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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딘닷 May 03. 2016

[문화] 이름은 들어봤나, 대만 아이돌

F4를 떠올렸다면 이미 번지 수가 틀렸다, 한참

잡담

한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차일피일 밀어두었던 재밌는 주제들을 오늘에서야 건드려 보네요.
그동안은 맛집 내지는 여행지 관련 블로그를 많이 올렸었는데요, 이제까지의 트래픽 트렌드를 보면 아무래도 이런 포스팅들은 개인들이 어딜 놀러 갈 계획이거나 놀러 가서 개인이 일회성으로 검색해 보고 마는 경우가 대부분인지라 트래픽의 폭발성이 적지만, 심도 깊은 주제들은 그냥 보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공유를 하는 경우가 많아 한 번 폭발하면 그 파급력이 훨씬 강한 것 같습니다.


프롤로그

최근 들어 대만에서 컨텐츠 쪽 업무를 맡게 되면서 한국 및 대만 컨텐츠들을 접할 기회가 적지 않았습니다. 드라마 쪽은 한류 드라마 못지 않게 대만 드라마도 선전하는 양상을 보였는데, 재밌는 것은 대중음악,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아이돌 세계는 한류 컨텐츠가 장악하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대만에서도 한국 아이돌의 인기는 상당하다.

근데 곰곰이 생각해 봐도 이상한 게 여기는 대만인데 왜 한류 아이돌이 점령하고 있는 걸까!
대만 와서 1년간 한국 또는 일본 아이돌은 봤어도 대만 아이돌은 도통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이유는 뭘까! 그래서 좀 주변 대만 친구들을 괴롭히며 파 보기로 했습니다.

연예계라는 '횟집'에서 한국인은 '사시미'를, 일본인은 '회'를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사시미는 일본의 날생선을 말하는 거고, 회는 한국인의 날생선을 각각 의미하는 말 아님?
회 문화에 일가견 있으신 분들은 흔히들 아시는 얘기지만, 일본은 생선을 잡은 뒤 바로 회로 떠서 먹지 않고 일정 기간 숙성을 통해 생선살이 더 부드럽게 되도록 한 후 먹는 '선회'를 선호하는 반면, 한국은 배에서 잡자마자 바로 떠 먹는 (아.. 벌써 군침이...) '활어회'를 선호해 왔습니다. (물론 개인별 취향은 다 다르지만 각 나라의 습성을 비교해 보면..)

일본의 사시미 (선어회)

한국의 활어회

근데 연예계에서는 이게 뒤바뀐 양상을 보입니다.
무슨 말이냐면, 일본 연예기획사는 길거리 캐스팅 또는 오디션 등을 통해 뽑은 연예지망생들을 비교적 수년간의 하드 트레이닝 없이 신선한(?) 상태로 데뷔시키는(そのまま出す) 이미지가 강합니다.
지금은 일본 뿐 아니라 아시아에서 유명한 SMAP(특히 그룹 리더 나카이의 가창실력은 유명하죠...;;), ARASHI, 모닝구무스메, AKB48 등 일본 그룹 아이돌을 보면서 춤과 노래가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분은 적다고 봅니다.
일본 친구들에게 물어본 결과로는, 뭐랄까 춤/노래가 대단해서 좋아한다기보단 그냥 동네 옆 집에 사는 이웃 같은 친근함에 개인으로서의 매력이 섞여 있어 좋아한다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이렇게 캐스팅부터 데뷔까지 비교적 빠른 시간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활어회'에 가깝다고 보여집니다.

쟈니스 대표 장수 아이돌 그룹, SMAP

아키하바라(약칭 아키바, AKIBA)의 48명이라는 뜻의 AKB48.


반면 한국은 어떨까요?
보통 길거리 캐스팅 또는 오디션으로 연습생에 발탁되면 고시생과 같이 매일매일을 맹훈련 속에 그것도 짧게는 2~3년, 길게는 5~7년도 넘게 트레이닝을 거치는 케이스가 대부분일 겁니다. 노래, 춤, 외모 어디 하나 빠져서는 안되는 그야말로 모든 이가 우러러 볼 수 있는 우상과 같은 존재, 즉 '아이돌'이 되어야 하는 겁니다. 완성도를 높여야 하는 만큼 소속사에서 들여야 하는 공(돈, 시간)도 크겠죠..
(*이는 추후에 한국 소속사들이 소속 연예인과 노예계약 등의 이유로 분쟁을 많이 일으키게 되는 빌미이기도 합니다. 투자를 많이 한 소속사는 소속 연예인이 스타가 된 후 그만큼 '뽕'을 뽑으려 하겠지만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마음가짐이 다르다고 이미 떠버린 스타는 열심히 활동해도 본인에게 떨어지는 건 적은 상황을 견디긴 어려울 것입니다.)
결국 한국은 캐스팅에서 '숙성'을 거친 후 데뷔하기 때문에 '선어회'에 가깝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잘 키운 아이돌 하나가 회사 하나를 먹여 살리는군요. 명실상부 국위선양 중인 한류 선봉 아이돌, 빅뱅

이렇게 준비된 정도가 다른 상태에서 데뷔를 하기 때문에 그 파급력도 다를 수 밖에 없다고 봅니다.
물론 일본 연예 문화가 예전부터 아시아에서 영향력을 발휘했던 건 사실이지만 한류처럼 '일류(日流)'라는 붐을 형성시키는 단계까지 가지는 못했습니다.
그 이유가 바로 연예인(특히 그룹 아이돌)들의 준비 정도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저는 봅니다.


흥미롭게도 한 일본 방송에서도 한국 교수님이 비슷한 논지로 펼치시는데 일본 측 패널 반응이 흥미롭네요. 이런 정서가 일본의 연예계 문화를 지속시키고 있는 저변의 이유인듯 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i9X65_Fo51E

큰 물에서 노는 물고기가 덩치도 크다

- 한국
기본적으로 인간이라면 춤, 노래는 고대 원시인 시절부터 존재해온 오락의 기본입니다. 완성도 높은 춤과 노래가 가능한 아이돌이 한국에서만 잘 될 이유가 없다는 거죠.
기본기가 탄탄한 아이돌들은 자연스럽게 해외로 뻣어나가게 됐고 해외 콘서트, 상품 판매 등으로 연예기획사는 많은 돈을 벌게 됩니다. 그 돈이 어디로 가느냐? 당연히 새로운 스타의 새싹 발굴 및 트레이닝 그리고 데뷔 스타를 위한 마케팅에 대대적으로 쓰이게 됩니다.
그러면 더 잘 트레이닝 받고 더 잘 포장되어 활동하는 한류 아이돌 스타는 그야말로 '큰 물에서 노는 덩치 큰 물고기'가 되어 향후 데뷔하는 '치어'들의 길을 터주는 역할까지 해주게 됩니다.

한국 아이돌 산업 성장의 중심에 서 있는 3대 기획사

- 일본
반면, 일본 아이돌은 기본적으로 내수용에 가깝습니다. 많은 일본 제품들이 그렇듯, 대부분은 일본인을 위한 제품을 내놓습니다. 시장 규모가 작아 항시 해외 진출을 염두에 두어야 하는 한국과의 차이점이죠. 다만, 일본에서만 통하는 아이돌로도 나름 적지 않는 돈을 벌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번 돈으로 일본 기획사들은 자사 소속 아이돌들에 대한 마케팅을 벌일 수 있습니다.

 그룹 내 아이돌 총선을 통한 마케팅으로도 유명한 AKB48. 이걸로 그룹 내에도 철저하게 서열이 매겨진다...

- 대만
그럼 대만의 케이스는 어떨까요?
혹시 여러분들께서 들어본 대만 그룹 아이돌이 몇이나 되는지....
비교적 아이돌 세계에서 중년(?)으로 평가되는 F4, S.H.E., Dream Girls 그리고 최근에 대만에 와서 알게 된 SpeXial을 제외하곤, 1년 넘게 살면서도 들어본 이름이 없습니다.
실력 하나로 평가 받는 개인 가수(아이돌)들이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각광 받는 그룹 아이돌은 적은 게 사실입니다.

머나먼 옛적, 한 인기했었던 우리 오리지널 F4 형님들.

한국 S.E.S 같은 느낌의 S.H.E.

그나마 신세대 그룹 아이돌 중 하나인 SpeXial.. 그러나 고등학교 졸업한 대만 사람들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 정리
결국 대만은 위에서 언급한 한국과 일본 기획사들이 가진 '돈'이 없습니다.
왜 없느냐?
일본처럼 내수 시장만을 노리고 아이돌을 데뷔시키자니 내수 시장 규모가 작습니다. 그렇다고 해외로 진출시키자니 한국의 완성도 높은 그룹 아이돌과 이들을 지원해주는 소속사의 머니(마케팅) 파워를 견뎌내기가 어렵습니다. 
즉, 대만 기획사들이 버는 아이돌 데뷔를 통해 벌 수 있는 돈에 한계가 있다 보니 아이돌 트레이닝에도, 이들 데뷔 후 마케팅에도 자금을 쓸 여력이 떨어지게 되고, 결국 내수 시장에 진출한 한국/일본 아이돌에 밀려 입지가 좁아지는 악순환에 빠지게 됩니다.

정리하자면 대략 이런 상황이겠군요.


결국 실력파 아이돌은 쯔위처럼 한국이나 일본에서 스카우트해가고 당연히 본인의 실력 향상 및 지명도 확장에 유리한 한국 연예계 진출이 가속화 되게 되어, 마치 야구 스타들이 한국 야구 리그, 일본 야구 리그를 거쳐 메이저 리그에 리그에 가는 듯한 상황이 벌어지게 됩니다. 일종의 Brain Drain 현상이죠.

한국의 아이돌 양성 인프라(트레이닝, 마케팅)를 이용해 더 빨리 인지도를 확보하려는 해외 아이돌의 니즈와 중국 시장을 잡으려는 한국 연예 기획사의 니즈가 맞아떨어져 점점 더 한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외국인이 늘어나는 추세이다. 

SIXTEEN이라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데뷔한 JYP 아이돌 그룹, 트와이스. 이 그룹엔 한국인 멤버 5명, 일본인 멤버 3명, 대만인 멤버 1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걸 좀 더 비즈니스적인 관점에서 보면, 상품이 잘 팔리려면 상품(아이돌) 자체가 대단히 매력적이거나 상품의 퀄리티는 조금 떨어지더라도 마케팅을 통해 이를 고객(대중)에게 제대로 포장해서 전달하는 능력이 중요하다는 얘기인데, 대만은 이 면에서 모두 떨어지는 것 같은 힘에 부치는 상황이라고 보이네요.

에필로그
이 얘기를 하다 보니 예전 한국 영화 산업과 '스크린 쿼터' 관련 논쟁이 떠오르네요.
당시에는 의견이 분분했지만 그래도 그렇게 양성한 한국 영화산업이 지금은 외국의 영화 컨텐츠에도 밀리지 않게 성장한 건 그만큼 '트레이닝'을 통한 내실을 다지는 한편, 이를 통해 벌어들인 자금을 다시 한국 컨텐츠 업계에 재투자하는 과정에서 나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언론 기사에서는 한류 컨텐츠가 천편일률화되어 언제든지 주도권을 뺏길 수 있다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이렇게 축적된 컨텐츠 제작 및 탤런트 양성 노하우는 당분간 한국 나아가 아시아 대중 문화 산업의 자양분이 될 것입니다.
최근 완다 그룹 등 중국 대기업에 의한 한국 컨텐츠 투자 건 수가 증가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중국이 자국의 문화 산업을 잘 양성한다면 중국 내 한류의 아성도 조만간 위협 받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만 중국 국내적으로는 정부 제재 등에 의한 컨텐츠 다양성의 제약, 대외적으로는 일본, 한국, 대만 등 대중 문화에 있어 다소 선도적인 위치에 섰던 주변 국가들의 대중이 심정적으로 중국의 대중 문화를 받아들이는 데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입니다.

완다그룹의 컨텐츠 투자 부문을 책임지고 왕젠린 (좌) / 완다그룹 회장이자 왕젠린의 아버지(우)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선과 관련된 비유를 썼는데 이에 대해선 독자 여러분의 너그러운 양해 부탁드립니다.

*사진 출처: google 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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