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변을 걷는 뜨내기

by RAMI

해변가를 걷고 있다. 낮에는 더워서 나가기 싫고, 햇볕의 뜨거움도 견디기 어렵다. 그래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저녁이 되면 조용히 방에서 빠져나와 호텔 앞 파타야 해변을 걷는다. 이곳은 관광객이 많이 찾는 중심가와는 조금 떨어져 있다. 그래서인지 해변을 걷다가 만나는 사람보다 떠돌이 개들이 더 많다.


개들은 대부분 모래 위에 누워 있거나 천천히 걸어 다닌다. 어떤 개는 바다를 바라보며 앉아 있고, 어떤 녀석은 모래를 파헤치다가 이내 흥미를 잃고 다시 자리를 잡는다. 나를 경계하는 기색도 없고 그렇다고 반기는 눈치도 아니다. 그저 이 해변이 자신들의 자리인 것처럼 조용히 머무르고 있다. 나는 그 옆을 천천히 지나간다. 무리 중에 대장처럼 보이는 녀석이 가장 여유로운 표정으로 나를 한 번 힐끗 바라보고는 다시 고개를 돌린다. 내가 이곳을 잠깐 스쳐 지나가는 여행자라는 것을 아는 것처럼 말이다.


이곳을 걷다 보면 이상하게도 마음이 조금 느슨해진다. 낮 동안 머릿속을 채우고 있던 생각들이 저녁 바람에 조금씩 흩어진다. 한국에 있을 때라면 꽤 중요하게 생각했을 일들도, 여기서는 잠시 뒤로 밀려난다. 어쩌면 이 해변의 개들도 그런 밀려난 시간을 살고 잇는 것인지 모른다.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하지 않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따지지 않는다. 그저 지금 불어오는 바람과, 바닥에 깔린 모래 위에 몸을 내려놓고 있다. 나는 늘 어딘가로 가야 한다고 믿으며 살고 있고, 저 멀리 꽂아 놓은 깃발 쪽으로 빨리 달려가야 한다고 믿으며 살아가는데, 저 개들은 그저 이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보인다.


나는 개들을 보며 잠시 멈춰 선다. 왜 우리는 늘 어디로 가야 한다고 믿으며 살아가는 것일까. 아직 도착하지 못한 곳이 있고, 이루어야 할 일이 있고, 조금 더 나아진 삶이 저 앞에 있다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지금의 자리는 늘 잠시 머무는 곳이 된다.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전까지 잠깐 서 있는 장소처럼 말이다. 하지만 가끔은 그런 생각도 든다. 우리가 그렇게 서둘러 향하고 있는 그 깃발이 정말로 필요한 것인지 말이다. 어쩌면 삶은 도착해야 할 지점을 향해 달려가는 시간이라기보다, 지금 서 있는 자리를 충분히 살아내는 시간인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나는 쉽게 멈추지 못한다. 잠시 쉬고 있어도 마음은 다음을 향해 움직인다. 아직 하지 못한 일들을 떠올리고, 앞으로 가야 할 길을 셈하고, 지금 이 시간이 낭비가 아닌지 스스로 되묻는다. 그래서 나는 멈춰 있는 순간에도 어딘가로 가고 있는 것처럼 살아간다. 그래서 저 녀석들이 눈길을 주지 않는 것일 수 있다. 나는 지금 이 순간을 머물다 가는 뜨내기 이기 때문에...


나는 오늘도 특별한 목적 없이 해변을 걷는다. 어디까지 걸을지 정하지도 않았고, 언제 돌아갈지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바다 냄새가 나는 저녁 공기를 천천히 들이마시며 걷는다. 그러다 보면 잠시라도 내가 어디로 가야 하는 사람인지 잊어버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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