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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내누 Aug 07. 2022

2인 가족의 탄생

우리들의 해방일지: 아내 45일째

8월 7일(일) 습하고 더웠음


일요일이다. 둘째가 태어나기 전이라면 늘상 어딘가로 바깥나들이를 떠났겠지만 오늘은 신생아를 돌보느라 영락없이 집콕이다. 느즈막히 아침을 먹고 애 둘 육아를 이어나가다 보니 점심때가 다 됐다. 이러다간 또 하루가 금방 갈 것 같다. 평소와 다름없이 말이다.


8월이 되고 나니 시간이 7월보다 더 빨리 간다. 7월의 시간은 6월보다 빨랐다. 그렇게 8, 9, 10, 11, 12월이 지나면 곧 2023년 3월이 올 테지. 3월은 내가 복직하는 달이다. 오늘을 기준으로 복직까지 D-271일 남았다.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하고 싶다. 안 그럼 어제와 다르지 않은 오늘이 어영부영 지나갈 것이다. 남편에게 첫째 방 구조 변경을 제안했다. 남편도 흔쾌히 응했다. 첫째는 돌이 되기 전, 약 10개월 무렵부터 자신만의 방을 갖게 됐었다. (기특하게도 그리고 자기 방을 갖게 된 그날부터 첫째는 바로 분리 수면에 성공했다!)


둘째가 태어나면서 첫째 방은 점점 물건들로 가득 차게 되었다. 거실을 자신의 놀이공간으로 독점하던 황금 시절은 이제 끝난 것이다. 첫째의 방엔 책장, 장난감 수납장, 책상 등 여러 가구들로 빼곡해졌다. 숨만 쉬어도 답답한 첫째 방을 어떻게 바꿔줄 것인지 고민이 많았다. 오늘은 그 고민을 해결하는 날이다.


약 세 시간을 첫째 방 가구 구조 변경과 물건 정리에 몰두했다. 다행히 둘째가 타이밍 좋게 낮잠을 자 주었다. 첫째는 좋아하는 만화도 보고, 맥포머스도 하며 혼자 놀기의 정수를 보여주었다. 남편과 나는 부지런히 움직였고 아주 만족스럽게 아이 방 구조를 변경하고, 불필요한 물건 정리까지 마칠 수 있었다.


남은 하루를 더 만족스럽게 보내기 위해 첫째에게 외출을 제안했다. 책을 좋아하는 첫째를 위해 도서관에 다녀오는 것이었다. 늘 빌려보는 책이 있는데 역시나 첫째는 '그 책'을 보러 '그 도서관'에 가고 싶다고 주장했다. 라바가 있는 도서관 (우리 동네 주민센터 도서관에는 벽에 만화 캐릭터 '라바'가 그려있다)이 아니라고 강조까지 했다. 주관이 어찌나 뚜렷한지. 이 점은 아빠를 잘 닮았다. 그리고 이 도서관은 꼭 엄마와 다녀오고 싶다고 했다.


그래, 날씨가 무덥고 습하지만 널 위해 엄마가 움직일게! 난 선뜻 수락했고, 이때부터 우리 가족의 2인 가족 분리 육아가 시작되었다. 아이 둘을 기르고 있는 주변인들도 둘째가 태어나면 4인 가족이 2인 가족으로 바뀔 거라고 하더니만 역시 그랬다. 아이 2, 어른 2의 조합보다 아이 1 어른 1의 2개 조합이 훨씬 효율적이고 편했다. 오늘은 첫째와 나, 둘째와 남편으로 쪼개어졌다.


나와 첫째는 지하철을 타고 그 도서관으로 향했다. 지하철로 한 정거장 떨어진 곳이라 뚜벅이로도 부담스럽지 않은 거리다. 나도 몸을 좀 움직이고 싶었는데, 적당히 걸을 수도 있어 더 좋았다. 첫째와 외출을 하니 집에 있을 때와 비교도 안 되게 말을 잘 들었다. 아이가 어릴 땐 집에 있는 게 더 편할 때도 많다. 기저귀니 젖병이니 챙길 게 많다. 아이가 좀 크면 밖에 나가는 게 무조건 더 편하다. 적어도 내 경우엔 그렇다. 그리고 요즘 들어 첫째는 외출을 하면, 특히 엄마나 아빠 중 한 사람과만 단독으로 나갈 때면 집에 있을 때와 비교도 안 되게 말을 잘 듣는다.


오늘도 지하철을 타거나 공공 도서관을 이용할 때, 식당과 카페에 있을 때 등 타인과 함께하는 공간에서 비교적 말을 잘 들었다. 네 살 때완 비교도 안되게 성숙해졌다. 손 꼭 붙잡고 걸으며 농담 따먹기도 가능하다. 첫째와 나는 내내 함박웃음을 지으며 다녔다. 날씨만 좀 더 좋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싶었다.


도서관에서 책을 본 뒤 근처 식당에서 돈가스를 사 먹고, 카페에 들러 나는 커피, 첫째는 주스를 사 마셨다. 집에 오는 길에도 지하철을 타고 어둑해진 해질녘 한강을 바라보며 집에 왔다. 집에 오는 길에 동네 공원에 들러 놀이터에서 좀 놀고 있자니 아빠, 엄마와 놀고 있는 첫째 나이 또래의 3인 가족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신나게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하고 있었다. 첫째가 물끄러미 그 가족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곧 시선을 거두고 나랑 재미있게 놀았다. (아빠가 있으면 더 좋을 텐데, 뭐 이런 감정은 아닐 거다. 얘는 우리가 3인 가족일 때도 늘 남들을 뚫어지게 관찰하는 습관이 있다..;;)


첫째와 즐겁게 놀고 있자니 남편에게 카톡이 왔다.


'둘째 수면 성공! 들어올 때 조용히 들어와'


2인 가족 1의 육퇴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듯하다. (물론 그쪽은 밤 육아가 남아 있다. ^^)

2인 가족 2의 성공적인 육퇴도 방금 마쳤다. 집 안에서도, 집 밖에서도 오늘은 만족스러웠다. 남은 271일도 이렇게만 보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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