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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진 May 26. 2023

제대로 마주한 물속 세상은 정말 아름다워서

에콰도르 갈라파고스에서 심해 스노클링

에콰도르 갈라파고스의 산크리스토발 섬, 물개 해변에서


  에콰도르 과야킬에서 비행기를 타고 2시간을 날아 갈라파고스 섬에 도착했다. 에콰도르 국민이 아닌 외국인은 갈라파고스행 비행기를 타려면 가장 높은 등급의 좌석을 구매해야 해서, 강제로 럭셔리한 비행시간을 즐겼다. 그래봤자 좌석은 일반석과 똑같고 중간에 맛있는 간식과 감자칩 한 봉지를 더 줬을 뿐이다.


  공항에서 깐깐한 짐 검사를 마치고 나와 다시 작은 모터보트를 타고 산타크루즈 섬으로 향했다. 시내로 들어서니 거리마다 각기 다른 간판을 내건 다이빙 샵이 즐비했다. 과연 물놀이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무덤이라 불릴 만했다. 가게 앞에는 요일마다 다른 다이빙 포인트가 적혀 있고, 다들 문을 활짝 열어둔 채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었다. 구경할 겸 한 가게에 들어가 다이빙 가격을 물어보니 상상 이상이다. 심지어 자격증이 없는 사람은 체험 다이빙밖에 할 수 없는데, 자격증이 있는 사람과 같은 돈을 내고서 단 한 번의 다이빙만 즐길 수 있었다.

  

  아직 타강가에서의 여운이 가시지 않기도 했고, 부담스러운 비용을 내면서까지 체험 다이빙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몸 좀 풀 겸 가볍게 스노클링 투어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첫 스노클링 포인트는 산타크루즈 섬 근처에 위치한 핀존 섬으로 정했다. 많고 많은 다이빙 포인트 중 어느 곳으로 가도 괜찮았지만, 핀존 섬에서는 온순한 화이트팁 상어굴을 볼 수 있다는 점이 가장 끌렸다. 인당 130달러라는 거금을 내고 영수증을 받는데 손이 살짝 떨렸다.




  스노클링 투어를 예약하고 나서 시간이 남아 섬을 탐방하러 이곳저곳 돌아다녔다. 다큐멘터리에서 본 갈라파고스는 온통 울창한 숲과 푸른 바다로 뒤덮여 있었는데, 직접 마주한 산타크루즈의 마을은 생각보다 칙칙해서 놀랐다. 바닥엔 모래먼지가 많고 길거리에는 무채색의 건물이 늘어져 있는 모습이 생소한 느낌. 그나마 부두 근처에서 갈라파고스의 명물이라는 바다사자를 많이 마주쳤다. 바닥에는 찰싹 달라붙어 있는 바다 이구아나도 많아서, 모르는 사이 녀석들을 밟지 않기 위해 눈을 부릅뜨고 다녀야 했다.


  혹시라도 저렴하고 큰 랍스터가 나오지 않았을까 해서 수산시장 쪽을 기웃거리는데, 운이 좋게 아기 바다사자도 볼 수 있었다! 시장 가까이 다가갈 수 없게 줄이 그어져 있기에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줄에 매달린 종이를 자세히 보니 아기 바다사자의 사진과 함께 짧은 스페인어가 쓰여있었다. 궁금해서 목을 빼고 살펴보니 옆에 있던 사람이 아기가 있는 곳을 조용히 가리켰다. 너무나도 작아서 있는 줄도 몰랐는데, 어른 바다사자 옆에 딱 붙어 꼬물대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따뜻해졌다.




  다음날 아침 일찍 투어 출발 장소에 도착하니 나와 친구 외에도 사람이 대여섯 명 정도 더 있었다. 작은 배를 타고 스노클링 포인트까지 이동하는 동안 대화를 나눠보니 몇 명은 다이빙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숙련자였고 다른 몇 명은 우리처럼 스노클링도 해본 적 없는 초보자였다. 스노클링을 어려워하는 사람들을 위해 가이드가 끌고 다닌다는 작은 구명 튜브는 꽤나 붐빌 듯했다.


  배는 1시간 정도를 달려 핀존 섬 근처에 도착했다. 배가 물이 잔잔한 곳에 정박하자 각자 챙겨 온 웨트슈트를 입고 마스크와 오리발을 점검했다. 내가 상상했던 스노클링은 해변가에서 발이 닿는 물 위를 돌아다니는 그림이었는데, 보트 바깥을 내려다보니 아래가 까마득해 보이지도 않았다. 수영을 못 하는 사람은 구명조끼를 입고 들어갈 수 있었지만, 그래도 첫 스노클링부터 깊은 바다 한가운데에 놓이려니 심장이 두근거렸다.


  용감한 사람들은 신호가 주어지자마자 신나게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나는 최대한 조심스럽게 배에서 미끄러져 내려갔다. 처음에는 오리발도 마스크도 익숙하지 않아 친구 손을 있는 힘껏 붙들고 돌아다녔다. 그러다 친구와 함께 마스크를 물속에 집어넣고 수면 아래를 슬쩍 구경했는데, 순간적으로 두려움 대신 경이로움이 강하게 몰려왔다. 타강가에서의 바다와는 차원이 다른 맑고 깨끗한 물 덕분에 주변을 돌아다니는 다양한 해양 생물의 고유한 색깔과 아름다움이 선명히 보였다. 그때부터 깊은 물에 대한 두려움이 어느 정도 사그라들었다. 바닷속 세상에 정신이 팔렸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겠다.


  한참 수면 아래의 생생한 풍경을 즐기며 돌아다니던 우리는 가이드가 찾아낸 화이트팁 상어의 동굴에서 잠시 머물렀다. 발을 잘못 움직여 상어를 공격하게 되면 위험하다는 말에 온몸을 뻣뻣히 굳힌 채 숨을 죽여야 했지만 난생처음 가까이서 본 자유로운 상어는 너무나 신기한 존재였다. 가끔 우리 옆을 스쳐 지나가는 바다거북도 있었다. 그들을 따라 헤엄치며 거북이가 해초를 잘근잘근 씹어먹는 모습도 구경했다. 지구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바다라는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조금씩 자라났다.




  갈라파고스의 바다는 무척 차갑기로 유명하다. 날씨가 좋을 때는 온도가 높아지는데 대신 볼 수 있는 해양생물의 종류가 줄어들고, 온갖 희귀한 생물을 볼 수 있는 다이빙 시즌은 얼어 죽을 정도로 차가운 수온을 자랑한다. 우리는 다이빙 시즌 초입에 갔는데, 얼음장 같은 찬물이라 스노클링을 연속 두 번 하는 동안 정말 힘들었다. 미친듯한 추위 덕분에 물에 대한 두려움을 잠시나마 잊기까지도 했다(당시에는 물에 빠져 죽는 것보다 얼어 죽는 게 더 빠를 것 같다고 생각했다). 투어가 끝나고 숙소로 돌아와서 녹초가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난생처음 즐긴 심해 스노클링은 상상 이상으로 재미있었다. 수면 위를 떠다니며 바닷속 세상을 구경하는 활동이라 아예 깊은 바다 아래로 잠수해야 하는 스쿠버다이빙보다 덜 무섭기도 했다. 돌이켜 보면, 여름마다 바다에 가면 스노클링 마스크를 낀 채로 돌아다니는 아이들이 있었다. 그때는 그 놀이가 뭐가 그렇게 재미있어 한참을 즐기나 알 수 없었는데 이제는 이해가 될 것도 같다. 바닷속 세상에 한 번 말을 걸기 시작하면 멈출 수 없다는 것을 나도 지금은 잘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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