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디내누 Jul 24. 2022

다섯 살 소년

우리들의 해방일지: 아내 30일째

7월 23일(토) 흐림, 선선, 비


하루 종일 우중충하고 선선한 날씨다. 창문을 열어두면 꽤 지낼만하다. 휴직을 한지도 딱 한 달이 됐다. 건강한 출산이라는 소기의 목적은 이미 달성됐다. 조리원에서 퇴소한 게 수요일, 오늘이 토요일이니 벌써 우리 집 육아도 나흘 차다.


둘째를 키우다 보니 모든 상황에서 첫째를 키우던 상황을 떠올리게 된다. 첫째 땐 어땠지? 그땐 어떻게 했지? 같은 질문부터 첫째는 이때 이랬는데 둘짼 이렇구나, 라는 비교까지도 서슴없이 한다. 한번 해봤던 것이기에 당연하게도 지금 둘째의 상황이 모든 면에서 수월하다. 우리는 잘 대처하니 둘째도 더 순하게 지내는 것 같다. 그럼에도 첫째와 둘째를 비교하며 둘째가 더 수월하다는 생각을 해버리고 만다. 첫째 입장에선 여간 억울할 수밖에 없다.


억울한 상황이 한두 개일까. 안방에서 뛰어다니던 엄마, 아빠 침대에서 뛸 수도 없다. 밖에서 놀다 들어와 동생 곁으로 가면 엄마, 아빠, 할머니까지 소스라치게 놀라며 손 씻고 오라고 호들갑이다. (아빠는 넌 지금 세균덩어리야!라고까지 말했다. ㅠㅠ) 아기라고 예뻐하며 가지고 놀던 작은 고래 인형도 동생에게 양보했다. (실상 둘째 애착 인형으로 사준 것이긴 하지만, 첫째가 가지고 놀곤 했다) 엄마, 아빠의 시간과 마음도 반으로 뚝 잘라 둘째에게 나눠줬다.


이 과정에서 동생을 밉다고 하거나 투정을 부린 적은 없다. 그치만 은연중에 아쉬움과 속상함이 비친다. 첫째의 마음이 마냥 가볍지만은 않다는 게 자주 느껴진다. 안쓰럽고 애처롭지만 해줄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오늘은 어제 집에 오신 친할머니가 댁으로 돌아가는 날이었다. 다음 주는 유치원 방학이고 다음 주 내내 두 아이와 집에 틀어박혀 씨름할 우리가 안쓰러우셨는지, 어머님은 첫째 아이에게 넌지시 "오늘 할머니 집 가서 잘까?" 하고 제안하셨다. 당연히 싫다고 할 줄 알았는데 첫째가 흔쾌히 "좋아"라고 한다. "엄마, 아빠가 같이 가는 게 아니라 할머니 차 타고 가서 할머니, 할아버지랑 자는 건데 괜찮아?" 물어보니 "응"이라고 말한다.


이 대화를 들으며 남편과 나는 내심 많이 놀랐다. 아이는 진심으로 할머니네 집에 가길 원했다. 엄마, 아빠가 없어도 잘 수 있다고 했다. 지금까지 엄마, 아빠와 떨어져 잔 적은 둘째 낳는 날 제외하곤 거의 없는 아이다. 아이는 내가 조리원에 있는 동안 엄마 없는 밤에 내성이 생겼다. 엄마가 없어도 조금 슬프지만 잘 수 있어, 엄마가 보고 싶으면 전화를 걸면 돼. 아이는 엄마 없는 밤에 대한 문제 해결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남편과 나는 농담 삼아 "이제 사랑을 독차지할 수 없는 엄마, 아빠보다 자기만 바라봐주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있는 (경쟁상대가 없는) 곳이 나은가 봐.ㅎㅎ"라고 말했다. 동생이 밉거나 싫어서, 엄마 아빠한테 서운해서 그랬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분명한 것은 내가 모르는 새에 아이가 또 한 뼘 성장했다는 거다. 이 성장이 대견하다. 그리고 좀 시원 섭섭하기도 하다.

작가의 이전글 애 둘 낳은 엄마의 몸몸몸(+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