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유튜브에서 한 관광객이 노상방뇨를 하는 모습을 보았다. 관광지 한복판에서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이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순간 영상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눈살이 찌푸러졌다. 그런데 불쾌하던 생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손가락질을 하려던 마음이 문득 멈춰 섰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1980년대, 1990년대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노상방뇨는 그렇게 낯선 풍경이 아니었다. 길가 배수로에 서서 소변을 보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었고, 나 역시 그런 일을 한 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운 기억이지만, 그 시절에는 그 장면이 그렇게까지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한다. 우리가 이미 지나온 시간을, 누군가는 이제 막 지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오늘 태국을 여행하다가 나에게 주는 선물로 비싼 뷔페 레스토랑을 방문했다. 오늘 방문한 뷔페에서도 눈을 찌푸리는 일이 있었다. 한 커플이 접시에 새우를 산처럼 쌓고 있었다. 다른 접시에는 게를 가득 담고 있었고, 테이블에 놓여있는 또 다른 접시에는 여러 음식들이 넘칠 만큼 쌓여 있었다. 둘이 먹기에는 꽤 많은 양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대식가인가 보다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편했다. 하지만 접시 위의 음식이 점점 더 쌓여 가는 모습을 보며 나는 속으로 어떤 나라를 떠올리고 있었다. 특정 국가를 비난하는 영상에서 종종 보게 되는 장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음식을 한꺼번에 많이 가져오고, 결국 절반 이상을 남겨두고 자리를 떠나는 모습들 말이다. 그런데 잠시 후 알게 되었다. 그들은 한국인이었다.
그 순간 조금 부끄러워졌다. 그들이 한국인이어서가 아니었다. 잘못된 행동을 보고 특정 국가를 떠올렸던 내 생각이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들의 행동이 문제였지, 그들의 출신이 문제였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이미 마음속에서 그 행동을 어떤 나라와 연결시키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내가 얼마나 쉽게 사람을 일반화하고 있는지 깨닫게 되었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종종 행동보다 사람을 먼저 판단한다. 누군가가 잘못된 행동을 하면 그 사람 개인의 문제로 보지 않고, 그 사람이 속한 집단을 먼저 떠올린다. 어느 나라 사람인지, 어떤 문화권에서 왔는지, 어떤 배경을 가졌는지를 생각하며 그 행동보다는 그 사람이 속한 집단을 꼬집으려 한다. 그렇게 되면 한 사람의 행동은 어느새 한 나라의 모습이 되고, 개인의 실수는 집단의 특징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사실은 그저 한 사람의 잘못된 선택이었을 뿐인데 말이다.
물론 잘못된 행동은 분명히 지적받아야 한다. 공공장소에서의 무례한 행동이나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은 비난받아야 하고, 때로는 규칙과 처벌도 필요하다. 그것은 사회를 함께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약속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행동을 특정 집단이나 국가 전체의 모습으로 일반화하는 순간 이야기는 조금 달라진다. 그때부터 문제는 행동이 아니라 특정 집단이 된다. 그리고 그 판단은 쉽게 편견이 되고, 때로는 차별이 된다. 그래서 나는 오늘 뷔페식당에서 느꼈던 부끄러움을 오래 생각하게 되었다. 문제는 그들의 국적이 아니라 그들의 행동이었고, 내가 부끄러웠던 것은 그 행동을 보고서도 사람의 출신을 먼저 떠올렸던 내 시선 때문이다.
나는 다시 처음 보았던 그 영상이 떠올랐다. 관광지에서 노상방뇨를 하던 그 사람의 모습 말이다. 그 행동 자체는 분명히 잘못된 것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든다. 우리가 이미 지나온 시간을, 누군가는 이제 막 지나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말이다.
지금은 당연하게 여겨지는 공공 예절들도 사실은 시간이 지나며 조금씩 만들어진 것들이다. 예전의 우리는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꽤 많은 것을 허용하며 살았다. 그때는 그것이 그렇게까지 문제라고 생각되지 않았던 행동들이 지금은 분명한 무례로 받아들여진다. 잘못된 행동은 분명히 지적해야 한다. 그러나 그 행동을 특정 국가나 집단 전체의 모습으로 일반화하는 순간, 우리는 문제를 바로잡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편견을 만들어 내며 차별하는 언어를 사용하게 되는 듯하다.
나는 늘 이런 시선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노력하지만 쉽지는 않다. 오늘 드러난 내 편견의 시선을 조금 더 조심하려 한다. 그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말하되, 특정 행동으로 그 사람의 국적이나 배경을 먼저 떠올리는 실수는 하지 않으려고 한다. 어쩌면 내가 해야 할 일은 아주 단순한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을 판단하기 전에 행동을 먼저 바라보는 것. 그리고 그 행동만을 잘못되었다고 이야기하는 것과 사람을 일반화하는 것을 구분하는 것이다. 가급적 오늘 나의 부끄러움이 오래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조금 더 조심스러운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