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병동 6인실로 옮겨온 후 엄마와 나는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그곳은 서로 배려를 할 수도 안할 수도 없는 각자의 사연과 사정이 결코 만만치 않은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 우리의 불편함을 어디까지 참아야 하는지 끊임없이 고민해야 했다.
보호자가 있는 환자, 보호자 없이 혼자 있는 환자, 간병인이 있는 환자, 나이도 제각각, 증상도 제각각인 곳에서 '암'이라는 공통점만을 가진 채 저 사람은 어떤 암일까. 지금은 어떤 상태일까. 어떻게 병을 발견하게 되었을까. 궁금함이 가득했다.
"살려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 아들아. 여보. 나 좀 살려줘..."
엄마의 침상에서 대각선 자리에 있는 환자분. 간병인이 돌보시는 그 분은 밤이 되면 섬망증세가 더욱 심해지셨다. 엄마와 나는 자려고 누웠지만 살려달라는 그분의 간절한 외침을 들으며 눈을 꿈뻑꿈뻑 떴다. 그러다가 어느샌가 설핏 잠이 들면 어김없이 살려달라는 그분의 목소리를 들었다.
처음 병실을 옮긴 날 간병인과 간호사들이 다른 환자분들도 주무셔야 한다며 계속 설득(거의 설득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했지만 증상은 멈추지 않았고 결국 새벽 3시에 격리되어 다른 병실에서 주무셨다.
그렇게 첫날은 어찌어찌 지나갔다.
"얼마나 괴로우면 살려달라고 그러겠니..."
엄마는 밤새 살려달라는 그 분의 말을 들으며 얼마나 또 복잡한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을까.
앞으로 닥쳐올 고통이 저만치의 고통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주변에 가족없이 타인에게 고통을 호소해야하는 막막함, 곧 죽음이 눈 앞에 다가온 것만 같은 순간 삶에 대한 절박함, 그리고 그것을 다른 누구도 대신할 수 없고 오롯이 본인이 겪고 감당해야 한다는 처절한 외로움.
그런 비슷한 감정과 생각들이었으리라.
그분의 간절한 외침은 둘째, 셋째 날에도 계속되었다.
낮에는 괜찮으시다가 밤만 되면 그러시는 탓에 처음엔 애처롭던 마음이 점점 변해갔다.
설잠을 자다가 그 소리에 내가 한숨을 쉬며 일어나면 어김없이 엄마는 먼저 희미하게 눈을 뜨고 그 소리를 듣고 있었다.
"엄마, 계속 못잤어? 아 정말 미치겠네."
"아무말도 하지마. 얼마나 괴로우면 그러겠어. 원래 밤되면 더 아픈거야."
엄마의 공감섞인 말에 난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이번에도 알아서 간호사가 모시고 나가주길 바랬지만 그래주지 않았다. 이틀동안 우리는 계속 설잠을 자야했다.
다른 분들은 괜찮으신건가. 우린 어디까지 배려하고 어디까지 요구를 해야 하는 것인가.
6인실 병실에서 숙면까지 바라진 않아도 수면은 할 수 있어야 되는 것이 아닌가.
엄마에게 잘 자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한데.
결국 3일째 되는 날 간호사실에 도움을 요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