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해방일지: 남편 43일째
8월 5일 금요일 더웠던 것 같다
남들은 즐겁고 신나는 주말을 만끽하는 불타는 금요일. 나에게는 그냥 피곤한 금요일이다.
요즘 내가 평일과 주말을 구분하는 기준은 단 한 가지. 첫째가 유치원을 가느냐 안 가느냐. 즉 주말이 더 피곤하다. 아, 월요일과 금요일을 구분하는 기준도 있긴 있다. 유튜브 녹음을 하면 월요일이고 영상을 다 만들어서 올리면 금요일이다. 이렇게 딱히 기대할만한 주말도 없는 상태에서 낮에도 피곤하고 밤에도 피곤한 낮져밤져 생활을 하다 보니 요즘 쓰는 일기는 지친 한숨으로 가득 찬 상태에서 쓰는 것 같다.
사실 우리 부부는 매일 일기를 쓰기 전에는 오늘 뭐라고 쓸지 공유하지 않고, 게재한 이후에 독자의 시선으로 읽고 있다. 어제 아내의 일기가 산후우울증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마지막 문단을 읽으며 괜시리 부러워졌다. 나도 요 며칠째 하루 종일 기분이 별로고 툭 건드리면 터지는 풍선 같은 감정 상태인데, 나는 출산을 한 장본인도 아니고 모유수유도 안 하는 사람이니 '산후우울증'때문이라고 퉁칠 수가 없지 않은가?
사실 호르몬은 여자와 다르겠지만 나 역시 고군분투한 하루였다. 어제 새벽 수유 담당이 아내였기에 나는 첫째의 아침 등원을 맡았다. 이 시간은 이상하게 일찍 일어나서 여유롭게 준비를 시작해도 늘 유치원 버스가 출발하기 직전에 도착하게 된다. 어쨌든 잘 보내고 집에 돌아와 이제 둘째를 돌봐야 했다. 아내는 단유 마사지를 받으러 가고 혼자 아기를 놀아주고 먹여주고 관찰도 했다.
'우리가 얘를 잘 키우고 있는 걸까? 순한 애를 괜히 잘못된 습관으로 예민하게 만들고 있나?
요즘 부쩍 매운맛인 시간이 늘어나고 있는 둘째를 돌보다 재우고 쉬고 있을 때 아내가 돌아왔다. 예민한 상태에서 티격 대다가 결국 같은 목표의식을 갖고 신생아 수면교육에 대해 다시 찾아보면서 육아 전략을 다시 세웠다. 이런 문제는 부부간의 대화와 합의가 제일 중요하다.
첫째의 수영 체험수업이 있는 날이라 장인 장모님이 하원 시간 전에 집으로 오셨다. 아기를 맡기고 부부가 함께 오랜만에 외출. 첫째가 수영장 안 가고 놀이터에 가겠다고 떼를 쓰는 순간 내 감정에도 위기가 찾아왔지만 부부가 함께 의기투합해 겨우 극복하고 수영장까지 갈 수 있었다. 아이는 다행히 수영장에 들어간 뒤론 예상대로 물을 워낙 좋아하는지라 체험수업을 즐겁게 참여했다. 기분이 풀어지며 동영상과 사진을 찍어대며 아내와 흐뭇하게 아빠 엄마 미소로 참관. 이때까지만 해도 오늘 하루를 잘 마감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안경점에서 아이가 막무가내로 제멋대로 행동할 때, 차에서 운전석을 발로 차지 말라고 반복해서 말해줘도 들은 척도 하지 않을 때, 안전벨트 푸는 버튼을 자기가 누르지 않았다고 안 내린다고 떼를 쓸 때, 주차장에서 다른 차들의 통행을 방해하는 곳에 매일 세워두는 차를 또 보았을 때, 내 감정은 수시로 끓어올랐고 결국 집에 와서 쉬가 가득 차서 셀 때까지 기저귀를 갈지 않은 둘째의 모습을 보고는 장모님께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고 말았다. 억지로 어떻게든 감정을 추스르긴 했지만 여전히 웃는 게 웃는 게 아니다.
일기를 쓰려고 앉았다가 남편 산후우울증을 검색해봤다. 다행히(?) 그런 게 있단다. 전문가 피셜로 피곤하고 육아에 지쳐 현타가 오고 사소한 일에도 예민해지는 남편들이 꽤 있다고 한다. 이런 남편들의 증상은 흔히 집보다 회사에 머무르고 싶어 하고 야근과 회식이 늘어나는 것으로 많이 나타난다고 써 있다. 육아휴직을 하고 이 생각을 차마 안 하려고 꾹 참고 있었는데. 오늘 같은 날에는 차라리 회사에 가고 싶다.
하지만 그럴 순 없으니 이 일기를 아내가 보고 '남편 산후우울증'을 네이버에 검색해보고 대처방법을 한번 읽어보기를 기대해 본다. 그리고 장모님께 "사위가 잠도 잘 못 자고 하루 종일 너무 피곤해서 예민해서 그러니까 엄마가 좀 이해해주세요"라고 말해주면 좋겠다고 텔레파시를 보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