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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내누 Aug 06. 2022

사랑과 분노 사이

우리들의 해방일지: 아내 43일째

8월 5일(금) 여름다운 더위


어제 산후우울증으로 고생하며 즉흥적으로 예약한 '단유 마사지'는 대만족이었다. 다시 정상화된 가슴 상태를 보니 너무 기분이 좋고 마음이 편해졌다.


집에 와 첫째 하원 시간에 맞춰 남편과 마중을 나갔다. 오늘은 첫째 수영 학원 체험을 하는 날이다. 아직 다섯 살이라 이른 감이 있지만 물을 워낙 좋아하는 첫째를 위해 신체활동을 겸하며, 물놀이를 할 수 있는 수영이 적합한 '사교육'이라 생각했다.


관건은 하원 후 놀이터를 가지 않고 수영을 가야 하는데, 이걸 첫째가 잘 받아들일 수 있을지가 문제였다. 첫째에게 미리 여러 번 예고를 하긴 했지만, 막상 친구들이 우르르 놀이터에 몰려가면 첫째가 자기도 놀이터를 가고 싶다고 떼를 쓸 게 예상됐다. 남편과 치밀하게 전략을 짠다고 짰지만, 역시나 첫째는 하원 후 차에 탈 때까지 놀이터에 가겠다고 울며 불며 떼를 썼다.


혼내가며, 달래 가며 겨우 설득해서 수영 체험을 성공적으로 시작했다. 수영 수업은 참관이 가능했는데, 첫째는 선생님과 의사소통이 잘 되는 것 같았다. 우리가 뭘 할 때마다 열 번씩 반복해 말하고, 다그치고 혼내는 것과 딴 판이었다. 지시에 잘 따랐고 산만하지도 않았다. 첫 수업에 잠수 연습, 발차기, 패드 잡고 떠 다니기 등 여러 가지 연습을 잘 해냈고 선생님도 첫 수영치곤, 그리고 다섯 살치곤 잘한다는 피드백이었다. 첫째도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놀이터에 가지 않아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수영은 앞으로도 등록해 다니기로 했다.


문제는 그다음에 또 발생했다. 사실 남편과 내가 둘 다 같이, 둘째까지 엄마에게 부탁하고 나온 이유는 수영 체험 참관보다는 그다음 일정인, 안경점 방문이 더 컸다. 난시와 근시로 시력이 많이 나쁘다는 판정을 받은 첫째의 안경을 맞춰야 했다. 동네의 안경점을 들러 여러 가지 안경테를 써 보는 동안 첫째는 수영 강습을 받을 때의 똘똘함과 집중력은 완전히 잃고, 계속 주의 산만하게 우리를 힘들게 했다.


여러 가지 안경테를 써 보는 동안 안쓰러운 마음보다 화가 더 많이 났다. 첫 번째 안경점에 그다지 마음에 드는 안경테가 없어 근처 다른 안경점에도 방문했는데 여전히 첫째는 말을 잘 듣지 않았고 차에 타서도 아빠 운전석까지 느껴지게 의자에 발을 올리는 행동을 해서 여러 번 주의를 줘야 했다. 문제는 남편과 내가 주의를 주어도 전혀 엄마, 아빠 말을 듣지 않고 계속 자기 멋대로 구는 첫째의 태도였다.


안경점에서 안경을 맞춘 뒤 집에 도착했을 때도 첫째가 안전벨트를 자기가 푸르지 않겠다고 했다가 내가 풀러 주니 자기가 풀었어야 된다며 되지도 않는 생떼를 부렸다. 남편과 나는 결국 동시에 폭발해 둘 다 첫째를 엄청 혼내고 말았다. 집에 와서도 그 화는 지속됐는데 그러면서 둘째가 저녁 낮잠에서 깨어나 내가 우는 둘째를 안아주고 달래줄 때 첫째가 서럽게 울먹이며 말했다. "왜 OO는 안아주면서 나한테는 계속 화만 내!!"


나는 순간 당황해서 둘째를 다시 내려놓고 첫째한테 바로 갔다. 그리고 꽉 안아주면서 "아냐, 엄마 아빠는 너도 많이 사랑해. 그렇지만 잘못한 행동을 할 땐 그러지 말라고 혼을 낼 수밖에 없어"라고 설명해 주었다. 여차 저차 그 상황은 지나갔다.


밤에 첫째를 재우며 다시 차근차근 말해 주었다. "너를 사랑하니까 해선 안 되는 행동, 위험한 행동들, 다른 사람에게 피해 주는 행동을 알려주는 거야. 그렇다고 널 미워하는 게 아니야. 아기도 나중에 더 커서 그런 행동을 하면 똑같이 엄마, 아빠에게 혼날 거야. 그리고 네가 말을 해도 듣지 않고 여러 번 말하거나 화를 내야만 고쳐지니까 자꾸 화를 내게 되는 거고." 하지만 이 말을 듣고 첫째는 "그럼 안 사랑하면 좋겠어"라는 말을 했다. 이 말이 첫째의 진심은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혼나는 게 너무 싫은 거겠지. 나는 첫째에게 다시 "엄마는 널 사랑해.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고 넌 정말 소중해"라고 말했고, 첫째도 잠들기 전 "엄마, 사랑해"라고 말하며 잠에 들었다.


육아는 사람을 밑바닥까지 가게 만든다. 훈육의 방식에서도 오늘 남편과 내가 감정적으로 둘이 동시에 다그치듯 아이를 대한 점이 분명 있다. 하지만 선을 넘는 행동을 할 때, 더군다나 부모의 훈육이 잘 먹히지 않을 때 어떻게 하면 좋을지 많이 고민된다. 오늘 우리들은 멋진 부모는 아니었다. 내 자식이 멋진 자식이 아니라고 우리까지 괴물이 될 필요는 없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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