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해방일지: 아내 34일째
7월 27일 수요일 무더움
어제 롯데월드에 다녀온 후, 나는 첫째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첫째가 갑작스레 짜증과 화가 많아졌다. 좋은 데를 데려가도, 장난감을 사줘도 엇나가기만 한다. 대체 왜 이러는 것일까? 남편은 내가 첫째를 너무 자주, 별거 아닌 일에도 지적하고 혼낸다고 말했다.
"좀 다정하게 대해줘."
둘째를 돌보며 첫째가 가까이에만 와도 내가 자주 신경질적으로 뭐라고 한다는 것이다. 많이 미안했다. 이럴 거면 남편과 내가 둘 다 휴직하는 의미가 없다. 둘째가 태어나도 엄마, 아빠와 즐거운 시간을 더 많이 보낼 수 있단 걸 알려주고 싶었는데 고작 집에 온 지 일주일 만에 이게 뭐람.
"여보. 오늘 난 첫째에게 집중할게. 오후에 둘이 좀 나갔다 올까 해."
난 남편에게 미리 이렇게 말했고 오전 내내 첫째와 넘버블럭스 놀이, 로보카폴리 놀이를 했다. 오후엔 첫째와 뭘 할지 고민했다. 장롱면허에 산후조리 중인 몸으로 멀리까지 아이를 데려갈 순 없었다. 바깥 날씨는 찌는듯한 여름이었다. 그래도 난 과감하게 첫째와 뚜벅이로 동네 마실을 나가기로 했다.
머릿속에 갑자기 떠오른 물풍선으로 첫째를 꼬드겨 아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날씨는 역시 더웠다. 그치만 첫째는 엄마와 단둘이 나왔다는 게 신이 났는지 열심히 킥보드를 구르며 앞서 나갔다.
"찻길에선 멈추고 엄마를 기다려야 해~!"
"네 엄마!"
집에선 잘하지 않는 존댓말까지 해가며, 첫째는 내 말을 엄청 잘 들었다. 염려했던 씽씽이도 안전하게 탔고 엄마가 기다리라고 하면 멈춰서 나를 기다렸다. 남편과 둘째와 넷이 부대끼던 집안에서 봐왔던 첫째가 맞는 건가? 싶을 정도로 의사소통도 분명하게 했고 생각하는 것도 어른스러웠다.
첫 번째 목적지였던 문방구에 들러 물풍선을 샀다.
"얼마예요?", "계산해주세요", "안녕히 계세요."
이런 말도 잘한다.
물풍선을 사서 동네 공원으로 향했다. 동네 지름길로 안내했더니 씽씽이를 쭉쭉 밟아나가며
"엄마 길 잘 아네?"
한다. ㅎㅎㅎ 엄마를 대체 뭘로 보냐 이 녀석.
오후 2-3시. 너무 더운 날씨라 공원에 사람이 단 1명도 없다. 비둘기 때가 점령한 공원에서 놀 순 없다. 우리는 근처 쇼핑몰로 향했다. 모든 목적지는 첫째와 함께 정했다. 아이는 시원한 쇼핑몰에 들어가고 싶어 했다. 쇼핑몰에 들어가 오면서 사온 요구르트를 원샷하고,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다가 무료 게임존을 발견했다. 여러 오락들 중 다섯 살 아이와 같이 할 수 있어 보이는 건 두더지 잡기 류의 게임이다. 손으로 불이 들어오면 눌러서 더 많은 기록을 세운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다.
아이와 나는 신나게 이 게임을 몇십 판 했다. 아이는 점점 실력이 늘었고, 난 아이가 지칠 때까지 하게 해 주었다. 적당히 봐주면서 이기는 쾌감도 맘껏 누리게 했다. 아이와 약속한 마지막 판이 끝났다.
"엄마, 미안한데 정말정말 마지막으로 딱 한판만 하자."라고 하길래, '미안한데 정말정말 마지막'이라는 말을 한 게 기특해서 한번 더 하게 해 주었다니 정말 마지막으로 한판을 더 하고 쿨하게 자리를 뜬다.
운동화 가게를 지나다 들어가 봤다. 아이는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에 흠뻑 취했는지 쓰고 있는 야구모자를 이리 돌렸다, 저리 돌렸다 하면서 "이렇게 쓰는 게 멋있네!" 한다. 그리곤 매장에서 흘러나오는 켈리 클락슨의 'stronger'에 맞춰 온갖 똥 뽐을 잡으며 춤을 춘다. 영락없는 똥폼이고, 신이 나 어쩔 줄 모른다.
동네 마트와 문방구로 마실 다니면서 고작 이천 원짜리 물풍선 사주고, 오백 원짜리 요구르트 하나 먹었을 뿐인데 왜 이리 행복해 보이는지. 어제 롯데월드에서 썼던 온갖 비싼 슬러시, 팝콘, 음료수, 감자튀김도 티켓값을 생각하니 오늘의 가성비는 어제와 비교도 되지 않고, 우리 고객님의 만족도는 한층 높아졌다.
아이의 엄마사랑은 밤까지 이어졌다. 엄마를 어루만지고 쓰다듬고 뽀뽀하고 난리가 났다. 단 둘이 데이트한 게 도움이 됐는지 첫째의 상태도 많이 안정됐다. 집에 들어와 바로 샤워하는 것도 저녁밥 먹는 것도 스스로 척척 수월하게 해냈다.
오늘 땡볕에 아이와 단둘이 열심히 소통하며 다녔고, 아이의 채워지지 않았던 마음이 흡족히 풍요로워진 것 같다. 엄마와 노는 시간과 비례하여 행복해지는 우리 첫째. 앞으로도 엄마가 열심히 놀아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