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나는 인상이 좋다는 이야기를 참 많이 들었다. 그런 칭찬을 들으면 싫지는 않았지만, 사실은 잘생겼다는 말을 더 듣고 싶었다. 나를 너무 잘 알기에, 그건 그냥 바람에 가까운 욕심이었다. 좋은 인상을 가졌다는 것은 상당히 유리했다. 마치 몇 미터 앞에서 출발하는 달리기 같았다. 인상에서 오는 편견은 나를 더 일을 잘하는 사람으로, 똑똑한 사람으로 보이게 했다. 그리고 첫인상에서 만들어진 그 선입견은 생각보다 오래 지속되었다.
오늘 아침 세수를 하다가 작은 충격을 받았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더 이상 웃상이 아니었다. 돌이켜보면 내 좋은 인상의 절반은 웃상 덕분이었다. 가만히 있어도 올라가 있던 입꼬리, 말하지 않아도 호의로 읽히던 얼굴과 실제로는 똑똑하지 않지만 총명해 보이는 눈빛. 그런데 거울 속의 나는 무표정에 가까웠다. 항상 위로 향해 있던 입꼬리는 내려와 있었고, 쫑긋하던 눈꼬리도 평평해져 있었다. 시간에 따른 자연적인 흐름 때문인가, 아니면 내가 견뎌온 역할들이 얼굴에 남은 것일까? 물기가 남은 손바닥으로 입꼬리와 볼을 밀어서 위로 억지로 끌어올렸다가 내려놓기를 반복했다.
이제는 더 이상 웃상이 아니다. 더 이상 웃고 싶어서 웃는 사람이 아니라, 웃어 보이기 위해 웃으려는 사람이 되어버렸나 보다. 예전의 나는 가만히 있어도 웃는 얼굴과 같아서 말하지 않아도, 표정을 굳이 관리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나를 호의적으로 받아들였다. 그 덕분에 일은 조금 수월했고, 관계는 조금 빨랐다. 나는 그것을 성격이라 믿었고, 운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내 입은 웃음보다 설명을 늘어놓는 시간이 더 길어졌고, 표정에는 내가 갖은 책임들을 그대로 드러냈다. 가볍게 넘겨도 될 일들 앞에서 눈썹 끝을 올렸고, 대화에는 늘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다 보니 웃음은 점점 뒤로 밀려났다.
거울 속에서 웃음이 사라진 자리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그 안에는 시간이 아니라 역할이 쌓여 있었다. 결정을 미루지 말아야 하던 순간들, 괜찮다고 말했지만 속이 타버렸던 날들, 버팀이라는 이유로 표정을 접어두었던 시간들 말이다. 그것들은 책임이라는 모양으로 변해 소리 없이 얼굴에 남아있었다. 책임을 진다는 것은 늘 침착해 보이는 일이고, 흔들리지 않는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며, 감정보다 판단을 앞세우는 습관을 반복하는 일이다. 그 반복은 결국 내 시선에도 얼굴에도 스며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거울 밖의 나는 웃는 얼굴보다는 버티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마치, 웃음을 유보하는 사람처럼 말이다.
직책이 생기고, 역할이 늘어나고,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많아질수록 얼굴은 점점 개인적인 것의 것이 아닌 공적인 것이 된다. 감정은 나의 것이지만, 표정은 나만의 것이 아니게 된다. 그 무게가 쌓여 입꼬리를 조금씩 아래로 끌어당겼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거울 속의 나는 늙고 지쳐 보이기보다는 조심스럽고, 단단해 보였다.
입꼬리를 툭툭 건드리던 손을 멈추고 거울 속의 나에게 시비를 건다. 그렇다면 나는 이제 어떤 얼굴로 살아갈 것인지를 묻는다. 늘 웃는 상이던 얼굴이 사라졌다고 해서 내가 다른 사람이 된 걸까? 아니면, 그저 나의 일부가 잠시 뒤로 물러난 것뿐일까. 생각해 보면 웃상은 단순한 인상이 아니라 내가 세상을 이해하던 방식에 가까웠다. 먼저 웃고, 먼저 풀고, 조금은 느슨하게 관계를 시작하던 태도 말이다. 그러나 지난 몇 년간 나는 모든 일을 너무 잘 해내고 싶은 사람이었다. 좋은 팀을 만들고 싶었고, 좋은 기획을 회사에 뿌려대면서 모든 일을 완벽하게 해내고 싶었다. 그렇게 나를 조이고, 때렸다. 흔들리지 않기 위해 버팀목을 박고 끈으로 스스로를 옭아맸다. 그래서 웃음이 사라졌다는 사실은 얼굴의 변화라기보다 내가 나를 대하는 방식이 바뀌었다는 신호처럼 생각이 들었다.
머리를 말리고, 옷을 입으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다시 웃어도 되지 않을까? 예전처럼 아무 이유 없이 웃는 얼굴을 갖은 사람이 아니더라도, 의식적으로라도 웃어보는 건 괜찮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웃상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가벼워지겠다는 선언이 아니라, 나를 조금 더 여유롭게 바라보자는 선택일지도 모른다. 책임을 내려놓지는 못해도, 표정까지 책임질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다시 조금 웃어보기로 했다. 일이 끝난 뒤, 거울 앞에서 한 번 더 웃고, 괜히 웃기지도 않은 일에 배를 잡으며 웃어볼 것이다. 내가 나를 위해 그리고 나답기 위해 웃어보는 연습을 해보려고 한다. 나는 더 이상 예전의 웃상은 아니지만, 여전히 웃을 수 있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