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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딘치 Jun 20. 2023

아들은 아무 소용이 없어요.

설잠을 자고 일어나서 아침에 엄마랑 병동 한바퀴를 돌고 있는데 맞은편 침실에 입원한 언니의 엄마랑 마주친다. 


"어제 잠 잘 잤어요? 옆에서 하도 소리를 지르시는 바람에 전 한숨도 못 잤어요. 여기 병실에 계신 분들 다 너무 착하신가봐. 아무말도 안하시는 걸 보면."

"저도 못잤어요. 다들 그냥 그러려니 하시는 것 같아요."

"아니 그래도 환자가 다 잘 자는 게 중요한데... 그나저나 무슨 병이에요? 우리 딸은 2년 전에 위암 3기였는데 이번에 전이가 되서 다시 입원했어요. 그래도 여기는 순서가 거꾸로가 아니어서 다행이네. 저는 딸이 그러니 아주 미치겠어요."

"암인 것 같아서 조직검사 했는데 결과가 안 나와서 조직검사를 다시 해야해요. 마음이 많이 아프시겠어요."

"왜 안그러겠어요. 손주들도 아직 어리고, 항암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어린 자식 새끼들 두고 나한테 그냥 죽어버리고 싶다고 하더라구요. 그래도 딸이 있어서 다행이네요. 저희 아들은 병원 코앞에 사는데도 잘 안들여다봐요. 딸이 최고에요. 아들은 아무 소용이 없어요."


며칠 뒤 새로 입원하신 환자분은 20대 아들이 있으신 것 같은데 본인 엄마가 걷지 못하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티켓을 취소할 수 없다는 이유로 여자친구와 해외여행을 가버렸다. 

그리고 간병인과 남편이 번갈아 간병을 하고 계셨다. 

그 부부는 자식들이 너무나도 괘씸한 나머지 재산을 물려주지 않고 우리가 다 써버리고 가자는 계획을 병실에서 세우셨다. 

아들 하나뿐인 나는 커튼 사이로 상황을 알게 되고는 감정이입이 되어 부글부글했다. 

병원에 있으면서 종종 듣게 되는 말. 


"아들은 아무 소용이 없어요."


정말 간병을 하고 있는 동안  보호자의 성별을 보면 딸들이 훨씬 많았다. 

물론 딸들이 간병을 할 수 밖에 없는 다양한 이유들이 있겠지만 아들이 간병을 하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흠칫 놀랄 정도로 드물었다. 

정말 아들은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일까. 

20년, 30년 금지옥엽, 애지중지 아들을 키워온 그분들의 결론이 '아무 소용이 없다'라는 것이라면 

열심히 키우되 아무런 댓가를 바라지 말자고 다시 한 번 다짐한다. 

그리고 나도 계획을 세운다.


"자기야. 우리 지금부터 노후 준비 잘해서 저기 병원 옆에 시니어스 타운있지? 거기 들어가는 거야! 

 우리 아들 부담되지 않게."


남편은 웃어 넘겼지만 나는 진심이다. 이사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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