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빠르다. 아니, 빠르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광속처럼 지나간다는 표현이 식상하지만 가장 잘 어울린다. 벌써 2월의 마지막이다. 분명히 새해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달력은 이미 두장이나 넘어가 있다. 새로 세운 계획은 아직 첫 줄도 제대로 시작하지 못했는데,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고 앞서 나간다. 나는 아직 준비 중인데, 시간은 이미 자기 혼자 진행 중이다.
어린 시절을 기억해 보면 시간은 참 더디게 갔다. 그래서 늘 빨리 가길 바랐다. 방학이 끝나기를 기다렸고, 시험이 끝나기를 기다렸고, 어른이 되기를 기다렸다. 시간이라는 큰 파도에 올라타 빨리 저 멀리 가고 싶었다. 그러나 그때의 나는 늘 파도에 밀려났다. 시간이 나를 앞질러 가는 것처럼 느껴졌고, 나는 뒤를 허둥지둥 따라가는 아이에 불과했다. 아니... 시간은 그 흐름에 나를 끼워주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제는 그 큰 시간의 파도 위에 휩쓸려 있다. 하루는 빠르게 흘러가고, 일주일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간다. 프로젝트는 연달아 이어지고, 일정은 빈틈없이 채워진다. 나는 파도에 밀려나는 사람이 더 이상 아니다. 오히려 그 파도에 휩쓸려 더 빠르게 오늘을 지나쳐가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왜 시간이 이렇게 빠르게 느껴질까. 아마도 시간의 속도는 달라진 적이 없을 것이다. 달라진 것은 나의 감각이다. 어렸을 때의 하루는 모든 것이 처음이었고, 모든 것이 새로웠다. 새로운 경험은 시간을 느리게 만들었다. 그러나 지금의 하루는 익숙함 속에 반복이다. 이미 해본 일들 이미 겪어본 감정들, 이미 알고 있는 패턴들. 익숙함은 시간을 압축한다. 그래서 시간은 더 빠르게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예전에 어른들이 시간이 흐르는 속도를 나이에 비유하곤 하셨다. 10대에는 10km/h로, 20대에는 20km/h로 그리고 50대 때는 50km/h로 지나간다고 말이다. 그러면 나는 40km/h 초반대로 달리고 있다.
한때 나는 시간을 쫓던 사람이었다. 조금 더 빨리 성장하고 싶었고, 조금 더 빨리 인정받고 싶었다. 지금은 반대가 되었다. 이제는 시간이 나를 쫓는다. 마감은 다가오고, 일정은 겹치고, 하루는 정리할 틈도 없이 끝나간다. 시간을 쫓던 사람이 시간에 쫓기는 사람이 되는 순간, 마음은 조급해진다. 무언가를 해내고는 있지만, 남는 것이 없는 느낌. 분명 바쁘게 살았는데, 돌아보면 선명한 기억은 많지 않다. 그저 또 하나의 달력을 넘기며 허무한 작은 한숨만 내쉴 뿐이다. 그래서 더 아쉽다. 올해 세운 계획은 아직 시도도 해보지 못했다. 조금만 있다가, 여유가 생기면이란 말을 반복하는 사이, 시간은 이미 다음 장으로 넘어가 있다. 그렇게 휩쓸려 흘러가고 있다.
나는 시간을 타고 노는 사람이 되고 싶다. 파도에 밀려 허우적대는 사람도 아니고, 파도에 쫓겨 급히 균형을 잡는 사람도 아니라, 파도의 가장 높은 곳에서 멋지게 숨을 고르고 방향을 조절하며 서핑을 하는 사람. 시간이 빠른 것을 탓할 수는 없다. 시간은 원래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았다. 다만 내가 그 위에서 어떻게 서 있는지가 달라졌을 분이다.
어영부영 넘어간 시간들이 아깝다. 계획만 세워두고 실행하지 못한 순간들이 마음에 남는다. 그러나 아쉬움이 후회로 굳어지기 전에, 나는 보드 위에서 균형을 잡고 싶다. 시간을 쫓기보다, 시간을 이용하고 싶다. 오늘은 그냥 지나치지 않고, 내가 의도한 방향으로 조금이라도 기울여 보고 싶다. 그래서 나는 광속처럼 빠른 시간 속에서도 나는 완전히 휩쓸리는 사람이 아니라, 파도의 결을 읽는 사람이 될 것이다. 2월이 끝난다고 해서 늦은 것은 아니다. 파도는 계속 오고, 나는 여전히 그 위에 서 있다. 이번에는 조금 더 의식적으로, 조금 더 나의 방향으로 오늘의 파도를 타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