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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딘치 May 22. 2023

다시 검사의 시작

대장, 위내시경, 유방초음파, 자궁경부암, 신경검사

엄마는 1인실에서 1박을 하고 다음날 6인실 병동으로 옮겼다. 

아직 조직검사 일정은 나오지 않았고, 담당 교수들은 혹시 모를 다른 가능성들을 열어두고 그 동안 할 수 있는 검사를 다 해보자고 했다. 

오전에는 신경과와 혈종과 교수가 회진을 오고 간호사가 쪽지에 검사받을 시간이랑 위치를 전해주면 엄마와 함께 검사를 받으러 갔다왔다. 

바빴다. 언제 무슨 검사를 받으러 가야하는지 그날그날 알려주었기 때문에 상황을 봐 가며 자리를 비워야했고, 눈치를 봐 가며 씻으러 가야했다. 

7~8년 전에 자궁경부암 0기 진단을 받았던 엄마는 먼저 산부인과에 가서 유방초음파와 자궁경부암 검사를 받았다.


"음...자궁쪽 CT 결과상 이상은 없는데 그때 자궁경부암 0기 진단을 받았으면 출산이 모두 끝난 상황이었는데 자궁을 들어내자는 말을 하지 않던가요? 그게 조금 이상하네요."

"네... 그런 말은 하지 않았고 주기적으로 가서 검사를 받았어요."

"어쨌든 자궁 쪽에는 이상 소견이 없구요, 지금처럼 6개월마다 한번씩 검사를 다시 받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의사의 '음....'이란 말과 말 사이의 공백에서 나는 가슴이 또 한 번 철렁하며 자책했다.

나는 왜 그 때 엄마의 병을 가볍게 보았던 것인가. 

그래도 '암'이었는데 엄마가 진단을 받았다는 얘기를 하고 나서도 나는 한번도 진지하게 그 병이 줄 수 있는 위험신호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엄마가 자신의 건강을 잘 챙기고 있고, 그래서 초기에 발견한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 다음은 신경과에서 검사가 진행되었다. 

신경과 교수에게 발에서부터 종아리까지 점점 감각이 없어진다는 얘기를 하니 감각 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검사실에서 나온 엄마는 어찌나 주사를 찔러대는지 모르겠다며 들어가기 전보다 한껏 지친 표정으로 나왔다.

다음날 신경과 교수는 회진 때 감각 검사 결과도 정상이라고 얘기했다. 

점점 엄마의 증상에 대한 가능성이 좁혀지고 있었다. 


위와 대장 내시경도 받아보기로 했다.

엄마는 정말 사약을 받아든 사람처럼 대장 내시경 약을 먹는 것을 너무 힘겨워하셨다. 

대장내시경을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나마저 어떤 맛일지 느껴질 지경이었다. 

꾸역꾸역 그 약을 드시고 난 후 그 날 새벽은 둘다 거의 한숨을 못잤다.

병원에 다시 입원하면서 더욱 걷는 것이 힘들어진 엄마는 지척에 있는 화장실도 스스로 걸어서 가지 못할 정도가 되어 꼭 부축이 필요했다. 

엄마가 화장실을 가야겠다는 신호를 줄 때마다 나는 거의 반사적으로 일어나 화장실에 모시고 가고 그 앞에서 대기를 서야했다. 

새벽에 화장실을 거의 10번은 갔을까. 잠을 잔건지 안 잔건지 비몽사몽한 상태로 아침을 맞이했다. 

설상가상으로 전 날에 드신 냉면 탓에 목이 너무 말랐지만 검사를 받기 전까지 물조차 마실 수 없는 상황에 한층 더 괴로워하셨다. 

물을 마실 수가 없어 거즈에 물을 적셔 마른 엄마의 입술에 양쪽을 번갈아가며 적셔주었다. 

거즈의 물이라도 빨아 먹고 싶었을 간절한 목마름을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해서 참고 참은 엄마는 휠체어에 탈 힘도 없이 간이 침대에 옮겨져서 검사를 받으러 갔다. 

 

검사실 의자에 앉자 피곤이 몰려왔다.  

잠깐 졸아야지 생각하며 자세를 고쳐 앉고 주위를 둘러보는데 4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딸과 남편, 친정엄마가 심각한 표정으로 검사실에서 나오는 모습이 보인다. 잠시 뒤 의사가 그 가족 옆에 선다. 


"환자분 남은 시간이 몇 달 안 남았습니다. 병원에서 마지막을 맞이하시는 것보다 집에서 가족들과 편안한 시간을 보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흐느끼는 가족들. 마치 드라마 속 한 장면처럼 그 장면을 내가 보고 듣고 있었다. 


"어떡해. 우리 아빠 어떡해...."


나도 모르게 같이 눈물이 흘렀다. 

우리 엄마는 아직 의사에게 그 말을 듣지 않았다는 잠깐의 안도감 뒤에 나도 곧 그 가족들의 절망과 슬픔을 알게 될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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