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은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by RAMI

오늘 새벽 노트북이 이상증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화면이 갈라지듯 일그러졌고, 깜빡거리는 현상이 반복되었다. 최근에 고사양을 요구하는 프로그램을 돌리면서 평소보다 많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긴 했다. 그때는 겨울에 손가락이 따듯해서 좋다고 농담처럼 넘겼는데, 결국 신호를 무시한 셈이 되었다.

노트북을 종료시킨 후 멍하니 책상을 바라보았다.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내는 물건이 갑자기 이상증상을 보낸다는 사실에 생각보다 크게 흔들렸다. 나는 그것을 단지 도구라고 여겼는데, 막상 오작동을 계속하자 일상이 멈춘 것처럼 느껴졌다.


아침부터 서비스센터에 문의하고, 오후 예약을 잡았다. 그 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대기 의자에 앉아 있는 동안 상당히 불안했다. 노트북과 그 안에 들어 있는 시간 때문이다. 백업해두지 못한 채 쌓아둔 5년의 자료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이것을 잃어버린다면 나는 단순한 파일이 아닌 5년이라는 노력과 시간을 통째로 잃어버릴 것 같았다.

엔지니어는 노트북의 증상을 확인하더니 고개를 기울였다. 새벽 때처럼 화면이 갈라지는 현상이나 깜빡이는 현상은 없었다.(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까지도 마찬가지다.) 다만 왼쪽 하단 모서리의 색이 누가 붓으로 슥슥 그어놓은 것 마냥 묘하게 번져 있었다. 원인은 액체 유입일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나는 언제 스며들었는지 알 수 없다고 말하고, 단순하게 배터리 문제 때문에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엔지니어는 모든 점검을 끝낸 다음 예상 수리비만 200만 원 정도 나올 것 같다고 했다. 순간 자료에 대한 걱정보다, 노트북을 고치기 위해 지불해야 할 비용과 새로 사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동시에 밀려왔다. 머리가 아찔해졌다.


고장은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인지하지 못한 사이에 또는 내가 무시하고 있던 사이에 조용히 진행되는 것이다. 우리는 늘 이런 증상이 나타난 순간만을 문제라고 부르지만, 그 전의 시간을 잘 들여다보지 않았을 뿐이다.


노트북만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자주 사용하는 것일수록 우리는 점검하지 않는다. 늘 만나던 사람에게는 당연하다는 듯이 깊게 안부를 묻지 않고, 늘 곁에 있던 풍경은 크게 관심두지 않는다. 당연하다는 이유로 관심을 미뤄둔다. 익숙함은 안전처럼 느껴지지만, 사실은 가장 취약한 상태이고, 리스크를 포함하고 있는 상태일지도 모른다. 점검하지 않는 신뢰, 확인하지 않는 건강, 돌아보지 않는 관계는 조용히 마모된다.


이상 신호는 대개 작다. 화면이 완전히 꺼지기 전에 작은 번짐으로 나타난다. 관계가 완전히 끊어지기 전에 어색한 침묵으로 시작된다. 몸이 무너지기 전에 사소한 피로로 다가온다. 우리는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리지만, 어쩌면 그때가 가장 개입하기 쉬운 순간인지도 모른다.

IMG_7853.HEIC


"어떻게 하실래요? 말씀하신 화면 깜빡이는 현상은 안 보이는데요. 왼쪽에 번짐은 남아있는 데 사용은 가능하네요"


엔지니어께서 말했다. 나는 수리 요청을 멈추고, 다시 노트북을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노트북은 아직 완전히 망가지지 않았다. 왼쪽 모서리에 번짐만 남아 있다. 그 작은 흔적이 다행처럼 느껴졌다.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돌아볼 시간을 준 셈이니까.


집으로 돌아와 나는 외장하드를 연결하고 백업을 시작했다. 파일을 옮기며 생각했다. 나는 얼마나 많은 것들을 백업하지 않은 채 살아왔을까. 당연하다고 믿으며 점검하지 않은 것들, 늘 곁에 있다는 이유로 살피지 않았던 것들. 고장은 갑자기 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조용히 쌓여 온 결과다. 그리고 이 신호는 대개 우리가 무시한 자리에서 먼저 나타난다.


나는 오늘 노트북을 점검했다. 그리고 조금 늦게, 나의 일상도 함께 점검해 보았다.

작가의 이전글경험은 흐르고, 기록은 나를 이해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