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드에서 도망친 엄마에게 보내는 응원
독립한 지 N년 차, 다시 엄마와 살게 되었다. 혼자 사는 생활이 체질에 맞았던지라 누군가와 함께 사는 건 꽤나 불편했다. 그렇다고 불만을 엄마한테 직접 토로하진 않았다. 아직 같이 산지 며칠 안 됐으니깐, 적응 좀 하면 되겠지 라는 낙관적인 생각이었다.
둘이 함께 하는 시간은 아침밥 먹을 때뿐이었다. 먹는 걸 좋아하는 나지만 차려먹는 건 귀찮아서 매번 시켜 먹기만 했었다. 그런 내게 엄마는 아침밥을 지어주려 했고, 이젠 머리가 좀 큰 성인이니깐 받아먹을 수만은 없다며 나도 같이 요리를 했다. 꾸준하게 늘지 않는 내 요리 실력에 엄마는 놀리기 바빴다. 밥 먹을 땐 재잘대면서 오늘의 일정을 브리핑하는 엄마 얼굴엔 근심걱정이 없어 보였다.
엄마와 합가를 하게 된 수많은 이유가 있지만, 제일 큰 이유는 할머니 때문이었다. 그러니깐 내게는 할머니, 엄마에게는 시어머니 되시겠다. 할머니는 여러모로 엄마를 참 못살게 굴었다. 내가 시월드라는 개념을 알기 전부터, 정확히는 구구단을 외우기 시작한 시점부터 왜 늘 엄마는 부엌에서 일만 하고 고모들은 노는 가에 의문을 가졌을 정도니깐. 그 당시의 할머니집은 엄마에게는 제2의 일터였고, 고모들에게는 본인들의 시어머니집을 탈출해 찾아온 휴식터였다. 참 아이러니한 곳이었다. 나라도 엄마를 돕자는 마음에 여러 번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으나, 엄마는 늘 말했다. "너는 여기서 절대 일하지 마. 그냥 가서 놀아."
집안 사정 때문에 할머니와 함께 살게 된 그날부터 본격적인 시월드가 시작되었다. 사실 이전에도 충분히 고생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보다 심한 게 있는 줄 몰랐다. 요리는 이렇게 하는 게 아니라며 트집 잡는 건 필수였고, 반찬 개수가 부족하다, 먼지가 보이니 다시 청소기 밀어라 까지 셀 수 없이 많았다. 거기에 엄마의 통금시간까지 생겼다. 일 때문에 저녁시간이 지난 채 들어가면 왜 늦었는지 일일이 얘기해야 했고, 일찍 들어오면 밥 좀 제대로 하라고 잔소리를 해대는 모습을 수도 없이 봤다. 물론 엄마의 답변은 할머니에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무슨 이야기를 해도 죄인은 언제나 엄마였다. 결국 할머니 입맛에 맞추기 위해 원래의 일상을 포기해야 했다. 24시간 내내 잔뜩 긴장한 채 퇴근하지 못하는 일상에 엄마의 낯빛은 점점 어두워져만 갔다.
정말 우연히, 고모의 차를 얻어 타게 됐다. 이유는 기억나지 않지만 어쨌든 고모와 할머니, 그리고 내가 차를 타고 이동했다. 시월드로 인해서 둘에게 반감이 있었던 나는 그저 말없이 있었고, 고모와 할머니는 둘만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용은 대충 고모의 친구가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게 된다는 이야기였다. 그걸 들은 할머니는 "그 친구 힘들겠네. 시어머니 모시고 살기 힘든데."라고 답했다. 내 귀를 의심했다. 그걸 아는 사람이 그렇게 행동한다고? 고모랑 할머니는 피로 맺어진 모녀지간이니깐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건가? 그래서 아무것도 이어지지 않은 엄마를 하대하면서 부려먹는 건가? 충격적인 할머니의 말에 모든 사고 회로가 고장 났다. 그날 어떻게 이후 일정을 소화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점점 심해져 가는 시월드에 엄마는 더 이상 참지 않고 화를 내기 시작했다. 예전처럼 고분고분 말을 듣는 게 아니라 조금씩 통금시간을 어겼고, 요리 트집에 굴하지 않고 엄마의 스타일을 고수했다. 할머니의 이유 없는 잔소리에도 맞받아치는 용기를 보여줬다. 그리고 할머니는 웃기게도 화내는 엄마에게 성격이 더럽다는 화답을 보냈다. 시트콤이 따로 없었다.
반항(?)이 먹히지 않자 엄마는 할머니에게 통보없이 그 집을 탈출해 나와 함께 살기 시작했다. 긴장감 없이 사는 일상에 엄마는 이전과는 다른 의미로 바쁘게 살고 있다. 예전부터 공부에 관심이 많았던 엄마는 배우고 싶었던 과목을 골라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그간 못 만났던 사람들과도 늦은 밤까지 회포를 푼다. 주름이 사라진 것도 아니고, 새 옷을 산 것도 아닌데 엄마는 늘 웃고 있다. 그렇게 엄마는 자유부인이 됐다.
집 나온 엄마를 응원한다고 얘기하면 돌 맞을 짓일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엄마의 고통을 옆에서 봐와서, 엄마가 현재 얼마나 행복한지를 같이 느끼고 있어서, 누가 뭐라 해도 자유부인 행보를 계속 응원할 것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엄마처럼 시월드를 겪고 있는 누군가에게도 응원을 보낸다. 힘들어서 집 나가도 응원할 사람있으니 걱정 말라고, 도망치는 건 비겁한 게 아니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