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선택한 방향을 응원합니다. 그리고 누구보다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지난 주말 결혼식에 다녀왔다.
1시간 간격으로 두 번의 결혼식이 있어 마치 하객 아르바이트하는 사람처럼 분주하게 움직였다. 다행히 한 곳은 천호동, 다른 한 곳은 잠실에서 있었다. 둘 다 내 아끼는 후배들이었고, 늘 그들의 인생을 응원해 왔던 터라 바쁘고 지치더라도 빠질 수 없었다. 한 시간이라는 텀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할 만큼, 그들의 결혼식에 함께할 수 있다는 건 내게는 큰 영광이었다.
그리고 묘하게도,
두 사람 모두 해외에 거주하고 있고 배우자는 모두 외국인이었다. 한 명은 남반구인 호주에, 다른 한 명은 지구 반대편 코스타리카에 신혼집을 차렸다.
그래서일까?
그날의 결혼식은 조금 달라 보였다. 흰색 드레스에 검정 턱시도, 언제나 같은 순서와 같은 장면으로 이어지는데, 그날은 마치 서로 다른 시간대를 살아온 인생들이 잠시 한 장면에 겹쳐진 듯 보였다. 유독 다른 인생의 궤적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들의 용기와 인생을 늘 응원하고, 평생 응원하고 싶다. 둘 다 스무 살이 조금 넘은 어린 나이에 한국을 떠나, 언어도 문화도 낯선 곳에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말이 좋아 자리를 다시 잡았다고 표현했을 뿐, 삶을 새로 시작한 것이나 다름없다.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그들에게는 생활이었고, 경험이 아니라 선택이었다. 하루하루가 생존과도 같은 곳에서, 그들은 뿌리를 내린 것이다.
그들이 막 해외에서 정착했을 시기에 가끔 눈물로 전화를 걸어왔다. 조금 섭섭한 이야기만 들어도 가슴에 큰 구멍이 생긴 것 같이 느껴지는 해외 생활에서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들어주며 토닥이는 말 뿐이었다. 내 눈에 그들은 도망친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의 주변과는 다른 방향이었지만, 그만큼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방향을 선택한 사람들이었다. 그 선택에는 분명한 용기가 있었다.
트램이 서로 교차하는 멜버른 거리에서 그의 까만 얼굴이 보였을 때 너무나도 반가웠다. "넌 여전하구나." 우리는 마치 친남매, 친형제, 친자매처럼 서로의 얼굴을 보자마자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큰 웃음으로 서로를 반겼다. 영어 한 마디도 못하던 어린아이였기에, 그래서 참으로 많이 걱정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누구보다 멜버른과 잘 어울렸다. 늦은 밤 바에 앉아 음악을 들으며 살아온 이야기를 꺼내놓을 때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서사가 그에게 존재했다.
코스타리카에 있는 후배는 그보다 앞서 스페인에서 살고 있을 때 만났다. 낯선 해외에서 지인을 만났을 때의 감동을 잊지 못했기 때문에 충분한 격려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익숙한 얼굴을 그라나다의 노란 조명이 밝게 빛나는 거리 위에서 마주했을 때의 기분을 아직도 기억한다. 잘 살고 있구나, 더 멋있게 버티고 있구나, 그리고 혼자가 아니구나. 그래 혼자가 아니란다... 그 말을 직접 전해주고 싶었다.
결혼식 날, 부모님들도 신랑도 신부도 참 많이 울었다. 그 눈물은 단순한 기쁨의 눈물이라기보다는, 그동안의 시간과 선택을 통과해 온 사람만이 흘릴 수 있는 울음처럼 보였다. 물론 걱정과 안타까움도 존재했으리라. 낯선 땅에서의 생활 쉽지 않았을 언어와 관계, 확신보다 불안이 많았던 날들. 그 모든 시간을 지나 이 자리에 섰다는 사실이, 그날의 눈물을 더 깊게 만들고 있었다.
나는 그 선택의 초입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더 응원하게 된다. 그들이 걸어온 인생의 태도를 기억한다. 어린 나이에 떠났고, 스스로 선택했고, 그 선택의 결과를 끝까지 살아낸 사람들. 그들이 만들어갈 다음 장면 역시 분명 쉽지 않겠지만, 나는 그 인생을 계속 응원하고 싶다. 그 용기가, 그 삶이, 정말로 멋지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