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오스크 앞에선 부모님께 잔소리를 하다.

by RAMI

부모님께 잔소리를 했다. 오랜만에 함께 외식을 나간 자리였다. 식당 테이블마다 있는 키오스크를 통해서 주문을 해야 했는데, 부모님은 화면을 한참 바라보기만 하셨다. 메뉴를 고르는 것보다 어디를 눌러야 하는지 찾는 데 더 많은 시간이 걸리는 것 같았다. 내가 옆에 있을 때는 내가 해드리면 되지만, 앞으로는 부모님이 밖에서 식사를 하기 힘들어지는 세상이 찾아올 것 만 같았다. 나는 옆에서 이것저것 설명하다가 말했다. 스마트폰 사용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기본적인 것만 알면 금방 익숙해질 거라고.


말을 하면서도 나는 키오스크에 불만이 많다. 키오스크 인터페이스는 아직 제대로 표준화되어 있지 않다. 겉으로 보기에는 비슷하지만 회사마다 구조와 흐름이 조금씩 다르다.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는 충분히 낯설 수밖에 없다. 은행의 ATM만 떠올려 봐도 키오스크와 큰 차별점이 있다. 색상이나 디자인은 조금씩 달라도 사용하는 방식 자체는 모든 은행이 거의 동일하다. 은행이 다르다고 인터페이스가 완전히 달라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키오스크는 그렇지 않다. 비슷할 분, 사실은 매번 새로 배우는 기계에 가깝다.


그러면서 동시에 스마트폰 없이는 정말 불편한 세상이 되었으니 은행 앱 정도는 사용하는 법을 배우는 게 좋지 않겠냐고 이어서 말했다. 기본적인 것만 천천히 익혀두면 훨씬 편할 거라고.

말을 하고 나서야 문득 생각난 게 있다. 30년 전 처음 ADSL 인터넷이 보급되기 시작했을 때가 떠올랐다. 그때 아버지는 지금의 내 나이었다. 그 시절 나에게 컴퓨터와 인터넷을 배우라고 부모님께서 말씀을 주셨고, 나도 같이 배우자고 했지만, 부모님은 늘 비슷한 말을 하셨다. 굳이 배울 이유도 없고 필요하지도 않다고, 그건 너희 세대가 하는 거라고 말이다.

지금은 컴퓨터와 인터넷을 넘어 스마트폰 하나로 대부분의 일을 해결하는 시대가 되었다. 은행 업무도, 행정 업무도, 예약도 대부분 모바일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부모님은 여전히 은행 창구를 찾으시고, 주민센터를 방문하신다. 스마트폰에 문제가 생기면 나에게 물어보면 될 텐데도, 바쁜 아들 귀찮게 하기 싫다며 대리점을 찾아가신다. 나는 부모님께 귀찮은 기색을 낸 적은 없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렇다고 해서 좋은 기색을 보인 적도 없었던 것 같다.


생각해 보면 부모님이 기술을 낯설어하는 모습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부모님 세대가 처음 컴퓨터와 인터넷을 마주했을 때도 비슷했다. 나는 그때마다 배우라고 말했고, 익숙해지면 편해진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당시의 부모님에게 컴퓨터는 필요 이상의 기술이었고, 인터넷은 젊은 사람들이 쓰는 도구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그때 나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은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세상은 컴퓨터와 인터넷을 넘어 스마트폰 중심으로 움직인다. 은행업무도, 행정 업무도, 식당 주문까지도 화면을 통해 이루어진다. 나에게는 너무 자연스러운 방식이지만, 부모님에게는 여전히 낯선 절차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기술은 발전했지만, 사람의 시간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기술은 해마다 업데이트되지만 사람은 세대 단위로 배운다. 새로운 기술은 매년 등장하고, 인터페이스는 계속 바뀌고, 익숙해질 만하면 또 다른 방식이 점점 더 빠르게 등장한다. 그 흐름 속에서 어떤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적응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점점 기술에 피로감을 느끼고 거리를 두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부모님이 변화에 완전히 등을 돌린 것은 아니다.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메시지를 보내고, 사진을 찍는다. 다만 그 범위가 내가 기대하는 만큼 넓지 않을 뿐이다. 나는 그것을 답답함으로 받아들이지만, 부모님에게는 이미 충분한 적응일지도 모른다.


돌이켜보면 부모님이 나에게 기술을 배우라고 말했던 시절도 있었다. 컴퓨터를 더 익히라고, 인터넷을 잘 활용해 보라고 말이다. 그때 부모님은 내가 뒤처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지금 내가 부모님께 하는 잔소리도 어쩌면 같은 종류의 마음일지도 모른다. 다만 차이가 하나 있다면, 그때 부모님은 내가 따라가야 할 세상을 미리 보고 있었고, 지금 나는 부모님이 이미 지나온 시간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가끔은 이런 생각이 든다. 언젠가 나도 비슷한 장면에 서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다. 지금은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기술이 언젠가는 낯설어질 것이고, 누군가는 나에게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이거 어렵지 않아요. 조금만 배우면 금방 할 수 있어요."


그때 나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키오스크 앞에서 잠시 멈춰 있던 부모님의 모습이 그 질문을 떠올리게 했다. 기술은 점점 더 편리해지지만, 모든 사람이 같은 속도로 그 편리함에 도달하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그날 내가 했던 잔소리는 부모님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언젠가의 나에게 건네는 말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내가 따라가기 벅찬 속도로 달려가는 기술에 대한 작은 투정이었을지도 모른다.


기술은 점점 더 편리해지고, 세상은 그 속도에 맞춰 움직인다. 우리는 늘 새로운 것을 배우고 따라가야 한다고 말한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 불편하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서 말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배우고, 누군가는 익숙해지고, 또 누군가는 그 흐름에서 조금씩 멀어진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든다. 따라가지 못하는 부모님이 틀린 것인가? 정말 우리는 그 속도를 끝까지 따라가야 하는 것일까? 기술은 앞으로 나아가지만, 사람의 시간은 저마다 다르게 흐른다. 어떤 사람은 조금 늦게 배우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은 멈춰 서기도 한다. 그것은 뒤처짐이 아니라, 단지 속도 차이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날 부모님에게 했던 잔소리를 떠올리며 잠시 생각에 빠진다. 내가 따라가고 있는 이 속도는 정말 나의 속도인지, 아니면 단지 세상이 정해놓은 속도를 쫓아가고 있는 것인지. 그리고 키오스크 앞에서 멈춰 서게 되는 날이 온다면 나는 그때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할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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