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를 자르고, 밝은 갈색 톤에 애쉬 컬러를 섞어 머리에 색을 입혔다. 시간이 지나면 이 색은 조금씩 빠져, 결국 2주 후면 금발에 가까운 갈색만 남게 될 것이다. 이렇게 염색을 해온 지 벌써 10년이라는 시간을 훌쩍 넘겼다. 4~5년 전까지만 해도 머리는 금발에 가깝게 하고 다녔다. 그때의 나는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다기보다 스스로를 그렇게 믿고 싶었던 사람에 가까웠다.
30대 초반의 염색은 자유주의자 선언에 가까웠다. 보수적인 조직과 집단에서 벗어나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탈이었고, 해방감이었다. 내가 있던 조직에서는 밝은 머리색은 절대 허용될 수 없었다. 그래서 그곳을 나오자마자 나는 매일 입던 정장을 벗어던졌고, 머리의 색을 바꾸었다.
30대 중반에는 디자이너이자 기획자라는 정체성을 설명하기 위한 표현이었다. 나는 비전공 디자이너라는 약점이 있었다. 회사도 중소기업이다 보니 본래 업무는 따로 있고 디자인이 맡겨진 것이지 주어진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개발되는 제품들을 갖고 미국 SXSW(사우스 바이 사우스 웨스트)를 비롯해 CES에 참여하면서 내 열등감이 커졌다. 그래서 머리 색을 바꾸고, 의상으로 디자이너임을 암시했다. 이때의 나의 금발 머리는 내게는 제복과도 같았다. 물론, 디자이너라고 다 염색을 하고, 특정 디자이너 코디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이렇듯 머리색만으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나를 모르는 사람도 짐작할 수 있기를 바랐다.
지금의 염색은 조금 다르다. 지난 시간 동안 반 백발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흰머리를 감추기 위한 수단으로 염색을 계속하고 있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내가 너무 닫힌 사람으로 보이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지금의 나는 개방적인 팀장으로 존재하고 싶다.
2년 전, 꽤 오랜 시간 출장으로 미국 뉴 멕시코에서 업무를 진행할 때는 콧수염을 기른 적도 있다. 현지 동료들의 말에 따르면 내가 곱상하고, 남자다운 외형이 아니라서 무시를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실제로 나에 대한 대우가 그렇다고 느껴지기도 했다. 당장 나는 다른 사람이 나를 보는 시선을 바꿔야 했다. 그렇다고 그들이 이야기하는 남자다움은 마초 같은 외형이기에 내가 추구하는 바와 다르다고 생각해서 포기했다. 그래서 옷은 더 세련되게 입고, 콧수염을 길렀다. 3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콧수염도 그럴듯해지자 그들은 나를 세심한 관리자로 바라보았다.
돌이켜보면, 나는 외모로 나를 설명해 온 시간이 꽤 길었다. 말로 나를 증명하는 대신, 머리색과 옷차림으로 먼저 신호를 보냈다. "나는 이런 사람입니다. 너무 경계하지 않아도 됩니다. 당신들이 상상하는 그 틀 안에 어느 정도 들어와 있습니다."라고 말이다.
그것을 표현이라고 믿어왔다. 그리고 지금도, 그 믿음은 크게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어느 순간부터 나는 이 표현이 나를 더 돋보이게 하기 위한 장식이 아니라, 관계를 불필요하게 날카롭게 만들지 않기 위한 선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것이 방어적인 거라고 한다면, 나는 이 방어적인 내 태도에 꽤 만족하고 있다. 숨기기 위한 방어가 아니라, 타인이 나를 인식하는 사이의 간격을 줄이기 위한 조율이기 때문이다.
주변에서는 멋 부린다고 생각하겠지만, 이 것은 나만의 비언어적 의사소통 중 하나이다. 그런데 가끔은 이런 생각도 든다. 언젠가는 머리색이나 옷차림으로 나를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시점이 올까? 아무 신호를 보내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의 나로 충분한 자리 말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때가 오지 않았음을 너무 잘 안다. 지금의 나는 여전히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이해받아야 하고, 오해를 줄이거나 때로는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머리를 염색하고, 옷을 고른다. 이것은 나를 꾸미는 일이 아니라, 관계를 다치지 않게 다루는 일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