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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진 May 28. 2023

높고 가파른 모래 언덕에서 스릴을 즐기다

페루 이카 와카치나에서 버기 투어와 샌드 보딩

페루 이카의 오아시스 도시인 와카치나에서


  콜롬비아에서부터 에콰도르까지, 내내 물놀이를 즐기다가 페루에 도착하니 거대한 산과 사막이 나를 반겼다. 본격적으로 남미의 광활한 육지를 탐방하는 것 같아 신이 났다. 페루 와라즈에서 옥빛 물이 인상적인 파론 호수와 해발 5,000미터 고도에 위치한 파스토루리 빙하를 오르느라 진이 다 빠졌지만, 쿠스코에 들러 잉카인들의 공중 도시 마추픽추를 보기 전에 지날 곳이 하나 더 있었다. 페루의 사막 이카에 위치한 인공 오아시스 와카치나였다.


  와카치나는 휴양지 목적으로 건설된 인공 오아시스로, 사막 도시인 이카에서 택시를 타면 15분 정도 걸리는 위치에 있다. 와카치나가 사막의 자연 오아시스인 줄 알았던 우리는 와카치나가 이카와 그렇게 가까이 붙어 있으며 인공적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고 맥이 빠졌다. 하지만 와카치나는 오아시스 마을 외에도 유명한 것이 하나 더 있는데, 바로 이카 사막의 언덕을 롤러코스터 레일 삼아 질주하는 버기 투어다. 와카치나의 첫인상에 대한 감상은 사람마다 갈리지만, 버기 투어가 재미없다는 사람은 여태껏 본 적이 없었다.




  이카에 도착해서 시내에 있는 숙소로 이동하기 위해 택시를 잡았다. 버기 투어는 현장에서 발품 팔아 적당한 가격을 알아볼 생각이었는데, 운이 좋게도 우리가 탄 택시의 기사가 한국어가 가능한 투어 업체를 안다고 했다. 흥미를 보이는 우리에게 한국인 관광객들과 찍은 사진첩을 보여주면서 어필을 하길래 연락처를 받아왔다. 깔끔하고 시원한 이카 숙소에 짐을 풀고 나서 왓츠앱으로 열심히 흥정을 했다. 이카에서 와카치나까지 픽업 및 드롭, 그리고 사막 입장료까지 포함해 50 솔 정도에 극적으로 타협했다.


  버기 투어를 갈 때는 모래먼지를 막아주는 마스크나 반다나를 꼭 챙겨가야 하고, 따가운 햇빛을 차단하는 선글라스까지 있으면 금상첨화다. 휴대폰으로 사진이나 영상은 찍고 싶은데 모래알이 들어가 망가질까 걱정된다면 방수팩을 함께 가져가도 좋다. 가장 고민이었던 건 운동화와 쪼리 중 무엇을 선택하느냐였는데, 나는 크게 고민 않고 쪼리를 선택했다. 이전에 요르단 와디럼에서 운동화를 신고 돌아다니다 신발 밑창에 모래가 왕창 들어간 바람에 깔창까지 전부 들어낸 다음 세척해야 했던 악몽이 아직 남아있었다.


  이카에서 픽업 택시를 타고 도착한 와카치나는 생각보다 조그마한 마을이었다. 여유로운 휴양지 느낌을 즐기는 사람 반, 그리고 우리처럼 버기 투어를 하러 온 사람 반으로 작은 마을이 북적였다. 하지만 호수를 둘러싼 높은 야자수 울타리와 사막 한가운데의 물웅덩이가 주는 풍경은 색달랐다. 와카치나의 숙소는 이카보다 덜 위생적이고 무척 습하다는 평이 많아 이카 시내에 묵기로 했던 건데, 가볍게 와카치나를 돌아보다 보니 오아시스에서의 밤도 나쁘지 않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카 사막에 발을 딛고 언덕 하나를 넘으니 색색의 버기가 일렬로 늘어서 있었다. 우리가 탈 버기는 붉은색에 하얀색 줄무늬가 그려진 녀석이었다. 나는 놀이공원 롤러코스터도 잘 못 타지만 패기롭게 앞 좌석으로 달려갔다. 안전벨트가 두 개나 있는 것으로 보아 꽤 격렬한 놀이기구일 것 같았다. 하지만 앞 좌석에 앉아 쇄도하는 사막의 풍경을 보고 싶다는 열망이 더 컸고, 버기가 부릉거리며 출발하자 가만히 있던 내 심장이 미칠 듯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버기는 처음부터 제대로 달렸다. 엄청나게 높은 모래 언덕을 굉음을 내며 올라가서는 한순간에 떨어져 내렸다. 뒷좌석 사람들의 반응이 엄청나서 덩달아 소리를 지른 탓에 언덕 다섯 개를 넘었을 즈음 목이 쉬었다. 롤러코스터는 타고 나면 어지러워서 싫어했던 건데, 버기는 광활한 사막의 언덕을 미친 듯한 속도로 질주할 뿐이라 그런 문제는 없었다. 쉴 새 없이 몰아치는 스릴에 정신을 못 차릴 뿐이었다. 롤러코스터 줄에 사람들이 바글바글 몰리는 이유를 어렴풋이 이해할 것 같았다.


  버기 라이드를 한참 즐기고 나서 우리는 샌드 보딩을 즐기러 높은 모래 언덕을 올라갔다. 사람 키만 한 보드를 깔고 누워 엄청난 높이의 모래 언덕을 쭉 미끄러져 내려가는 놀이였다. 사람들이 하나둘 언덕 아래로 사라지는 것을 보며 4년 전 몽골의 고비 사막 여행이 떠올랐다. 그때도 샌드 보딩을 할 기회가 있었는데, 보드를 타다 언덕 아래로 굴러 떨어질 것만 같은 두려움에 사람들이 즐기는 모습을 그저 지켜보기만 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뒤로 물러나고 싶지 않았다. 몽골 사막보다도 훨씬 높고 가파른 언덕에서 나는 용기를 내었다.


  보드에 몸을 딱 붙이고 발로 모래를 박차기 전까지, 심장이 두근거리는 소리가 귓전 가까이 울리는 듯했다. 금방이라도 보드를 놓치고 언덕 아래로 구를 것 같은 긴박함, 중간에 자세가 흐트러져 보드가 멈출 것 같은 느낌. 그 모든 것을 발길질 한 번에 실어 밀어냈다. 겁을 집어먹은 것이 무색하게도 샌드보딩은 순식간에 끝났다. 모래는 상상만큼 거칠지 않았고 나는 한순간 자유로움을 느꼈다. 그렇게 빠르지도 위험하지도 않은데 무척 재미있는 놀이였다! 우리는 점점 더 높은 언덕으로 향했지만, 그 모든 언덕에서 나는 망설임 없이 시원하게 발을 굴렀다.




  이카 사막의 한가운데서 어스름에 물들어가는 와카치나를 등지고 일몰을 감상했다. 왜 예전에는 이런 걸 진작에 도전해보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저 옷에 모래가 왕창 들어가 정리하는 게 귀찮아서? 아직 해보지도 않은 일을 제멋대로 상상해 보고 지레 겁을 먹어서? 한편으로는 그래도 내가 변하고 있는 것을 느껴서 기분이 좋았다. 예전에는 쉽게 하지 못했던 것들을 좀 더 과감하게 도전하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구나.


  나이를 먹을수록 아는 게 많아지고 겁도 많아진다고 하는데, 나는 그 반대로 향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오늘 그런 삶에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간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해가 사막의 모래 아래로 지는 동안 사람들이 저마다의 환호성을 지르는 모습을 보면서 이카를 빼놓지 않고 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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