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은 붙잡지 않으면 사라진다.

by RAMI

이곳에 글을 20일 넘게 매일 작성하면서 느끼는 것은 글을 쓰는 기쁨과 동시에 어려움이다. 하루를 정리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를 요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기록의 중요성을 점점 크게 느끼고 있다.


가끔 누군가와 대화를 하다가, 뜻밖에 의미 있는 흐름을 만날 때가 있다. 그것이 아니더라도, 무심코 던진 한 마디가 머릿속에 잠시 머무를 때가 있다. 길을 걷다가, 일을 하다가, 아무 일도 아닌 순간에 문득 스치는 생각도 있다. 영감이라고 부르기엔 거창하지만, '좋은 생각이다.'라고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고 나서, 종종 좋은 생각을 했던 사람, 좋은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만 하루가 지나간다. 머릿속에 떠올랐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이미 충분히 생각한 사람이라고 여긴다. 그리고 그 생각은 정리되지 않은 채 흘러간다. 어쩌면 나는 생각을 소유했다고 착각하는지도 모르겠다. 떠올렸다는 이유만으로...


생각은 언제든지 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좋은 생각도 언제든 다시 떠오를 것이라 여긴다. 하지만 생각의 수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좋은 생각을 놓칠 가능성도 많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떠오르는 것은 많지만 남는 것은 적다.


하루에 짧은 시간이라도 좋다. 아니면 억지로라도 여유를 만들어서, 오늘 스쳐갔던 생각 하나를 붙잡아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오늘 나눈 대화 중에 마음에 남았던 문장 하나를 다시 떠올려보는 일. 길을 걷다 떠올랐던 질문을 다시 꺼내보는 일. 그렇게 곱씹다 보면 그 생각은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내 안에서 한 단계 더 자란다. 어느새 그것은 영감이 되고, 기획이 되고, 때로는 나를 바꾸는 문장이 된다.

나는 생각이 많은 사람이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고, 질문도 자주 던졌다. 대화 속에서 의미를 찾으려 했다. 그래서 스스로도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나는 정말 생각을 담배 뻐끔거리듯 소비해 버렸구나.

떠오르는 생각은 대부분 즉흥적이었다. 상황에 반응하고, 감정에 반응하며 생겨났다. 그것은 빠르고, 생생하고, 그 순간에는 꽤나 날카롭게 느껴진다. 하지만 떠오른 생각이 곧 나의 사고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대부분은 정리되지 않은 채 연기처럼 사라졌다. 떠올랐다는 사실만 남고, 내용은 흐려진다.


생각은 붙잡지 않으면 휘발된다. 그리고 사라진 생각은 더 이상 나에게 어떠한 영향도 주지 못한다. 문장으로 적는 순간, 생각은 다른 상태가 된다. 머릿속에서 맴돌던 감각은 구조를 요구받는다. 생각을 구조화하는 동안 나는 수없이 질문을 한다. 그 질문을 통과하지 못한 생각은 힘을 잃고, 통과한 생각만이 나의 원칙이 된다. 이 과정은 떠올랐던 무언가가 다듬어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나는 생각을 쉽게 여겼다. 언제든 할 수 있다고 믿었고, 생각은 늘 머릿속 어딘가에 떠다니는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생각의 양이 많다고 해서 사고의 깊이가 깊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흘려보낸 생각이 많을수록 나의 사고는 얕아지는 듯했다. 붙잡지 않은 생각은 경험이 되지 않고, 구조가 되지 않는다.


생각을 기록한다는 것은 과거를 남기는 일이 아니라, 사고를 훈련하는 일에 가까웠다. 떠오른 문장을 그대로 두지 않고, 한 번 더 질문하는 행위 그리고 무엇에 반응하는지 다른 맥락에서도 유효한지와 같이 연결하는 행위의 반복 속에서 사고는 조금씩 커져감을 느꼈다.


나는 생각은 머릿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 위에서 비로소 형태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기록되지 않는 생각은 나의 것이 아니다. 떠올랐다는 사실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누구나 하는 생각도 문장으로 남겨지고, 다시 읽히고, 다시 질문될 때 나만의 일부가 된다.

좋은 생각을 했던 사람이 아니라, 좋은 생각을 남기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오늘도 기록한다. 완성된 답을 남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떠오른 생각을 붙들고 있기 위해서. 좋은 생각을 한 사람으로 하루를 마무리하기보다, 그 생각을 한 번 더 다듬어보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생각은 순간이지만, 기록은 축적이 된다. 그리고 축적된 사고만이 나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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