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FLAT 인생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AMI Sep 05. 2021

퇴근 후

https://youtu.be/96UUsLbryIY


고된 업무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는다. 욕조 끝선에 걸터앉아서 땀 흘리고, 고되게 뛰어다니면서 오늘을 버텨준 발을 위로해준다. 시끄럽게 떨어지던 물의 소리가 잠잠해질 때 하루 종일 받았던 차가운 시선과 말속에 얼어버린 몸을 물 안에 담가서 녹여준다. 물이 머리에 닿자 머릿속이 따갑다. 생각이 엉키고 엉켜서 낸 상처가 또 벌어진 모양이다.


물안에 풀어진 나는 바람 빠진 풍선처럼 늘어질 대로 늘어져버렸다. 속은 다 빠져버렸기에 작은 물의 흔들림에도 흐느적거릴 뿐이다. 껍데기만 남은 나는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다. 욕실의 작은 창문 너머로 바람이라도 불어올 때면 가슴을 먹먹하게 하고, 행복을 상상하게 한다. 그러다 금방 그 행복한 상상은 배를 강하게 눌러온다. 그러다 잠깐이라도 눈을 붙일 때면 구토가 나올 정도로 이상한 꿈을 꾸다 가시관을 쓴 죄인처럼 머리가 조여 오는 고통에 눈을 뜰뿐이다.


나는 없다. 세상에 나란 존재는 지워지기 시작한 지 오래다. 그저 내가 만들어낸 페르소나가 나를 대신하고,

엉성하게 짜인 알고리즘만이 내가 되어 존재한다. 가끔은 지워지지 않기 위한 몸부림을 치지만 그 몸부림은 비난받을 것임을 알기에 그저 사라지길 원한다. 내 얼어버린 몸이 물을 식게 만들 때쯤이면 공허와 허무가 공간을 감싼다. 나의 설렘이 나를 더 공허하게 만들었기에...




매거진의 이전글 소녀와 눈사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