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술? 친구가 없어서 혼술 하는 거 아닙니다.

by RAMI

"대체적으로 혼술을 즐기는 편이에요."

점심시간에 동료와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지난 명절을 어떻게 보냈는지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거의 집에 머물며 영화와 드라마를 보고, 밤에는 혼술을 했다고 말했다. 혼자 술 마시는 걸 좋아하느냐는 질문에, 잠시 생각을 하다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혹시, 친구가 없는 건 아니고요?"

장난으로 던진 그의 질문에 정곡을 찔려버리고 말았다. 몇 년 사이, 혼자 술을 마시는 시간은 내 삶의 자연스러운 패턴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것을 좋아한다고 생각해 왔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나는 혼자를 선택하고 있는 게 아니라, 혼자가 되어가는 상태에 점점 익숙해지고 있었던 것 같다. 전에도 친구는 적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많지 않던 친구도 주변에 없다. 나이 한 살이 더해질수록 친구의 수가 한 명씩 줄어갔다.


사실 나는 의도적으로 사람을 밀어내왔다.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서는 만남이 주는 기쁨보다는 내 삶의 리듬이 흐트러지는 것을 더 염려했다. 또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연락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과 안부를 묻지 않으면 올라오는 미안한 감정들 그리고 어느 순간 관계가 자연스럽게 흘러가지 않게 되는 순간들에 많은 피로를 느꼈다. 그래서 나는 나름대로 친구 리스트를 만들고 관리했다. 기계적인 만남이 아니라, 진솔한 만남을 위해서 관계를 정리한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나에게 관계란 기쁨이 아니라 관리가 되었을까?


언제부터인가 나는 이 상태를 굳이 문제 삼지 않으려 했다. 혼자 술을 마신다는 말은, 그럴듯하지 않은가? 스스로 선택한 취향처럼 들렸고,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말이다. 혼술이라는 단어 뒤에는 외로움도, 관계의 부재도 굳이 꺼내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누군가와 마시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은, 누군가가 없다는 사실을 덮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오늘만큼은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정말 혼자를 좋아하는 걸까, 아니면 외롭다는 말을 하기 싫어서 이 단어를 선택한 것일까. 친구가 없다는 이야기를 꺼내면, 그다음에는 왜 없냐는 질문이 따라올 것 같았고, 그 질문 앞에서 무언가를 설명해야 할 것 같았다. 설명하지 못하는 상태를 들키는 것보다, 혼술을 즐긴다고 말하는 편이 훨씬 안전했다.


그렇지 않은가... 외로움을 인정하는 순간, 나는 무언가를 바꿔야 할 것 같았다.

관계를 다시 만들거나, 연락을 먼저 하거나, 잃어버린 사람들을 떠올리며 미안해해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지금의 삶에서 그 에너지를 낼 자신이 없다. 그래서 외로움을 문제로 만들지 않기로 했다. 이름을 붙여서 의미를 넣지 않으면 해결하지 않아도 되니까.


관계에서 느끼는 상실은 꼭 누군가가 떠나서만 생기지는 않는다. 자주 만나지 않게 되었고, 연락이 줄었고, 안부를 묻지 않아도 이상하지 않은 사이가 되었을 때를 우리는 이별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때마다 생긴 어색함의 구멍은 점점 커져간다. 나는 그런 상실들을 하나하나 애도하지 않은 채 지내왔을 뿐이다. 대신, 혼자가 편해졌다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혼술은 어쩌면 그 설득의 결과일지도 모른다. 혼자 있는 시간이 좋아졌다고 말하면서, 관계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니까. 선택이 되는 순간 나의 상실은 다른 사람 눈에서 가려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쓰는 지금의 나는 안다. 나는 혼자를 즐기고 있는 동시에, 혼자가 되어가고 있다는 안타까움 또한 안다. 그리고 그 두 감정이 반드시 모순은 아니라는 점도 잘 안다.

그래서 그 두 감정 사이에 서서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지금 충분히 괜찮은 상태인가? 아니면, 너무 많은 것을 조용히 무시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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