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 사투리로 들려주는 할아버지 옛이야기) 도롱이 도깨비와 박선비1
얘들아, 도롱이 도깨비라고 들어봤나?
차~암 희한한 일이제. 다른 나라들 요괴나 괴물들은 사람을 막 해친다던데 우리나라 도깨비는 겁만 주지 해치질 않아. 그러니 어떤 사람이 도깨비를 무서워 하겠노. 안 무서운 도깨비 이야기는 밸로 재미 없을 낀데, 고마 하까.
창원 사람들은 사화동 운암서원이라고 알낀데. 거기서 문화행사도 많이 하고 안 그래 쌌더나. 그 서원에서 모시는 옛날 선비가 한 분이 있었는데, 창원 사는 박씨들은 그 분을 잘 알데. 박신윤이라꼬, 조선 시대 후기 쯤 될라나, 그 선비는 벼슬도 안 하고 그냥저냥 살았나 보던데 와 그리 유명했노 쿠믄, 억수로 효자라서 그랬다 쿠는기라.
와?
재미 없나? 효자 이야기라 캐서?
그런데 말이다. 효자라고 다 유명해지는 거 아이다, 그거 알제? 다 사연이 있으니까 소문도 나고 후세 사람이 기리고 뭐 그라는 거 아이겄나.
그냥저냥 살던 사람이 대체 무슨 사연이 있어가 그리 유명해짔는지 궁금하제?
들어봐라.
그 박선비가 말이다, 느거 맨키로 쪼맨한 키에 억수로 어렸을 때 일이다. 옛날에는 느거만할 때는 한문으로 된 책을 읽고 그랬다. 못 믿겠제? 참말이다.
하늘 천 따 지 가마솥에 누룽지... 아이고 참 내가 머라캐쌌노. 하늘 천 따 지 검을 현 누를 황. 이래 소리 내서 읽는 거는 티비에서 본 적 있제? 니투브에서 봤다꼬? 머 어데서 봤거나.
이 박선비가 느거 맨키로 어렸을 때부터 천자문도 떼고 당시에 어린이들이 보는 한문책을 날마다 읽고 안 그랬더나. 대단하제?
그날도 다른 날 맹키로 한문책을 쫙 팰치놓고 흥얼흥얼 하믄서 읽기는 하는데, 그냥 글자들이 토성에 띠가 뱅뱅 돌듯이 돌기만 하고 머리 속으로 안 들어가는 기라.
그것도 그럴 만 하지.
무슨 일인고 하니, 명곡동에 사는 노온 선생 댁에서 잔치가 있어가 안 그랬나. 옛날에는 다들 못 살았거든. 게다가 이 박선비 어렸을 때도 엄청 가난했던 기라. 그래도 양반집이라꼬 늘 책을 가까이 하고 안 있었나. 책 이야기 하니까 또 좀이 쑤시기 시작하나?
쪼매만 참아봐라. 도깨비 이야기 인자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노온 선생 댁에서 잔치한다고 공부가 안 되는 거는 아인데, 진짜로 이유는, 노온 선생 댁에 친구들이 다 모이기 때문인 기라. 잔치집에서 맛 있는 것도 묵고 친구들도 만나서 놀고 그것 맹키로 좋은 기 어데 있겠노, 그 어린 나이에. 그자.
그래서 책을 탁 덮고 방을 나와 툇마루에 걸쳐 앉았다 아이가. 그런데 날씨가 습기차고 텁텁한 기라. 그때가 7월이니까 안 그렇겠노. 밖에 나갈 때 입는 옷을 채려 입고 나갈라 쿠는데 안방에서 어머이 목소리가 들리는 기라.
"신윤아, 니 어데 가노?"
어머이 목소리가 기력도 없는 데다 병마저 수년 째 치르는 터라 신윤이는 어머니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가슴이 에려와. 그럼에도 심지가 참 올곧은 아 아이겄나.
"어머이예, 명곡 노온 선생 댁에 오늘 낙성식이 있다 쿱니더. 축하해드리고 친구들도 만나고 오겠십니더."
싸리문을 닫고 집을 나서는데, 7월 땡볕이 어지간히 더워야지. 신윤의 집 앞쪽은 모래가 많은 평지지만 뒤쪽은 숲이 제법 울창한 등명산이라 집이 배산임수로 지어진 거야. 이런 걸 두고 사람들은 집터를 잘 잡았다고 그러지.
신윤은 집 뒤로 난 길을 따라 숲으로 들어갔어. 걸어가면서 신윤은 무슨 시를 지어서 노온 선생의 낙성식을 출하할까 궁리를 하였지.
한참 이 궁리 저 궁리에 빠져 걸어가고 있는데, 산 속에서 갑자기 이상한 웃음소리가 들리는 거야.
"누군교?"
신윤은 주위를 둘러봤어. 그런데 벌레소리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고요해. '허, 이상하다' 분명히 소리가 들렸는데, 신윤은 한참 두리번거리다가 다시 고개로 걸음을 재촉했지.
얼마나 갔을까. 또 그 이상한 웃음소리가 들리는 거야. 기분 나쁜 웃음 소리라서 신윤은 신경이 곤두섰어. 다시 주변을 살펴봤는데, 역시나 인적이라곤 하나도 없고 새소리 벌레소리마저 없이 적막한 거야. 그러니 더욱 오싹해지는 거 있지.
아무리 어른스러운 신윤이지만 인간의 세계에서 이해할 수 없는 기이한 현상을 맞딱뜨리고 보니 정말로 귀신이 있는 것인가 싶기도 해.
"이 대낮에 귀신은 무슨."
신윤은 그렇게 일부러 큰소리치며 산을 올라갔어. 그런데 아무래도 느낌이 쌔한 거야. 애써 신경을 쓰지 않으려고 빠른 발걸음으로 걷는데 여전히 등뒤에 뭔가가 찰싹 달라붙어 따라오는 느낌 있지?
고갯마루에 올라섰을 때 바로 등 뒤에서 기척이 느껴지더니,
"봐라, 김서방! 니 내하고 씨름 한판 어떻노?"
그 소리에 뒤돌아 보니 비도 오지 않는데 도롱이를 걸친 낮도깨비가 요상하게 생긴 방망이를 어깨에 턱 걸치고 서 있는 거야.
"킬킬킬킬~. 와, 놀랬나?"(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