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해방일지: 남편 30일째
7월 23일 토요일 때때로 비
휴직한 지 이제 딱 한 달이 됐다. 지금부터 약 10일간은 이번 휴직에서 가장 험난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음 주가 유치원 방학이기 때문이다. 첫째는 어제 하원 때부터 이미 이제 아홉밤 자야 유치원에 다시 간다고 강조했다. 즉 우리 집엔 열흘간 신생아와 5세 아이가 하루 종일 상주한다는 뜻이다. 9박 10일간의 지옥주. 아니 지옥까진 좀 과하고 고난주간쯤은 되겠다.
그래도 나로선 희망적인 것들이 몇 가지 생겼다. 소소한 것들부터 말하자면 우선 프로야구 후반기가 개막했다. 예전 일기에도 썼지만 나는 상당한 팬심의 LG팬이다. 하루가 힘들어도 야구만 이기면 그나마 약간은 행복해질 수 있다. 어제는 졌고 오늘은 이겼다. 물론 매일 이길 순 없겠지만 많이 이겨주길 바라본다.
또 다른 희망요소는 정주행 할 콘텐츠의 발견이다. 우리 부부는 영화를 굉장히 좋아한다. 평론가 수준까진 안되어도 나름 그냥 재미로만 보지 않고 여러 해석을 하기를 좋아하며 장르도 다양하게 즐긴다. 원래 몇 년 전에 단편영화 제작 프로젝트 JTBC <전체관람가>를 재미있게 보았었는데, 얼마 전에 티빙 오리지널로 시즌2를 했다는 것을 이번에 알게 됐다. 영화 8편 크레딧과 후 토크 포함해 16부작이다. 좋은 콘텐츠는 늘 힐링이 된다.
하지만 이런 것들 말고 정말 큰 희망 요소가 있는데 바로 첫째가 할머니 집에 가서 자기로 한 것이다. 원래 첫째가 할아버지 할머니를 정말 좋아하고 잘 따르긴 하지만 설마 엄마 아빠가 아예 없이 혼자 가서 자고 오겠다고 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동생에게 빼앗긴 애정을 할머니 할아버지를 통해 채우려는 심리인지 몰라도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물어본 것이 진짜로 진행되어 버렸다. 어머니 차에 카시트 설치를 해줄 때까지도 얘가 말만 그러고 막상 출발할 때 되면 엄마랑 같이 간다고 할 줄 알았는데 아주 쿨하게 떠났다. 아마 이번에 엄마랑 떨어져서 지내보면서 엄마 없어도 큰일 안 난다는 걸 깨달은 것 같다. 아니 어쩌면 그냥 동생이 없이 자기만 예뻐해 줄 사람들만 있는 곳에 있고 싶은 것일지도? 어쨌든 아내와 내가 봐야 하는 아기가 하나로 줄었고 내일 데리고 오겠지만 갑자기 분위기 휴가모드가 되어버렸다. 어머니는 다음 주에도 한번 더 오시기로 했다. 그날은 모처럼 부부가 첫째를 데리고 외출할 생각이다. 얘 입장에선 부모님이랑 셋이 좋은 데 다니던 일상이 한순간에 무너진 셈이니 여름방학에 좋은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다.
마지막 희망 요소는 둘째를 케어하는 것에 점점 자신감이 붙고 있는 점이다. 우리가 적응해가는 것도 있지만 템빨도 크다. 첫째 때는 없었던 육아 아이템이 많아졌는데, 이것들의 효과가 놀랍다. 우선 역류방지쿠션. 줄여서 '역방쿠'. 이건 소화기능이 약한 신생아 시기에 눕혀놓으면 약간 경사가 있어서 먹은 게 역류하지 않고 편하게 누워서 잠도 잘 수 있는 커다란 쿠션이다. 사람들이 흔히 ‘등센서’ 라고 하는 것이 바닥에 닿으면 싫어서 안아달라고 하는 줄 아는데, 이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아기는 사실 평평한 바닥에 누우면 소화가 안되거나 역류해서 불편하기 때문에 안겨있는 걸 좋아하는 것이다. 우리 둘째도 먹고 잠이 깊게 들기까지 자꾸 불편해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쿠션의 사용법을 다시금 정확히 파악하고 훨씬 나아졌다.
다음으론 보틀 워머다. 이건 쉽게 말해서 중탕기다. 얼려둔 유축 팩이나 냉장고에 넣어둔 것을 먹이려면 적정 온도로 데워야 한다. 너무 차가우면 배탈이 나고, 너무 뜨거우면 먹을 수 없다. 보틀워머는 젖병째로 넣어두면 먹기 딱 좋은 온도로 중탕을 해준다. 이런 식으로 육아 아이템들은 없어서는 절대 안 되는 건 아니지만 있으면 다 조금씩은 더 편해지고 유용하다. 첫째 때도 처음엔 정말 필수인 것만 사놓고 무에서 시작했지만, 이대론 부부가 모든 시간을 육아와 집안일에만 갈아 넣겠다 싶어 점차 분유 포트, 젖병소독기 등을 마련하면서 삶의 질이 나아졌다. 역시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이고, 소비는 확실한 행복이다.
실은 유치원 여름방학은 유치원 선생님들의 휴식을 위해서 있는 것일 거다. 그 여파로 우리 첫째는 처음으로 부모님 없이 할머니 집에 가서 1박 2일 캠프를 하게 됐다. 누군가에겐 여름휴가가 누군가에겐 여름방학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고난주간이 될 수도 있고, 그게 먼 미래에 한 사람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줄지는 알 수 없으니 정말 나비의 날갯짓이 지구 반대편에서 태풍이 될 수도 있는 듯하다.
그래도 아무쪼록 유치원 선생님들이 휴식과 리프레시의 시간을 갖고 2학기에도 우리 아이를 잘 봐주시면 좋겠다. 첫째의 추억이 될 인생 첫여름방학이니 나도 다음 주가 고난주간이 아니라 여름휴가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원효대사의 해골물을 기억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