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은 나를 속이지 못하게 했다.
긴 명절 연휴 동안 특별히 할 일이 없던 나는 오래된 일기장을 들쳐보았다. 일기를 써도 다시 읽지 않는 편이라, 일기장에 대한 애착은 없다. 그래서 내 일기장은 벌래 먹은 옥수수처럼 알갱이가 듬성듬성 빠져있다. 그래도 일기를 써온 이유는 떠오르는 생각들과 밀려오는 감정들을 기록해두고 싶다는 마음이 커서였다. 그래서 내 일기는 감정이 요동쳤을 때에 잘 기록이 되어있다.
오랜만에 읽는 일기의 기록은 2016년에서 시작하고 있었다. 그 문장들의 시작에는 불안정하게 버텨내고 있던 나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자신감이 가득 차 있던 20대와 달리, 서른을 넘긴 뒤의 나는 자존감이 완전히 무너져 있었다. 하는 일마다 실패하였고, 내일은 늘 두려움의 이름으로 다가왔다. 그 일기장은 기록이라기보다 자책과 자기혐오가 쌓인 장소에 가까웠다. 일기장 속 내 모습은 마치 올무에 걸린 동물처럼 발버둥 치고 있었다. 벗어나고 싶다는 말과 도망치고 싶다는 문장이 페이지마다 남아 있었다. 그리고 결국, 나는 배낭을 메고 해외로 도망치듯이 떠났다. 설렘이 아니라, 이 자리에 계속 머물다가는 정말 죽을 것 같다는 감정에 가까웠다.
어느 순간부터, 자책과 자기혐오로 가득했던 문장들이 조금씩 다른 얼굴을 띠기 시작했다. 스스로를 몰아붙이던 문장들은 질문으로 바뀌었고, 비난은 관찰에 가까워졌다. 그 변화가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 시기가 인도 암리차르를 여행하던 때였다. 그때의 글을 읽으면, 나는 마치 내가 구르(Guru)인 것처럼 말을 하고 있었다. 세상을 통찰한 사람처럼, 큰 깨달음을 얻은 간증인처럼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다. 그 이후로는, 모든 순간과 모든 풍경이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내게 연결되었다. 설명하려 애쓰기보다는 느끼고 남겨두는 글, 명확한 결론 대신 여백을 품은 문장들로 일기의 형태도 점점 변해갔다.
그 이후, 2019년부터 2년 정도의 기록들은 유독 날이 서 있었다. 일기장에는 회사에 대한 불만과 조직의 부조리를 향한 분노가 가득했고, 리더로서의 책임감과 결과에 대한 집착이 문장 곳곳에 묻어 있었다. 따라오지 못하는 팀원들에 대한 답답함, 이해되지 않는 회사 운영에 대한 비난이 뒤섞여 있었다. 그 시기의 나는 늘 싸우고 있었던 것 같다. 상황과 조직과 그리고 사람들과. 그러던 중 문득 눈에 들어온 문장이 하나 있었다. "내 이름이 들어간 프로젝트는 무조건 뛰어난 결과물이 나와야 해!!" 그 문장을 읽으며 나는 잠시 웃었다. 지금도 비슷한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그때의 문장에는 긴장과 분노가 그대로 박혀 있었다. 결과를 향한 책임이라기보다, 실패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강박에 가까웠다. 그 시절 나와 함께 일했던 동료들은 얼마나 살얼음판을 걷듯 하루를 보냈을까. 지금에 와서야, 그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뒤늦게 올라왔다.
2022년 이후의 기록들은, 이전과는 다른 결을 띠고 있었다. 그 시기의 일기에는 분노보다 질문이 많았다. 비난보다는 '만약에' 나라면이 많이 붙어서 해결점을 찾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물론 조직이나 상황이 바뀌지는 않겠지만 반면교사로 삼으려는 모습들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단정 대신 망설임이 남아 있었다. 나와 다르다는 것은 틀린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 좋아하고 싫어하는 선호의 문제로 정리해 버리기보다는, 그 다름 자체를 이해해 보려는 시도들이 문장 사이에 남아 있었다. 물론 나는 아직도 그 다름을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한다. 어떤 순간에는 여전히 판단하고, 선을 긋고, 속으로 고개를 젓는다. 그럼에도 예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다름을 즉시 교정하거나 밀어내기보다는 잠시 그 앞에 머물러 보려 한다는 것이다. 이해하지 못한 채로 남겨두는 일, 쉽게 결론 내리지 않는 태도, 어쩌면 그것이 지금 내가 배우고 있는 방식인지도 모르겠다.
돌아보면, 내가 써온 일기장은 나를 설명하기 위한 기록이 아니었다. 잘 살고 있다는 증거도, 성장의 궤적을 증명하기 위한 자료도 아니었다. 그저 그 순간의 내가 어떤 얼굴로 살아내고 있었는지를 남겨둔 흔적에 가까웠다. 그래서 나는 일기를 소중히 보관하지도 않았고, 다시 읽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기록은 늘 현재를 견디기 위한 도구였고, 감정 쓰레기 통이었지, 미래를 위한 증명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10년에 가까운 시간을 한 번에 들여다보니, 그제야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그때는 절대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았던 감정들이, 시간이 지나 문장으로 남아 있었고, 그렇게 남겨진 문장들이 지금의 나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나는 분명 같은 사람이었지만, 같은 방식으로 생각하고 있지는 않았다. 자책은 질문으로, 분노는 책임으로, 확신은 망설임으로 조금씩 옮겨가 있었다. 이 기록들이 없었다면, 나는 여전히 내가 늘 같은 지점에서 맴돌고 있다고 착각했을지도 모른다. 변하지 않는 성격, 반복되는 실패, 늘 비슷한 고민 속에 있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규정했을 것이다. 그러나 문장들 속 나는 분명히 변해 가고 있다. 그 변화는 언제나 조용하고 느린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기록은 그 느린 속도를 견딜 수 있게 해주는 증거가 되었다.
지금의 나는 더 나아졌다고 말할 수 없다. 다만, 조금 덜 확신하고, 덜 분노하며, 덜 단정하는 사람이 되었을 뿐이다. 예전처럼 빠르게 결론을 내리지 않고, 이해되지 않는 감정과 사람과 상황 앞에 잠시 머물러 보려 한다. 그 태도가 성숙인지, 타협인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예전처럼 나 자신을 몰아붙이며 살아가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아마도 기록의 가장 큰 힘은, 나를 바꾸는 데 있지 않은 것 같다. 기록은 나를 바로잡기보다, 나를 속이지 못하게 만드는 장치에 가깝다. 그때의 내가 무엇을 두려워했고, 무엇에 화가 나 있었으며, 무엇을 간절히 붙잡고 있었는지를 숨기지 못하게 만든다. 그래서 기록은 언제나 조금 불편하지만, 그 불편함 덕분에 나는 나 자신과 완전히 멀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
다시 일기장을 덮으면서, 나는 이 기록들을 잘 써왔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때의 감정과 상황에서 도망치지 않고 남겨두었다는 사실만은 인정해주고 싶다. 그 순간의 나를 미화하지도, 삭제하지도 않은 채 그대로 적어두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이 10년은 충분히 의미가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매일 그리고 자주 기록할 자신은 없지만 앞으로도 나는 계속 기록할 것이다. 정답을 남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에게서 너무 멀어지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언젠가 다시 이 문장들을 꺼내 읽게 된다면, 지금의 나 역시 또 하나의 흔적으로 조용히 적혀 있기를 바라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