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판 전원일기를 찍다
사파로 가기까지..
하노이에 도착한 이후, 하노이에만 있기 아까워, 중국 계림의 '바다 버전'이라고도 할 수 있는 기암괴석의 해안선인 하오롱베이에 간 것은 전편에서 이미 소개한 바대로이다. 나름 인지도도 있는 곳이라 어렵지 않은 결정이었다.
문제는 그 외에 른 한 곳을 어디갈까 고민되었다.
물론 인터넷에서 이것저것 찾아봐도 되지만 당시에는 지금처럼 베트남이 어어엄청 유명한 곳은 아니었던 지라 인터넷 컨텐츠 대신에 직접 현지 여행사에 찾아가보기로 했고, 여행사는 여러 안을 주었다.
그 중에서 눈에 띄었던 곳이 바로 '사파(Sapa)'였다.
뭔가 산업화된 베트남 하면 월남전과 한국의 70-80년대 산업화 시대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고 보니 베트남도 내전을 거쳤고 역사적으로도 중국으로부터 자치했다는 점에서 참 비슷한 나라라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전형적인 베트남의 모습이 아니라, 도시에서 벗어나 조금 다른 베트남 본연(?)의 모습을 보고 싶어서 망설임 없이 사파를 골랐던 기억이 난다.
조그만한 여행사 사무실에서 나와 내 친구는 점원과 계산기를 가운데 두고 영어와 안 되지만 깎아달라는 애교용 베트남을 구사하며 나름 괜찮은 가격에 사파로 향하는 야간 버스를 구할 수 있었다.
하오롱베이를 당일치기로 보고 하노이로 돌아온 그날 밤, 한숨을 돌릴 틈도 없이 부랴부랴 아슬아슬하게 사파행 야간버스에 몸을 실었다.
다음 날 이른 아침 버스가 속도를 멈추고 창밖을 보니 어느 마을에 도착했다.
비가 많이 내렸는지 창밖은 흐렸고 산간지방이라 기온도 떨어졌는지 창문에 옅게 서리가 껴있었다...
화창한 날씨의 환대를 기대했었는데... 슬마 비가...!!ㅠㅠ
그치만 다행이 비는 한바탕 지나간 후인듯 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도시의 베트남인들과는 다른 원주민 의상을 입고 있는 아낙네들이 눈에 띄었다.
마을 한 가운데에는 이런 호수가 있었다.
간밤에 씻지도 못하고 꾀죄죄한 상태로 쪽잠을 자서 좀 쉬려나 했는데 사실 우리에겐 험난한 하루가 기다리고 있었다.ㄷㄷㄷ
버스 앞 원주민 아낙네들을 따라 마을을 가로질러 한 호텔로 향했다.
일단 집합 장소에서 버스 일행 중 마을의 숙소에 머물 사람들과 산 속 오두막으로 들어갈 사람들을 나누는 듯 했다.
산속으로 더 들어갈 일행과 체크인을 할 일행을 구분하는 동안 몸을 녹일 겸 베트남식 연유커피를 한 잔씩 했다.
원래 커피를 안 마시지만 달달한 연유 커피가 퍽 맛있었던 기억이 난다.
기다리면서 이탈리아에서 온 커플을 만났는데 시종일관 미소를 지으며 유쾌하게 유창한 영어로 대화를 이어갔었다.
이탈리아의 한 바에서 바텐더로 일하던 남친을(3년이 지난 지금도 잘 사귀고 있다) 만났다는 이야기를 하며 지울리아(Giulia)는 이태리 커플 답게 호기롭게 남친의 무릎에 앉아 그를 키스했다... 오 자유로운 유럽이여...ㅎㅎㅎ
잠깐동안의 만남이었지만 지금도 인스타, 페북 친구로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고 있다. 여행의 묘미란 실로 이런 게 아닐까 싶다.
아침 산골짜기여서 그런지 산등성이 너머로 구름이 짙게 깔려 있다...
(부디 비는 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래 본다.)
나는 해외여행을 가면 꼭 그 나라의 돈을 사진으로 남겨두는 습관이 있다.
마음 같아서는 지폐 자체를 보관하고 싶지만 그대로 보관만 하기엔 돈의 가치가 있다 보니 이렇게 앞뒤로 사진만 남긴다.
베트남도 공산국가여서 그런지 중국의 마오쩌둥 아저씨처럼 온 화폐에 모두 건국의 아버지인 호치민이 들어가 있다.
우리가 잠시 대기했던 호텔 식당에 담궈져 있던 인삼주 비스무리하게 생긴 술..
(여기도 이런 걸 담궈 먹는 걸 보면 한자도 그렇고 나름 공통의 문화권이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우리의 대표 가이드가 될...ㅇㅇ양... (기록해 두지 않았더니 이름을 까먹어 버렸다 ㅠㅠ 미안...)
영어가 엄청 유창해서 꽤나 놀랐었는데... 이렇게 찾아오는 관광객들 틈새로 독학으로 공부했다고...
열정만 있다면 세상에 못할 일은 없겠구나 싶었다.
정말 여러모로 이번 투어의 정신적 지주로서 활약했던 그녀... 얼굴도 귀요미상이다~
그녀는 식당 한 켠에 있던 사파 지역 지도를 보며 이번 투어에 대해 간단히 설명을 마치고 길을 나섰다.
호텔을 나서자마자 한 무리의 여성분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산속 깊숙한 곳으로 우리를 안내할 이 아낙네들은 시골의 순수함을 간직한 듯 친절한 미소로 우리를 맞았다.
우리처럼 베트남 각지에서 온 관광객들이 각자의 숙소를 찾아 가는 길...
결혼을 한 아낙네들을 등에 아기를 업고 있었는데, 매일 아침 마을에 공예품을 팔고 산 물건들을 다시 산속까지 운반하는 한편 관광객들의 길잡이 노릇도 하는 모양이었다.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바디 랭귀지와 시골사람 특유의 맑은 미소 속에 오가는 이심전심에 금방 서로에게 친숙해졌다.
사파는 산간 계곡 양 끝에 마을이 있어 골짜기 아래로 보이는 경치가 정말 아름다웠는데 최근엔 이런 외부 관광객들이 늘어 관광업이 주요 밥벌이가 되었다고 한다.
그만큼 경관이 좋은 곳에는 호텔 건물들이 여기저기 들어서고 있었는데 이 마을 고유의 아름다움이 훼손되는 것 같기도 해 안타까웠다.
이런 뷰를 방 안에서 보기 위해 말이다...
그래서 이런 전통 가옥들이 하나 둘 허물어져 가고 저런 신식 콘크리트 빌딩들이 들어서고 있는 중이었다...
문명의 이기란 그런 것일까...
어째 내가 그 외부 '침입' 관광객이 된 것 같아 마음 한 켠이 무거워졌다.
포장도 되지 않은 흙길을 걸으면서 오른쪽으로 내려다 보이는 경관을 연신 찍어댔던 기억이 난다.
고삐도 없이 자유롭게 풀을 뜯고 있었던 말...
이 때는 그나마 좁지만 이렇게 포장된 일부 구간이 있었지만, 걸으면 걸을수록 왜 우리가 차가 아닌 걸음으로 이동하는지 알 수 있었다.
심지어 이 아낙네들은 등에 애기를 업고도 거뜬히 가는데 내가 불평할 수 있는 처지도 아녔다.
우리와 함께 하게 된 일행은 정말이지 인터내셔널 그 자체였다.
알제리계 프랑스 여성 2명, 영국계 유대인 1명, 이스라엘 부부 1쌍, 아르헨티나 커플 1쌍, 인도인 1명, 스페인인 1명
프랑스에서 온 알제리계 이 숙녀들은 얘기도 거침 없이 잘 하고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톡톡히 했다.
두 명 당시에는 두바이에서 일한다고 했었는데 지금은 프랑스로 다시 돌아간 듯 하다.
한 명이 눈 한쪽을 가리고 있는 이유는 하노이에서 현지 남성과 실랑이를 벌이다가 그 남자가 눈에 펀치를 날렸다고...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종종 여행을 하다보면 별의 별 일이 다 생기기 마련이다. 더 큰 일 없어 다행이기도 하고 그걸 밝은 모습을 툴툴 털고 여행하는 그녀의 모습이 멋졌다!
아르헨티나에서 온 마틴과 플로리나 커플... 페미니스트 여친과 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남친...
까탈스럽지 않고 유쾌한 커플이어서 금새 친해질 수 있었다.
처음엔 캐나다나 호주 같은 데서 왔을 줄 알았는데 아르헨티나라고 해서 못 하는 스페인어로 좀 친한 척 좀 해봤다. ㅎㅎㅎ
이야기가 길어져 이쯤에서 끊고 좀 더 깊숙한 산속으로 들어가 보도록 하겠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