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은 어디에 있을까? 어디로 가서 나는 살고 싶은가?
전셋집 계약 만료가 다가오면서 집을 구하고, 대출을 알아보면서 머릿속에는 온통 이사 갈 집뿐이었다. 부동산을 돌며 적당한 곳을 알아보고 있지만, 왠지 마음에 차지 않는다. 오늘도 허탕을 치고, 편의점에서 음료수를 사서 놀이터 밴치에 앉았다. 목을 타고 흐르는 청량감이 마음의 무거움을 조금이나마 해소해 주는 듯했다. 가만히 앉아서 그림자진 놀이터 바닥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꼭 서울이어야 할까?"
서울에서 태어나서 지금까지 자라왔기에 서울을 떠나고 싶지 않다. 30년 넘게 살아온 이 동네가 떠나고 싶지 않다. 그런데 이곳이 마냥 좋아서 떠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새로운 곳으로의 이동을 두려워하는 것일지 모르겠다. 자그마한 불편함이 싫은 거다. 마음 한 구석에는 서울을 떠나서 한적한 곳으로 가서 살고 싶다는 생각도 크다. 그러나 일을 쉽게 구하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도 있다. 그러면서 나는 항상 입버릇처럼 해외에 나가서 살고 싶다고 떠벌인다. 참 모순적이다. 희망하는 것을 위해 리스크를 감수할 생각은 없으니 말이다.
생각은 이사에서 벗어나서 내가 살고 싶은 곳으로 뻗어갔다.
나는 해외에서 살고 싶다. 아직 어느 나라가 좋은지는 모르겠다. 다만 분명한 건, 지방으로 이사하는 것보다 더 많은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선택을 할 수 있는 조건은 이미 갖추고 있다. 미국이 본사인 회사를 다니며, 출장이라는 이름으로 몇 달씩 미국에 머문 적도 많다. 그런데도 나는 미국에서 살고 싶지는 않다. 아마도 내가 원하는 건 해외가 아니라 익숙함으로부터 조금 떨어진 삶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내가 찾고 있는 집은 어디에 있을까? 주소가 찍힌 공간일까, 아니면 내가 조금 덜 불안해지는 상태일까. 집을 구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나 자신이 편해질 수 있는 조건을 하나씩 점검하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익숙함을 완전히 버리지 않지만, 지금과는 조금 다른 나로 살아갈 수 있는 자리를 찾고 있는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내가 두려워하는 건 실패가 아니라 불확실함이다. 잘못된 선택을 해서 힘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선택 이후의 내가 무언가 또는 그 어떠한 것을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이 부담스럽다. 그래서 나는 늘 말로만 떠나고, 현실에는 가장 안전한 자리에 머문다. 떠나지 않음으로써, 아무것도 잃지 않는 대신 아무것도 새로 얻지 못하는 선택을 반복해 왔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답답한 생각과 선택이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한 곳에 오래 머물며 익숙한 삶을 유지하는 것도 나름의 용기와 책임이 필요하다. 떠나지 않는 삶 역시, 하나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아직 나는 완전히 떠날 준비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적어도, 어디에도 갇히고 싶지 않다는 마음만은 분명해졌다. 그래서 지금의 질문을 서두르지 않고 조금 더 오래 품어보기로 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나는 이 질문 위에 그대로 머물 사람은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은 멈춰 서서 고민하고 있지만, 언젠가 이 고민의 끝에 다다르는 날 반드시 한 걸음은 내디딜 것이다. 그곳이 서울이든, 지금 상상조차 하지 못한 다른 도시이든, 혹은 완전히 낯선 나라일지라도. 나는 결국 익숙함에서 조금씩 거리를 두며 새로운 환경을 통해서 살아보는 선택을 하게 될 것이다. 나는 정착을 거부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동을 두려워하지 않으려는 사람이고 싶다. 그래서 지금은 잠시 머물러 있을 뿐, 여기에 뿌리내릴 생각은 없다. 내 집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나는 멈추는 사람이 아니라 나아가는 쪽을 택할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여전히, 나는 여행자의 삶을 믿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