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을 찾아 헤메는 대만 세렝게티의 한국산 맹수
토요일 아침... 주말을 어떻게 보낼까 고민하며 페북 브라우징 중 회사 동료의 사진 한 장을 접합니다.
논밭에 들어가 익살스런 표정을 지은 바로 이 사진!
풍경도 너무 아름답습니다. 산과 맞닿아 있는 이 광활해 보이는 이 고장은 과연 어딜까?!
위치를 확인해 보니 먼 곳이 아닌 타이페이(!) 입니다.
단수이, 스린 야시장 또는 온천으로 유명한 베이터우 갈 때 타는 빨간색 선에 있는 쫑이(충의, 忠義)역인데요. 계획은 딱히 없고 날씨는 (무지 덥지만) 좋고...
대만 온 후에 종종 있는 일이지만 즉흥적으로 아무 사전 계획 없이 모험을 떠나기로 합니다 ㅎㅎㅎ
간단히 인터넷에서 정말 이런 논밭이 있는지 확인해 보니, 있는 모양. 이 단서 하나만을 가지고 무작정 떠나봅니다. (사실 충의역 근처에 있다는 것만 알지 정확한 위치는 오리무중인 상태!)
사범대에서 같이 중국어 수업을 들었던 일본/대만 혼혈 유키 누님을 섭외 후 충의역에서 만나기로...
일단 제가 사는 네이후(內湖)에서 MRT를 타고 충의역으로 가려면 엄청 돌아가야 해서 버스로 스린(士林)까지 이동합니다.
간만에 보는 스린역이 반갑네요~ㅎㅎㅎ (7년전 처음 대만으로 여행 왔었을 때의 기억이 납니다. 그 땐 고궁박물관 가려고 여기서 내렸더랬죠...)
저 멀리 스린역 입구가 보이네요~ 버스에서 MRT로 환승~
20분 정도 MRT를 타고 올라가니 충의역에 도착~
지붕이 중국 전통 기와지붕색을 본 뜬 황금색. 운치있네요~ 비록 일개 시골(?) 역사지만 나름 센스 있게 지었습니다~
역 바로 앞에 논밭이 얼핏 보였는데 규모가 작아보여 설마 이건 아니겠지 하고 다른 곳을 찾아 나섰지만... 이 곳 주민들도 그 외에는 딱히 들어본 논밭이 없었던 모양...
(논밭을 보러 여기까지 온 외국인들이 신기하다는 표정이 대다수 ㅎㅎㅎ)
그렇게 지도를 뒤져 보다가 이 근처에 생태공원이 하나 있어서 여기까지 온 게 아깝기도 하여 우버를 불러 이쪽에 먼저 가보기로 합니다~
Guandu Nature Park
대만
이런 외딴 곳에... 이런 게 다 있네요~
날도 덥고 위치도 이래서 인지 역시 한산하네요. 예전에 순천만 생태공원에 갔었을 때 생각이 문득 나네요 ㅎㅎ
가격은 성인 50 NTD (한화 2천원) 정도..
입장하니 무슨 동물원 같은 느낌입니다.
녹음이 우거진 늪지대 느낌도 좀 나고...
조금만 걸어보니 습지로 접어듭니다.
여기저기엔 이런 오두막이 있는데 안에 들어가서 습지에 서식하는 새들의 생태를 감상할 수가 있습니다... 다만 말 그대로 안이 사우나 찜통이라...오래는 절대 못 있겠더군요 ㅠㅠ
습지 근처에는 울타리를 쳐놓고 저렇게 물소를 기르기도...
이놈도 더운지 흙탕물에 들어가 몸을 식히기도 하고 하더군요...
습지까지도 들어갈 수 있는데 정해진 시간에 진행되는 가이드 투어에 참가해야만 입장이 가능하다고 하더군요.. 3시반 정도에 있다고 했던듯...
유키 누님과 한 컷. 간만에 일어 연습 ㅎㅎㅎ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타이페이는 산들에 둘러 쌓인 분지 지형인데 한편에는 코끼리 상의 대둔산, 다른 한편에는 사자 상의 관음산 사이에 껴 있는 형상이라고 하네요...
아이고... 이 더운 날씨에 꼬맹이가 엄마 따라서 잘도 왔네요 ㅎㅎㅎ
다시 원래 저희의 주 목적이었던 미스테리(?)의 황금 논밭을 찾으러 고고씽~
육교를 건너 다시 충의역 근처에서 봤던 그 논밭으로 돌아와 봅니다. 마을 사람들의 안내 단서에 따르면 여기 밖에 논밭이 없다고 하니...
저 멀리 보이는 산등성이가 참 아름답네요...
흡사 제가 처음에 페북 친구 사진에서 봤던 산과도 얼핏 비슷해 보이는 것이... 왠지 이 근처가 맞을 것 같다는 직감이...+_+
유키 누님과 사이 좋게 한 장씩 사진을 남기고.
논밭 마을로 진입~
근데 친구가 사진을 찍었던 곳이 어딘지 아직 아리송~ @_@
오른쪽은 뒷 배경으로 산이 아니라 빌딩이 듬성듬성 보여서 탈락!
저만치에 충의역사가 보이네요~
아무리 봐도 여긴 아니네요~
그렇지만 늦은 오후의 햇살을 받은 논밭이 더욱 더 황금 물결로 빛나는듯 합니다~
현장 검증 차원에서 이 논밭 안쪽으로 들어와서 반대편을 배경으로 해서 찍으면 그 각도가 나올까 하여 들어와 봤으나... 역시 아니네요;;
그래서 그 논밭을 나와 좀 더 마을 안 쪽으로 들어가 봅니다.
논밭 주인인 듯한 분이 쌀을 펼쳐 놓고 말리고 계시네요~
이분들을 지나쳐서 더 들어가 봅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저 중 한 명이 회사 동료였을 수도 있었다는...)
참고로 대만은 날이 따뜻하고 겨울도 우기라, 1년에 2모작에서 3모작 쌀농사가 가능하다고 하네요 ㅎㅎ
그러다가 결국 '심'을 보고 말았습니다~ 유레카! 찾았습니다!
바로 자리를 잡아 봅니다.
마치 어미 닭이 달걀을 품듯 둥지 속으로 들어가 알을 품는 심정으로 살포시 앉아 봅니다...
따뜻한 것을 보니 이곳이 맞습니다. 녀석... 여기서 사진을 찍었군.
뭔가 대단한 추리 사건을 해결한 듯한 뿌듯한 마음과 녀석의 꼬리를 밟았다는 쾌감이 묘하게 얽혀 적지 않은 성취감으로 더위에 지치고 땀에 찌든 제 심신에 보답해 줍니다.
농부 아저씨에게는 좀 미안하지만 들키지 않게 살금살금 논을 헤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입장...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을 말해주는 한 컷?ㅎㅎㅎ
한 장으로는 분이 안 차 마구마구 찍었습니다.
컨셉은 '살'이 아니라 '쌀'에 굶주린 인간 맹수...ㅎㅎㅎㅎ
먹이를 포착 후 수풀 속에 숨어 사냥감을 인내심 있게 기다리는 맹수 ㅎㅎ
유키 누님도 적잖게 재밌어 보였는지 기어이 따라서 들어가 몇 컷 찍으심 ㅎㅎㅎ
근데 반바지 입고 들어갔는지 풀에 베어서 다리가 아작이 났다는...
암튼 별 것 아닌 일상 속에서 재미를 찾는 대만인들의 재치에서 시작된 모험...
재밌네요~ 대만에 오시는 여러분들도 이렇게 동기를 부여하며 돌아다니면 틀에 박힌 여행이 아니라 좀 더 의미 있고 스토리가 살아 숨쉬는(?) 여행을 하실 수 있을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