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그런 사람들이 있다. 도움을 요청해 놓고는 정작 자신은 한 발 물러나 있는 사람들 말이다. 같이 하자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일을 던져두고 상황을 지켜보기만 한다. 일이 잘 풀리면 함께한 일이 되고, 문제가 생기면 맡은 사람의 책임이 된다.
또, 협업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일이 어느 순간 혼자 감당해야 하는 일이 되는 경우가 있다. 더 난감한 것은 책임은 나에게 있지만 권한은 없는 상황이다. 판단을 내려야 하는 순간에는 권한이 없고, 무기한 대기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당연히 일이 진행되지 않는데, 그 책임은 또 내가 져야 한다. 그런 구조 속에서 일하다 보면 협업이 아니라 사실상 책임만 떠맡은 노동이 되는 순간들이 있다. 이런 일이 대학생 조별과제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월급을 받고 일하는 사회 업무 현장에서도 허다하게 발생한다.
나는 그런 상황을 회사에서 꽤 자주 겪었다. 분명 여러 사람이 함께 해야 하는 프로젝트였는데, 어느 순간 실제로 일을 움직이고 있는 사람은 나 하나인 경우가 많았다. 역할이 나뉘어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도움을 요청하면 바쁘다는 이유로 미뤄지고, 마치 자신과 상관없는 일인 것처럼 행동한다. 결국 판단이 필요한 순간에는 책임을 회피하는 분위기가 생겼다.
처음에는 그것이 협업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조금 더 움직이면 일이 굴러가고, 내가 조금 더 책임지면 프로젝트가 진행된다고 믿었다. 그래서 부족한 부분을 메우려고 했고, 다른 사람들이 하지 않는 일, 책임을 소홀히 하거나 무시하는 일까지 끌어안으려 했다. 일이 완성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방식은 오래가지 못했다. 일이 무거워질수록 책임도 함께 무거워졌다. 같이 들자고 시작한 일이 어느 순간 나 혼자 들고 있는 짐이 되어 있었다. 결국, 결과의 퀄리티도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어느 순간 나는 생각을 바꾸었다. 협업이라는 이름만 붙어 있다고 해서 그것이 진짜 협업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함께 일을 한다는 것은 책임도 함께 지는 것이어야 한다. 하지만 책임은 한쪽에만 쏠리고, 권한은 흩어져 있는 구조에서는 그것을 협업이라고 부르기 어렵다. 그래서 나는 하나의 선택을 했다. 같이 들지 않는다면, 차라리 나 혼자 드는 것이 났겠다는 선택이었다.
처음에는 그것이 패배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사회성이 부족한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함께 해야 할 일을 혼자 떠안는다는 것은 결국 내가 손해를 보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어설픈 협업 속에서 끌려다니는 것보다. 내가 책임질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일을 정리하는 것이 훨씬 마음이 편했다. 적어도 그 일은 내가 기획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시작과 끝이 어디인지 알고 있었고, 무엇을 결정해야 하는지도 명확했다. 누군가의 판단을 기다리느라 일을 멈춰 두는 일도 없었다. 같이 들자고 말해 놓고 뒤로 빠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감정을 소모하는 일도 줄어들었다. 그래서 나는 이제 그렇게 생각한다. 같이 들지 않는다면, 나는 차라리 혼자 들겠다.
누군가가 역할을 나누어 주기를 기다리기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먼저 기획하는 방식이었다. 프로젝트가 시작되면 보통 사람들은 누가 무엇을 할 것인가부터 정하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이 일을 어떻게 완성할 것인가를 먼저 생각했다. 그렇게 전체의 흐름을 먼저 그려 놓으면 내가 해야 할 일이 자연스럽게 보인다. 그리고 그 일은 대부분 혼자서도 충분히 시작할 수 있는 일들이다. 자료를 정리하고, 구조를 만들고, 방향을 설계하는 일들은 누군가의 도움이 없어도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종종 팀을 만들기보다 일을 먼저 만들어 놓는다. 일이 굴러가기 시작하면 필요한 역할은 그다음에 자연스럽게 생긴다. 처음부터 사람을 모아 놓고 시작하면 협업보다, 이미 움직이고 있는 일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연결되는 방식이 훨씬 효율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 협업을 포기한 것이 아니다. 협업을 기다리지 않는 방식을 선택한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부작용도 있다. 바로 협업이라는 말을 쉽게 믿지 않는다는 점이다. 함께 일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이름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 책임도 함께 드는 일이어야 한다. 누군가는 짐을 들고 있는데 누군가는 옆에서 바라보고만 있는 상황이라면, 그것은 협업이 아니라 그저 짐을 떠넘긴 것에 가깝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누군가가 같이 들어주기를 기다리지 않는다. 처음부터 함께 들 사람이라면 자연스럽게 함께 들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억지로 붙잡아 둘 필요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같이 들지 않는다면, 나는 차라리 혼자 들겠다." 상당히 거친 표현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편이 훨씬 명확하고, 마음도 덜 다친다는 것을 한 회사를 10년 가까이 다니면서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