둘째가 태어난 지 18일째 날이다. (아직까진 열심히 신생아 달력을 넘기고 있다) 첫째 등원 후 동네 친구 엄마들과 간단히 티타임을 가졌다. 나는 내가 짐승과도 같은 회복력을 지녔다 자신하고 있었다. 조리원에서도 힘들지 않았고, 집에 왔을 때도 그랬다.


그러나 어젯밤, 매운맛 마라 맛 육아를 해서였을까? (아이가 날 고단하게 했었다기보다 우리 부부가 같은 방에서 신생아와 자면서, 역할 분담을 완벽히 할 수 있을 거라고 자신했던 게 경기도 오산이었다. 결론적으로 둘 다 제대로 못 잤으니까...)


아침에 일어나 보니 내 몸이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좀비처럼 내 영혼이 내 육체를 질질 끌고 다니는 기분이었다. (혹은 반대로 표현해도 됨) 잠을 제대로 못 자서 그런 거라고 하기엔 몸살처럼 몸 여기저기도 쑤시는 것 같았다. 어젯밤에 내가 먼저 브런치를 먹자고 제안했는데 내 몸상태가 이러니... 아... 난 아직 산모였어... 너무 늦은 깨달음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12시간 전에 잡은 약속을 갑자기 펑크낼 순 없었다. 양해를 구하고 아점 대신 커피를 마시러 카페로 향했다. 밀린 아이들 이야기를 하고 집에 오는 길. 분명 날씨는 여름인데 왜 한기가 느껴지고 온몸의 관절이 시큰거리지? 이제 함부로 집 밖에 나다니지 말아야겠다는 걸 뼛속까지 (레알 뼛속 깊숙이) 체감했다.


첫째 출산한 뒤에도 내 몸엔 많은 변화가 있었다. 한때 내 보디라인에 나름 자신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몸의 탄력이 사라졌다. 특히 내 가슴이 더 이상 아름답지 않게 느껴졌다. 아랫배나 엉덩이도 축 처지고 칙칙해 보였다. 다들 관리의 중요성을 말하지만 정말 관리한다고 내 몸이 나아질까? 인생에 공짜가 없듯이 나는 아이를 얻고 젊음을 잃은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체념했다. 몸무게의 변화는 없었지만 내 몸에 '탄력'이나 '근육' 같은 것은 없어진 지 오래다.


둘째를 낳은 뒤의 몸 상태는 더 처참하다. 탄력이니 근육이니 하는 것들을 말하는 것조차 지금은 사치다. '가슴'이라는 내 신체부위는 아이의 식료품 창고가 되었다. 이 창고는 뇌하수체와 연결되어 (의학적으로 팩트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냥 혼자만의 느낌...) 아이가 배고플 시간만 되면 저절로 막 내 몸의 영양소를 끌어다가 아이를 위한 '모유'를 열심히 만들어낸다.


웹툰 <유미의 세포들>에서 세포들이 방아를 돌리는 것처럼 내 몸의 세포들도 아이를 위해 방아를 돌려 젖을 짜낸다. 문제는 내가 무식하게 조리원에서 수유와 유축에 공을 들여 젖량이 많다는 게 첫째요, 완모는 일찌감치 포기한 엄마라는 것이 둘째다.


집에 온 뒤에 유축과 수유를 소홀히 했더니 가슴이 퉁퉁 불어 유선염이 오기 일보 직전인 상태가 되었다. 하루 종일 눈물 흘리는 것처럼 내 가슴에서 두 줄기의 눈물 같은 모유가 흘러내린다. 이 꼬락서니를 하고서도 남편과도 시어머니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집안을 돌아다닐 수 있는 나에게 내가 놀랄 지경이다.


나에게 수치심이라는 것이 사라진 것일까? 물론 모유수유는 아름다운 것이다. 아이와의 교감도 행복하고 영양분이 풍부한 모유를 아이에게 먹이려는 엄마의 노력과 의지는 숭고하다. 그렇다 해도 나는... 정말 이런 상태로 아무렇지 않은 것일까? 정말 아무렇지 않다면 나는 왜 아무렇지 않게 된 것일까?


나에게 엄마로서의 자아 외에 여자로서의 자아가 분명 존재하고, 그 역시 소중하지만 내가 그녀를 홀대하고 있다는 느낌이 자주 든다. 엄마로서의 넌 정말 훌륭해! 신생아는 정말 사랑스럽고 가족을 꾸리고 육아를 하는 건 정말 멋진 일이야! 짜릿해! 나도 모르는 새에 엄마로서의 자아가 내 안의 프라임 자아로 우뚝 자리 잡은 지 오래라는 사실도 깨닫는다.


그치만 나에게 여자로서의 나도 있기에, 내 몸을 어떻게 가꾸고 돌봐야 할지도 신중히 생각해 볼 문제겠구나 싶었다. 안 그럼 모유를 짜내는 건지 내 사골국물을 짜내는 건지, 가슴 통증으로 절규하거나 유축할 때마다 헷갈린다.


때마침 내가 주문한 단유차의 배송이 시작됐다고 알람이 울린다. 일단 힘들어서 주문은 했지만 둘째를 보면 마음이 약해진다. 남편은 단유 마사지를 받아보라고 진지하게 권한다. 단유 마사지? 단순히 상술일 거라고 생각해왔지만 진짜 알아봐야겠단 생각이 점점 커진다. 짝짝이 할매처럼 처져버린 나의 가슴, 입고 있는 티셔츠의 짖게 벤 모유의 눈물 같은 흔적을 보며 뭔가 단호한 결단이 필요한 때라는 생각이 또 한 번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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