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규칙함을 바로잡지 않기로 했다.

by RAMI

와인잔을 떨어뜨렸다.

와인을 한 모금 넘긴 후 탁자 위에 내려놓은 잔이 내 부주의한 움직임에 바닥으로 떨어졌다. 다행히도 잔은 깨지지 않았다. 와인은 흰색 바닥 위로 쏟아져 불규칙하게 번져갔다. 급하게 휴지로 와인을 닦으려다가 형광등 불 빛에 반짝이며 움직이는 아름다운 모습에 난장판이 된 바닥은 금세 잊어버리고 손을 멈추었다.


불규칙하게 번진 와인은 흰 바닥 위에서 알 수 없는 저마다의 방향으로 흘러갔다. 와인이 움직일 때마다 다양한 모양으로 빛을 반사시키며 순간순간 다른 표정을 만들어냈다. 규칙적이고 계획된 선은 아니었지만, 그 무질서 속에 분명한 리듬이 있었다. 어느 한쪽으로만 흐르지 않았고, 같은 형태를 반복하지 않았다. 그저 바닥의 기울기와 공기의 흐름 그리고 방 안의 온도, 떨어지는 순간에 가해진 힘의 방향에 따라 자기 방식으로 퍼져갔다. 아름답다. 실수였지만, 부주의였지만 쏟아버린 와인이 참으로 아름답다.


나는 그 모습을 한동안 바라보며 생각했다. 우리는 왜 이렇게 불규칙한 장면 앞에서 늘 서둘러 정리하려고 할까. 왜 어긋난 흔적을 그대로 남겨두지 못하고 불안이 먼저 따라올까. 잔에 담긴 인생이 바닥에 쏟아져버린다면 그것 또한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늘 계획을 세운다. 정해진 순서와 속도, 예측 가능한 결과를 기대한다. 그렇게 흘러가야만 제대로 살고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실제 삶이란 좀처럼 계획을 따르지 않는다. 의도하지 않은 선택이 끼어들고, 예상보다 늦어지거나,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그것을 실수 또는 불운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수습해야 할 것으로 취급한다. 그러나 바닥 위의 와인은 실패하지 않았다.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 잘못된 방향으로 흐르지도 않았다. 그저 떨어진 자리에서 가능한 방식으로 움직이고 있을 뿐이었다.


혹시 인생에서 불규칙함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그것이 잘못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통제할 수 없기 때문은 아닐까. 계획에서 벗어난 흐름은 설명하기 어렵고, 책임을 붙이기도 애매하다. 그래서 불규칙한 순간을 빨리 닦아내고, 없었던 일처럼 만들고 싶어 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와인을 닦지 않고 바라보는 동안, 그 번짐은 점점 더 분명해졌다. 난장판처럼 번지던 흔적이, 시간이 지나자 하나의 장면처럼 느껴졌다. 다시 담을 수 없고, 다시 동일한 흔적으로 만들 수 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그 순간을 더 선명하게 바라보게 했다. 닦아버리면 아무 일도 없었던 바닥이 되겠지만, 잠시 남겨두는 동안에는 그 자리에 분명한 이야기가 존재한다.


어쩌면 인생의 많은 순간도 이와 같지 않을까? 우리가 너무 빨리 정리해 버린 선택들, 서둘러 의미를 붙여버린 관계들, 실패로 규정하고 지나온 시간들. 그 모든 것이 정말 닦아내야만 하는 것들이었을까? 아니면 조금 더 바라볼 수 있었던 흔적이었을까?


나는 결국 휴지를 들어 바닥을 닦았다. 와인은 빠르게 휴지 안으로 파고들어 와 번져갔다. 잠시 후 흰 바닥은 다시 아무 일 없던 상태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 장면을 너무 빨리 지우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했다. 불규칙함이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오류가 아니라는 것, 계획에서 벗어난 흐름에도 나름의 형태와 리듬을 갖는다는 사실을 잠시나마 깨달았다.


인생이 어긋났다고 느껴질 때, 바로 닦아내기보다는 잠시 멈춰 바라보는 연습을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모든 불규칙함이 아름다울 거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것이 무조건 잘못되거나, 잘못한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바닥 위에 번져가던 와인이 조용히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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