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전쟁」-데이비드 맥키
현장체험학습으로 용산전쟁기념관을 다녀왔다. 소풍 나와 즐거운 아홉 살짜리 꼬맹이들은 마냥 신이 났다. 막 피어오른 꽃들도, 4월의 햇살도 좋은 봄날이었다. 현장체험학습이 끝나고 그 날 아이들의 일기는 온통 커다란 전투기나 탱크, 무기들이 얼마나 신기했는지와 3D 체험관에서 멋진 전투기를 타고 적을 물리친 것, 시뮬레이션 사격 체험이 마치 게임과 같이 재미있었다는 내용으로 가득했다. 솔직히 전쟁기념관을 둘러보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이 기념관이 전쟁의 참혹함을 기록하여 궁극적으로 평화를 지키기 위한 목적으로 세워졌다는데, 정말 그러한지 의문이었다. 곳곳에 전시된 전쟁 승리의 역사, 그리고 그것을 자랑하듯이 걸려있는 무기들을 보며 나도 모르게 전쟁의 승리감에 도취되는 것 같았다. 전쟁기념관에서 말하는 평화가 앞으로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인지 전쟁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한 것인지 헷갈렸다. 결국은 더 강력한 무기와 군대로 이기는 것이 정의이고, 승리가 곧 평화라는 도식을 반복하고 있었다. 전쟁기념관의 그 어느 곳에도 진짜 평화는 없었다.
아이들과 전쟁과 평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는 시간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초등학교 2학년 아이들에게 다소 어려울 수 있는 주제를 어떻게 풀어 가면 좋을까. 전쟁의 참혹함을 보여주면서 평화의 소중함을 이야기하는 것도 좋지만, 그것보다는 아이들의 시선으로 전쟁의 무의미함과 평화의 가치를 생각해보는 쪽으로 초점을 맞추고 싶었다. 요즘 아이들에겐 TV만 틀면 미디어를 통해 실시간으로 보도되는 지구촌 곳곳의 전쟁과 폭격, 그리고 잔인한 장면이 익숙하다. 수잔손택이 「타인의고통」에서 이야기한 것 처럼 자칫 누군가에겐 삶이 파괴되는 참혹한 현장이 그저 영상과 사진의 이미지로 남아 무뎌지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가 들었다.
전쟁과 평화를 주제로 한 그림책이 여럿 있지만, 그래서 데이비드 맥키의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전쟁」을 골랐다. 마치 우화처럼 짧은 이야기 속에 숨어있는 해학에서 아이들의 눈높이와 언어로도 충분히 대화할거리가 많은 그림책이다.
전쟁에 나가기만 하면 이기는 큰 나라가 있다. 이 큰 나라의 장군은 힘센 군대와 커다란 대포를 가지고 주변 이웃 나라들에 쳐들어가 한 번도 지지 않고 세상의 모든 나라들을 정복한다. 너무 작아서 눈에 띄지도 않는 딱 한 나라를 빼고. 장군은 작은 나라를 향해 군대를 이끌고 떠난다. 그런데 이 작은 나라에는 군대가 없다. 아무도 맞서 싸우기 위해 나오지 않았고, 오히려 집집마다 문을 활짝 열고 장군과 병사들을 손님처럼 반갑게 맞는다. 할 일이 없어진 큰 나라의 병사들은 작은 나라 사람들과 어울리기 시작한다. 함께 작은 나라 사람들의 노래를 부르고, 음식을 만들고, 그들의 일을 도와주기까지 한다. 화가 난 장군은 병사들을 돌려보내고 새로운 병사들을 데려온다. 그러나 새로 온 병사들도 마찬가지. 장군은 결국 몇 명의 병사만 남겨두고 큰 나라로 돌아간다. 늘 그랬던 것처럼 승전보를 울리고 승리의 노래를 부르며. 그런데 재밌는 것은 그 다음이다. 전쟁에서 이겼다고 뿌듯해하는 장군의 큰 나라의 모습이 달라졌다. 작은 나라의 거리에서 나던 음식 냄새가 풍기고, 작은 나라의 옷을 입고, 작은 나라에서 하던 놀이를 하는 아이들... 그리고 그날 밤 자장가를 불러달라는 아들에게 장군은 자신이 아는 하나뿐인 노래를 들려주는데, 그것은 바로 작은 나라 사람들이 즐겨 부르던 노래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전쟁」은 제목부터가 아이러니다. 세상에 행복한 전쟁이 있을 수 있을까? 아이들에게 그림책의 제목과 표지를 보여주며 물었다.
“세상에 행복한 전쟁이 있을까?”
"없어요, 전쟁이랑 행복은 어울리는 말이 아니에요."
"그런데 전쟁에서 이긴 사람은 행복하잖아요."
전쟁이라는 소재를 다루지만, 마치 애들이 그린 것 마냥 삐뚤빼뚤해 보이는 단순한 선과 가벼운 색연필 채색이 주는 느낌이 친숙하고 유쾌하다. 아이들은 그림책 곳곳에 나타나는 익살에 깔깔 웃기도 하면서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그림책을 다 읽어주고 난 후에 재미있었던 부분, 기억에 남는 장면, 생각이나 느낌에 대해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고 다시 질문을 던졌다.
“이 전쟁에서 이긴 나라는 어느 나라인 것 같니?”
큰 나라라는 아이들도, 작은 나라라는 아이들도 있었다. 누구도 이긴 것도 진 것도 아니라는 아이들도 있었다. 의견이 분분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도 각자 다양했다. 자기들끼리 한참을 누가 이겼는지에 대해 떠들어댔다.
" 큰 나라요, 작은 나라는 군대도 없지만 큰 나라는 힘센 군대와 무기가 있잖아요."
"그렇지만 오히려 큰 나라 병사들이 작은 나라 사람들 옷을 입고 작은 나라 사람들과 같이 살잖아요."
"큰 나라가 작은 나라의 음식이나 노래, 놀이 같은 것들을 배우니까."
"그래도 큰 나라 장군이 작은 나라를 정복해서 다스리게 된 거 아닌가."
"누가 이긴 건지 모르겠어요. 싸우지 않았잖아요."
“그런데 큰 나라의 장군은 대체 왜 전쟁을 하는 것일까?”
"이기면 기분이 좋으니까요."
"나라가 작은 것보다는 큰 것이 좋으니까요."
"나라를 크게 만들어서 발전시키려고요."
“그러면 나라도 쪼그맣고, 군대도 멋진 무기도 없는 작은 나라 사람들은 큰 나라 사람보다 행복하지 않을까?"
시끄럽던 아이들의 대답이 없다. 분명 작은 나라보다는 큰 나라가 좋을 것 같긴 한데, 우물쭈물 헷갈리는 눈치였다. 아마도 지금껏 승리와 발전, 강력한 힘 등이 좋은 것이라고 배워왔기 때문일 것이다.
“왜 제목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전쟁’ 일까?”
"전쟁을 했지만 싸우지 않았으니까요."
"아무도 다치거나 죽지 않았으니까요."
"싸울 필요가 없어지니까 큰 나라의 병사들도 작은 나라의 사람들도 즐겁고 행복하니까요."
“평화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니?”
"싸우지 않는 것이요. 함께 어울리는 것이요. 군대가 필요 없는 거요."
"전쟁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 평화 같아요."
이 부분에서는 대답이 잘 나오지 않았다. 너무 추상적인 질문이었나보다. 한참 적막이 흐르다가 몇 몇이 한 두 마디 던졌지만 그래도 역시 다들 멀뚱한 표정이었다.
마지막은 엽서 크기의 종이를 나눠주고 그림책에 나오는 장면 중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서 따라 그린 후, 평화에 대한 나름의 정의를 내려 가치사전을 만들어보는 활동으로 정리하였다. 아이들이 오히려 내가 미처 보지 못하고 지나간 그림 속 의미를 더 잘 찾아냈다.
* 함께 차를 마시며 즐겁게 대화를 나누는 것
* 같이 모여 앉아 음식을 만들고 밥을 먹는 것
* 서로의 일을 도와주는 것
* 군복을 벗고 평상복을 입는 것
* 반갑게 악수하고 집에 초대하는 것
* 딱딱한 표정이 아니라 입을 크게 벌려 웃는 것
나 역시 누군가 갑자기 전쟁과 평화에 대해 묻는다면 무엇이라 답해야할지 모르겠다. 평화를 지키기 위한 전쟁, 정의를 위해 싸우는 전쟁 등 복잡하게 그 관계가 얽히면 과연 어떠한 가치를 옳다해야 할지 혼란에 빠지기도 한다. 평화를 단순히 전쟁과 결부시켜 '전쟁이 없는 상태'로 한정할 수는 없다. 그리고 한 번의 수업으로 평화의 가치를 이해하고 느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렇지만 아홉살 아이들의 눈높이에서도 평화는 총과 폭력으로 제압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소소한 일상을 함께 살아가며 만드는 관용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