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 오면 왜 이렇게 추울까

by RAMI

긴 연휴를 끝내고 나는 오피스로 출근했다.

일주일 중 네 날은 재택으로 일하고, 한 번만 오피스로 향한다. 회사와 집 사이의 거리는 두 시간이 넘는다. 그래서 출근하는 날이면 늘 새벽부터 하루가 시작된다. 날씨는 많이 풀려 있었다. 명절 전 후로 이례적으로 포근했고, 옷차림은 평소보다 가벼워졌다. 덕분에 발걸음도 그만큼 가벼워진 것처럼 느껴졌다.


맑은 하늘과 연휴 후의 시작은 마음도 들뜨게 했다. 오랜만에 동료들을 볼 생각에 기분마저도 좋아졌다. 오피스에 도착해서 바쁜 오전을 보내고, 점심 식사 후 동료와 커피 타임을 갖기 위해 밖을 나섰는데 불어오는 바람에 옷깃을 여몄다. 분명 영상 4도의 기온이었는데 채감상 영하 4도와 같이 느껴졌다. 나는 회사에 오면 늘 추운 걸까. 지리적 거리도 2시간 정도 떨어져 있을 뿐인데 마치 다른 곳, 다른 나라에 온 것처럼 추위를 느낀다. 이와 비슷한 경험을 20대 초반 군생활을 하면서 경험한 적이 있다. 위병소 밖은 따듯한데 위병소 안에만 들어가면 춥고, 일반복을 입었을 때보다 군복을 입었을 때가 더 추웠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렇다.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이 추위의 원인은 날씨뿐만이 아니다. 회사에 오면 늘 춥고, 여름에는 심하게 덥다. 냉난방이 부족해서도, 건물이 낡아서도 아니다. 이곳에 오면 몸이 먼저 벗어나라고 경계하는 것과 같다. 아마도 심리적 안정감이 낮은 공간에서는 체온이 쉽게 떨어지나 보다. 이곳에 오면 몸이 먼저 벗어나라고 신호를 보낸다. 그래서 나는 나도 모르게 열을 아끼고, 어깨를 움츠리고, 말을 줄인다. 이 추위는 날씨의 문제가 아니라, 나를 보호하려는 몸의 반응이다. 그래서 나는 이 추위를 없애려고 애쓰지 않기로 했다. 조직에서 심리적 안정감을 얻지 못하는 나에게 더 단단해지라고, 더 강해지라고 말하는 것은 나를 너무 학대시키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대신, 이 공간에 나를 전부 맡기지 않기로 했다. 회사 안의 평가와 분위기를 내 하루의 기준으로 삼지 않기로 했다. 이곳은 내가 머무는 장소 중 하나일 뿐, 나의 온도와 중심을 결정하는 곳은 아니라고 스스로에게 반복해서 말해주었다.


심리적 안정감이 없는 공간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나를 증명하려 애쓰지 않는 것, 모든 긴장을 책임지려 들지 않는 것, 그리고 이 추위가 나의 무능이나 부족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을 매번 다시 확인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곳에서 필요한 만큼만 나를 사용하고, 남은 온기는 다른 곳에 남겨두기로 했다. 내가 안전하다고 느끼는 관계와 내가 나로 돌아올 수 있는 시간들, 그리고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나만의 자리들에 말이다.


나는 이런 선택을 했지만... 생각은 자연스럽게 팀원들에게로 옮겨갔다. 나는 곧바로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이 공간에서 내가 느끼는 이 추위는, 과연 나 혼자만의 감각일까."


나는 관리자다. 결정을 내리는 사람이고, 방향을 정하는 사람이며, 누군가의 하루에 온기를 더하거나 빼는 위치에 서 있다. 그렇다면 내가 느끼는 이 불안정함과 긴장은 혹시 팀원들에게 같은 방식으로 전달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들에게 어떻게 하면 안정감을 전달해 줄 수 있을까.

나는 늘 팀원들에게 편하게 이야기하라고, 의견이 있으면 언제든 말해도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말이 '안전한 말'로 전달되고 있을지에 대한 확신은 없다. 말할 수 있는 환경과 말해도 괜찮은 환경은 분명 다르기 때문이다. 의견을 낼 수는 있지만, 그 이후의 공기까지 안전한 지는 또 다른 문제다. 나는 혹시, 결과에 대한 책임과 긴장을 나도 모르게 팀원들에게 나눠주고 있지는 않았을까?


내가 이 공간에서 느끼는 추위가 나를 단단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나를 경계하게 만들었다면, 나는 그 경계를 팀원들에게도 요구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그래서 요즘의 나는 팀을 따뜻하게 만들겠다는 거창한 목표를 말하지 않는다. 적어도 더 차갑게 만들지 않겠다는 다짐을 먼저 한다. 불필요한 긴장을 줄이고, 모든 결과를 혼자서 떠안지 않아도 된다는 신호를 말이 아니라 태도로 남기려 한다.


심리적 안정감은 개인의 의지보다 조직의 태도와 제도에서 비롯되는 부분이 크다는 것을 나는 부정할 수 없다. 그 영역은 내가 온전히 통제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손댈 수 없는 구조 대신 내가 남길 수 있는 흔적에 집중하려 한다. 얼굴의 표정과 말투, 대화가 끝난 뒤에도 남는 공기 속에 아주 작은 온기라도 남겨보려 한다.


언젠가 이 공간을 떠나는 날이 온다면, 그때는 비로소 모든 원인들을 차분히 다룰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다만, 이곳의 온도가 내 삶 전체를 규정하지 않도록 거리를 두는 연습을 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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