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이지만 아직도 꿈을 만들면서 살아갑니다.

by RAMI

한 음악 예능 방송을 보고 있었다. 영상 속에 밴드 보컬인 가수가 나와 노래 시작 전 멘트를 한다. 자신이 올해 서른이 되었지만, 아직도 자신의 꿈을 모르겠다고 한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잠시 웃었다. 그리고 곧 생각했다. 마흔이 넘은 나 역시 다르지 않다는 것을.


어쩌면 나는 방황하고 있다는 사실을 티 내지 않기 위해, 지금 내 자리에서 더 열심히 움직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것이 정말 내가 원했던 꿈인가를 묻기보다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꿈처럼 만들기 위해 애쓰는 것에 가깝다. 그러나 아직도 마음 한편에서 뾰족하게 솟아오르는 무언가는 없다. 그래서 가끔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나는 아직도 방황 중인 거냐고.


스무 살 무렵, 나는 중고등학생들을 가르친 적이 있다. 그 아이들은 늘 꿈을 요구받고 있었다. 어느 대학, 어느 학과, 어떤 직업. 정작 하고 싶은 것은 모른 채, '대학에 가는 것'만이 목표가 되어버린 그 아이들에게 주변에서 꿈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의기소침해지는 얼굴과 강요와 같은 풍경이 싫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말했다.


"꿈이 없어도 괜찮다고, 아직 모르겠다면, 몰라도 된다고."


나는 그때 아이들에게 꿈을 갖어라라고 말하는 주변 사람들의 요구가 마치 기성복을 억지로 입으라고 강요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전 세대가 만들어 놓은 꿈이라고 잘 포장되어 있는 기성복이 없더라도 그 아이들 존재는 귀하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 아이들은 책상이나 의자처럼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다. 그러니 애초에 정해진 꿈같은 것을 억지로 만들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꿈을 꾸기 위해 존재하는 인간이 아니라, 사회가 요구하는 어떤 인물이 되기 위해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모든 직함과 역할이 벗겨져도 끝내 사라지지 않는 실존으로서의 나. 그 사유가 나를 조금은 자유롭게 만들었다.

L'homme n'est rien d'autre que ce qu'il se fait


평소에 허무한 철학이라고 무시했던 실존주의가, 뜻밖에도 내게 위로를 주었다. '인간은 자신이 만들어가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다.' 처음 이 문장을 접했을 때, 이상하게도 위로를 받았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어떤 목적을 부여받은 존재가 아니고, 미리 정해진 꿈이나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다고 해서 실패자가 되는 것도 아니라는 뜻처럼 들렸다. 매 순간의 선택과 행동을 통해 스스로를 만들어가는 존재라는 말. 그래서 아직 꿈이 없다는 사실은 결핍이 아니라, 여전히 만들어지고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오래전 일이라 명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때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꿈이란 찾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며 개발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그리고 지금, 나는 마흔이 넘었다. 꿈을 찾는 사람이 아니라, 여전히 내 길을 만들고 있는 사람이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싶지만 현실 앞에서 망설이다가 하루가 그냥 흘러가 버릴까 두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도 나의 화양연화가 오지 않았다고 믿고 싶다.


어쩌면 화양연화는 찬란한 성공의 순간이 아니라, 포기하지 않고 질문을 멈추지 않는 지금의 시간들이 이어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 그 시간을 살고 있다. 그래서 오늘도 방황을 멈추지 않는다. 아직 나는 길 위에 있으니까.


작가의 이전글이름 하나로 돌아갈 수 있는 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