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온 길은 사막이 아닌 바다였다

보이지 않는 연결에 대하여

by RA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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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을 보러 가자는 한 마디에 우리는 어둠이 내려앉은 거리를 달렸다. 미리 예약한 숙소에 도착하자 숙연히 가라앉은 오솔길이 우리를 맞이했다. 숙소 입구의 노르스름한 조명만 밝혀져있었다. 흐릿한 조명의 안내를 받으며 입구로 걷는 동안 피곤함은 어느새 익숙한 그림자처럼 우리를 따라왔다. 평화로웠다. 작은 우리의 속삭임도 크게 울릴 정도로 주변은 고요했다.


우리는 그대로 침대 위에 쓰러졌다. 동료들의 작은 숨소리에 묻혀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귓가에 울리는 동이 트는 속삭임에 혼자 눈을 뜨니 아침이었다. 자고 있는 두 친구를 위해 조용히 방을 빠져나왔다. 아침이 번진 숙소 주변으로 산의 윤곽이 선명히 드러나고 있었다. 높이 솟은 산들과, 그 사이를 비집고 난 오솔길마저 이제야 눈에 들어왔다. 우리는 어둠을 지나 비로소 사막 근처에 와 있었다.


오솔길을 걸었다.

붓으로 그려 놓은 듯한 오솔길은 산길과 맞닿아 있었다. 걸었다. 그저 조용히 걸었다. 걸으며 눈이 왔던 흔적을 발견했고, 산짐승이 머물다간 흔적도 보았다. 길을 따라 둥글게 반원을 그리며 돌자 우리가 흘러왔을 것으로 추정되는 길도 보았다. 어제는 보지이지 않던 이 작은 것들이 이제야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한참을 내가 온 길을 바라보다가 방으로 돌아오니, 모두 잠에서 깨어 준비를 마친 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목적지인 하얀 사막, 화이트 샌즈를 보러 길 위에 올랐다. 달리는 차에서 창을 열자 피스타치오 향이 부드럽게 밀려들었다. 은은하게 풍기는 달콤한 향기를 맡으며 아이스크림이 녹아내리듯 부드럽게 길을 따라 미끄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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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타고 몇 분쯤 지났을까? 분명 사막을 향해 달리고 있었는데, 눈앞에는 눈 덮인 산처럼 하얀 풍경이 펼쳐졌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설산은 부드럽게 펼쳐진 설원으로 변해갔다. 그러나 차에서 내려 직접 그 땅을 밟는 순간, 하얀 설원으로 보였던 풍경은 놀랍게도 차갑고 보드라운 모래로 변해 있었다. 손으로 모래를 움켜쥐자 손가락 사이로 하얀 모래가 흩어지며 바람에 날아갔다. 이토록 고요하고 광활한 공간에 서 있으니, 바람에 흩어지는 모래처럼 내 걱정도 고민도 한없이 가벼워져 하얗게 흩어졌다.


누군가 먼저 남겨둔 모래 위의 발자국을 따라 언덕을 올랐다. 그리 높지 않았지만, 목구멍 끝까지 차오르는 숨을 허덕이며 모래 언덕을 올랐다. 정상에 올라 허리를 펴고, 우리가 지나온 길을 바라보니 흰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저 멀리 보이는 산의 윤곽만이 세상과 나를 이어주는 유일한 연결점 같았다. 우리 셋 모두 저마다 조용히 앉거나 걸으며 이곳의 침묵과 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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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를 밟으며 언덕을 오르는 길은 생각보다 힘들고 버거웠다. 한 걸음, 한 걸음이 발밑의 모래와 함께 미끄러지듯 힘겹게만 느껴졌다. 그런데 정상에 서서보니 내가 건너온 길은 마치 끝없는 하얀 바다를 가로지른 항해와 같았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궁금해졌다. 어쩌면 내가 모르는 사이, 이 세상과 나는 긴밀히 연결되어 있으며, 알지 못하는 사이에도 나는 나름대로 크고 거대한 일들을 이루며 이 자리까지 흘러온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언덕 위에서 잠시 멈춰 선 채, 나는 지나온 하얀 길 위의 수많은 발자국들을 바라보았다.


화이트 샌즈의 부드러운 바람이 볼을 스치고 지나갔다. 작게 빛나는 모래 조각들이 공중으로 반짝이며 피어올랐다. 그 순간, 나는 무언가를 내려놓았고, 또 무언가를 새로이 품었다. 다시 시작할 힘이, 이 사막에서 조용히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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