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해봤다는 경험을 내가 안다고 착각하고 있는가?

by RAMI

지식은 내 안에 들어오기 전에, 언제나 아는 척할 수 있을 만큼의 거리에 먼저 도달한다.


요즘 우리 회사에서는 AI를 활용해서 일하라는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엊그제 사장은 나를 따로 불러, 내가 하고 있는 업무에 AI를 접목하면 더 빠른 결과물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상당히 무례하게 말했다. 그 말은 일부 맞고, 일부 틀리기에 강하게 반박했다. 더 자세히 말하면 현재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에 AI를 활용해서 일부 진행하고 있기는 하지만, 작업의 대부분은 사람인 나와 팀원들이 한다. 그 이유는 내가 하고 있는 일에 AI를 얹는 것이, 과연 더 나은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테스트를 통해서 확인했기 때문이다.


차분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AI의 활용은 상당히 좋다고 보지만, 최근 회사에서 직원들이 작성하는 E-mail과 보고서 그리고 기안서들을 보면 AI의 활용은 상당히 부정적으로 제한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대체적으로 많은 직원들이 AI에서 답을 얻어 그대로 붙여 넣은 흔적들이 많고, 매끄럽게 정돈되어 있지만, 그 사람이 평소 하던 말과는 미묘하게 어긋나 있거나 상반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논리는 맞는 것 같지만, 맥락이 비어 있고, 결론은 있지만 고민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그럴 때마다 모니터를 보고 싶은 한숨만이 나온다. 자신의 생각처럼 말하고 있지만, 자신의 생각이 아닌 문장. 그 안에는 커다란 모순이 자리 잡고 있다. 보고서를 보낸 직원들을 불러서 이것저것 질문을 했을 때, 그는 자신이 작성한 내용과 전혀 다른 답을 내놓거나, 제대로 답변을 하지 못하는 경우들이 많았다. 생각하지 않고 답이라고 써낸 것이다.


AI는 결과를 내놓는다. 그러나 결과에 도달한 사고의 과정은 그 직원 안에 남아있지 않았던 것이다. 이 과정을 건너뛴 채, 결과물로 나온 문장만 받아들인다. 그리고 어느 순간, '받아본 것'을 이해한 것 또는 아는 것으로 착각한다.


생각하지 않아도 답이 나오는 시대가 되었다. 그래서 생각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더 늦게 깨닫게 된다. 나 역시 그 착각에서 자유롭지 않다. AI가 정리해 준 문장들을 읽고, 이 정도면 알겠다고 쉽게 넘긴 순간들이 있었다.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지만, 막상 내 말로 풀어내려 하면 문장이 막혔다. 아는 것과 안다고 느끼는 것의 거리는 상당히 멀다. 하지만, 이제는 생각과 고민의 레이어 없이 결과를 생성할 수 있는 시대가 되어버린 것 같아 참으로 안타깝다. 도구는 빨라졌지만, 내 사고까지 빨라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간극이 보이지 않게 가려졌을 뿐이다.


사람과 AI의 대결구조로 볼 것이 아니다. AI가 인간을 대체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도 아니다. AI의 사용하는 과정에서도 나의 인간다움을 유지할 수 있는 조건은 무엇인가를 묻고 싶다. 나는 그것을 생각의 사유화라고 본다.


답과 결과를 얻었다고 한다면, 그 답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의심하고, 어떤 지점에서 멈추는지는 여전히 내 몫이다. 그 과정을 거치지 않은 지식은 아무리 그럴듯해도 내 것이 되지 않는다. 단순하게 정보를 소비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의미를 내 삶과 맥락 속으로 끌어들이는 일이 필요하다. 또, AI의 문장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 문장을 내 언어로 다시 해체하고, 내 경험과 지식으로 충돌시켜서 내 판단으로 다시 세우는 과정이 필요하다. AI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AI를 통과해 다시 내 생각으로 돌아오는 과정이 필요하다.


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다고 착각하지만, 쉽게 얻은 정보일수록 더 많은 고민의 레이어가 필요하다. 접해봤다는 경험을 내가 안다고 착각하는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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