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생활을 한 곳에서 오래 했다. 그곳에서 나는 여러 가지 일을 반복했고, 실패했고, 다시 기획하며 설계했다. 그 시간 속에서 나름의 전문성도 생겼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전문성이라는 것을 설명하려고 했더니 말이 막힌다. 대단한 학자들의 말을 빌려와서 설명하면 말하는 바에는 힘이 실리겠지만, 내가 원하는 설명은 그런 것이 아니다. 어떻게 해왔는지, 왜 그렇게 했는지, 무엇이 달라졌는지에 대해 또렷하게 말하고 싶다.
경험은 쌓였지만 구조는 흐릿한 것 같다. 기억은 남아 있지만 원칙은 정리되지 않은 듯하다. 나는 분명 성장했는데, 그 성장의 원인과 이유를 설명하지 못해서 정확히 모양을 붙잡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기록하지 않으면 경험은 단지 지나간 사건에 머무는 것이 아닐까. 흐르는 시간 속에서 반복은 있었지만, 언어로 정리되지 않은 반복은 우연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아닐까.
2월 한 달 이곳에 글을 꾸준히 쓰면서 기록은 과거를 붙잡는 행위가 아닌, 나를 해석하는 행위라고 느껴진다. 글로 쓰는 순간, 막연했던 감각은 개념이 되고, 반복은 구조가 된다. 그리고 경험은 비로소 나의 원칙으로 자리 잡는다. 나는 나를 증명하고 싶은 것일까, 아니면 나를 정의하고 싶은 것일까. 생각해 보면 그 둘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설명할 수 있는 나만이 정의될 수 있고, 정의 가능한 나만이 증명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기록하려 한다. 남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해석하고 다시 설계하기 위해서.
회사에서 내가 직원들에게 암묵지와 형식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기록을 더 상세하게 할 것을 요구한다. 경험은 쌓이지만, 자동으로 구조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해온 일도 마찬가지다. 반복은 있었고, 시행착오도 분명했다. 어떤 선택은 옳았고, 어떤 판단은 수정되었다. 그 모든 시간은 내 안에 축적되어 있다. 그런데 축적과 이해는 다르다.
경험은 감각으로 저장된다. 그때의 긴장, 실패의 기억, 수정의 순간, 결과가 나왔을 때의 안도감 같은 것들로 남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서 그 경험을 돌이켜보면 그 당시만큼의 감정이 요동치지 않는다. 감각은 시간이 지나면 압축되나 보다. 그래서 남는 것은 '그땐 좋았지', '그건 잘했어'와 같은 느낌뿐이다. 왜 그렇게 했는지, 어떤 원칙이 작동했는지 흐릿해진다.
반복은 축적이 되지만, 해석되지 않으면 자신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기록이 필요하다. 기록은 있었던 일을 적는 행위 따위가 아니다. 기록은 무엇을 했는가를 넘어 왜 그렇게 했는가를 묻는 과정이다. 글로 쓰는 순간, 나는 결과가 아니라 사고의 과정을 돌아보게 된다. 우연처럼 보였던 선택은 맥락을 갖게 되고, 감각에 의존했던 판단은 언어를 얻게 된다. 막연했던 능력은 비로소 설명 가능한 구조로 드러난다. 그래서 난 설명할 수 있는 능력만이 전문성을 갖는다고 본다.
그동안 나는 잘해왔다고 믿었다. 그런데 막상 오늘 그것을 설명하려 하자 자꾸 멈칫했다. 어떻게 해왔는지, 무엇이 달라졌는지, 어떤 기준으로 판단해 왔는지를 조리 있게 말하기 어려웠다. 익숙해진 거을 이해 했다고 착각했던 건 아닐까. 그 순간 나는 깨닫는다. 아직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익숙해진 것들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기록은 익숙함을 낯설게 만들어버렸다. 당연하게 반복해 온 방식들을 한 번 멈춰 세워 묻게 되었다. '순서는 이것이 맞는가? 왜 이런 기준이었지? 왜 다른 선택이 아니라 이렇게 한 거지?' 만약 내 선배들이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을 보면 다 아는 것 같고 뭐 하는 것이냐고 질책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질문을 통과한 경험만이 비로소 나의 원칙이 된다. 그리고 쓰기 위해서는 그런 원칙이 필요했다.
그리고 이런 질문을 통해서 내가 해온 시간이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무작정 반복한 것이 아니라 나름의 판단과 수정이 쌓여온 결과라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확신은 성과에서 오지 않는다. 확신은 이해에서 오는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해는 나를 가볍게 만들기도 한다.
막연한 능력은 늘 부담을 동반한다. 내가 정말 이것을 잘하는지에 대한 의문과 지금까지 운이 좋았던 것은 아니었는지에 대한 의심의 질문이 따라붙는다. 결국 설명되지 않는 성장은 스스로를 계속 증명해야 한다는 압박을 만든다. 하지만, 글로 정리된 경험은 달랐다. 나는 무엇을 알고 있고, 어디까지 고민해 봤으며,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는 사람인지가 문장 안에 다 남아 있었다. 기록은 나를 무겁게 하는 책임이 아니라, 나를 가볍게 하는 이해였다.
나는 나를 정의하고 싶은 것일까, 아니면 나를 증명하고 싶은 것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 둘은 다르지 않다. 설명할 수 있는 나만이 정의될 수 있고, 정의 가능한 나만이 증명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기록은 외부를 향한 과시가 아니다. 내부를 향한 구조화다. 그리고 구조화된 내부는 굳이 소리치지 않아도 설득력을 충분히 가진다. 그래서 나는 기록하려 한다. 지나간 시간을 붙잡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시간을 이해하기 위해서. 쌓여온 능력을 자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능력이 어떤 원칙 위에 서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 회사에서 5년 넘게 트레이닝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정착시키며 운영해 왔다. 언젠가는 그 과정을 정리해 소개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고, 이 글은 그 고민에서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