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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내누 Aug 04. 2022

다섯 살 안경잡이

우리들의 해방일지: 아내 41일째 

8월 3일(수) 비오다 해 


첫째는 눈이 나쁘다. 작년 어린이집 시력검사에서 담임 선생님이 병원에 가보라고 알려주셨을 때만 해도 '설마' 했는데 진짜였다. 눈은 유전이라던데. 어렸을 때부터 근시로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안경을 썼던 나이기에 첫째의 시력 결과에 마음이 많이 아팠다. 네 살배기가 근시가 심하다니... 그땐 너무 어려서 안경을 처방받진 않았고, 올해 다시 갔던 동네 병원에서 선생님이 말씀하셨었다. 


"만 48개월이 넘었네요, 이제 '개입'을 하죠."


'개입'이라고 하더라. 눈이 나빠서 안경으로 교정해 주는 것의 전문용어인가 보다. 그래 봤자 다섯 살이다. 얼마 전에 갔던 롯데월드에선 나이 어린 척하고 공짜로 입장했을까봐 어린이 범퍼카를 타기 전 티켓 검사까지 받은 '베이비 페이스'를 가진 아이다. 유독 얼굴이 작아서 마스크를 쓰면 남는 얼굴도 별로 없다. 


오늘 동네 병원의 소견서를 들고 아침 일찍 아이와 대학병원에 정밀검진을 하러 갔던 남편이 말했다. 시력검사 내내 계속 안약을 넣느라 정말 힘들었지만 아이가 잘 참았다고, 많이 컸다고 기특하다고 말이다. 


남편의 말을 들으며 나는 초록창에 '다섯 살, 안경'을 검색했다. 다섯 살에 안경을 쓰기 시작하게 된 여러 아이들의 부모들이 쓴 글이 있었다. 다들 나와 같은 심경이다. 죄책감, 미안함, 안쓰러움, 걱정 등등... 그 외에 시력이 나빠질 때의 증상, 시력에 안 좋은 행동들의 리스트 등이 있다. 눈을 자주 비비고 잘 넘어지고 작은 빛에도 눈이 부시다며 선글라스 쓰기를 좋아하는 등 우리 아이에게 찾아볼 수 있었던 행동들이다. 눕거나 엎드려서 책 보는 것도 안 좋단다. 내가 어릴 때 많이 했고, 우리 아들과 매일 밤 자기 전 같이 하는 행동들이다. 정말 바보 같다. 조금만 더 신경썼더라면 좋았을걸. 


나를 닮아서 아이가 다섯 살부터 안경을 써야 한다니. 나 역시 미취학 아동 시절부터 안경을 써봤기 때문에 그게 얼마나 불편한지 잘 안다. 꽤나 귀여운 외모였던 여섯 살까지의 사진과 일곱 살 이후의 사진에서의 나는 완전히 다른 이미지의 다른 사람같다. 초등학교 입학식에서 빨간 안경테의 안경을 쓴 나는 더 이상 귀엽지가 않다. 공부 잘하게 생겼을 뿐. 안경은 내 외모 콤플렉스의 시작점이었다. 


안경을 써야 더 빨리 나빠지는 걸 막을 수 있다는 의사의 말을 믿을 수가 없다. 일곱 살 때부터 안경을 썼지만 내 시력은 성장기에 빠르게 나빠져 고등학생 때의 난 -10이 넘는 고도근시가 되었다. 목욕탕에서 모르는 아줌마에게 엄마라고 한 적도 많다. 점점 두꺼워지는 안경알은 아무리 압축해도 내 두 눈을 단춧구멍 만하게 만들었다. 초등학교 무렵까진 꽤 인기가 많았는데 중학교에 올라가며 안경알이 더 두꺼워지며 내 자신감은 점점 하락했다. 


다섯 살부터 0.1/ 0.4의 근시와 난시를 갖고 있는 우리 첫째는 눈이 어디까지 나빠질까? 나는 결과를 예상할 수 있을 것 같다. 내 마음의 부정적인 시나리오가 끝없이 써지는 날이다.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해줄 수 있는 게 예쁜 안경 맞춰주고 최대한 압축해서 눈이 작게 보이는걸 막는 것 밖에 없다. 


선명한 세상을 본 적이 없는 우리 첫째는 안경을 쓰면 "우와!"라고 할 것 같다. "너무 잘 보여!" 하고 좋아할 것 같다. 그 소리를 들으면 난 또 왈칵 쏟아지는 눈물을 참느라 진땀을 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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