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늘보

과거에 살았던 나무늘보의 거대한 친척

제가 어릴 적에 빙하기 동물이 나오는 애니메이션이 있습니다. 바로 아이스 에이지라는 애니메이션입니다. 2003년에 1편이 나온 후로 2016년에 5편까지 나왔었지요. 그리고 2027년에 신작이 또 나올 예정이라고 합니다. 그외에 디즈니 플러스에서 공개된 여러 단편 영화도 있지요.

여기에선 다양한 빙하기 시절 동물들이 나옵니다. 주인공에는 아마 독자분들에게 친숙할 매머드, 그리고 검치호가 있지요. 그런데 검치호와 매머드 외에도 또 하나의 동물이 있습니다. 두 발로 걸어 다니는 노란색의 동물이죠. 작중에서 시드(sid)라는 이름으로 여러 활약(?)을 하는 이 동물은 모티브가 땅늘보라는 동물입니다. 이 동물은 아마 많은 분께 생소한 동물일 겁니다. '나무늘보는 아는데 땅늘보는 뭐야?' 하실 듯하네요. 이번 글에서는 나무늘보의 옛 친척인 땅늘보에 대해서 써보겠습니다.

1.jpeg 화 아이스 에이지의 포스터. 왼쪽 아래에 있는 두 발로 서있는 동물이 시드이다. 출처-위키피디아


1. 여러 종류의 땅에서 사는 늘보

사실 땅늘보라는 하나의 분류군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무슨 뜻이냐면 땅늘보라고 불리는 동물들은 여러 종류가 각기 다른 분류군으로 분류되어 있기 때문이죠. 나무늘보와 땅늘보는 모두 나무늘보아목(Folivora)이라는 분류군에 속합니다. 이 분류군은 화석에서 보이는 형태적 특징, 그리고 가죽으로 찾아낸 유전자를 통해서 이루어진 유전학적 분석 결과 현재까지 밀로돈상과(Mylodontoidea)와 메가테리움상과(Megatherioidea)라는 분류군과 그 둘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메갈로크누스상과(Megalocnoidea)로 나누어집니다. 재미있게도 오늘날 살아있는 나무늘보인 두 발가락 나무늘보와 세 발가락 나무늘보는 각각 밀로돈상과와 메가테리움상과에 따로 속합니다. 즉, 두 발가락 나무늘보는 밀로돈상과, 세 발가락 나무늘보는 메가테리움상과에 속합니다. 언뜻 봐서는 그냥 그런가 보다 하겠지만 이 두 나무늘보의 관계는 사람과 침팬지, 혹은 고릴라, 오랑우탄보다 거리가 더 먼 사이인 셈입니다. 사람과 침팬지, 고릴라, 오랑우탄은 최소한 모두 다 같은 사람과(hominidae)에 속하니까요.


2.jpeg 세 발가락 나무늘보(좌)와 두 발가락 나무늘보(우). 출처-위키피디아
3.jpeg 베를린 자연사 박물관에 전시된 땅늘보 밀로돈의 피부. 출처- 위키피디아


자 이제 살아있는 나무늘보 이야기는 이쯤 해두고, 다시 땅늘보 이야기로 돌아오죠. 위에서 이야기했듯 나무늘보아과는 크게 셋으로 나누어집니다. 메갈로크누스상과(Megalocnoidea)와 밀로돈상과(Mylodontoidea), 메가테리움상과(Megatherioidea)로 나누어집니다. 메갈로크누스상과에는 메갈로크누스과 한 분류군만 존재합니다. 메가테리움상과는 메갈로닉스과(Megalonychidae), 메가테리움과(Megatheriidae), 노토로테리옵스과(Nothrotheriidae)로 나누어집니다. 밀로돈상과는 밀로돈과(Mylodontidae)와 스켈리도테리움과(Scelidotheriidae)로 나누어지지요 (분류군이 복잡하죠? 간단히 말해서 땅늘보는 크게 3종류가 있고, 거기서 좀 더 세분화하면 6개의 분류군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 오늘날 나무늘보까지 포함하면 8개의 분류군이 존재하는 셈이죠.).

이렇게 다양한 땅늘보들은 종류에 따라서 크기 차이가 다양하였습니다. 예를 들어서 메가테리움 같은 경우는 두 발로 섰을 최대 6m라는 큰 키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반면에 하팔로푸스라는 땅늘보는 몸길이가 1m 정도 되는, 사람보다 더 작은 키를 가지고 있었죠. 2025년 5월에 이들이 대체 왜 이렇게 거대했는가에 대한 연구가 발표되었습니다.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 대학교 소속의 알베르토 보스카이니(Alberto Boscaini)교수와 공동 연구진은 땅늘보의 진화에 대한 연구를 발표하였습니다. 여러 화석과 서식지, 주로 먹는 먹이, 움직이는 방식등 여러가지 요소를 분석한 모델링을 제작한 결과, 땅늘보들은 주로 서식지와 기후에 따라서 몸집이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기후가 따뜻하던 4천만 년에서 3천 5백만 년 전에는 숲이 많았기에 이들의 몸집도 같이 작았으나 지구의 기온이 하락하고 기후가 추워지면서 몸집이 커지는 경향이 관찰된 것이죠. 따뜻한 기후에서는 동물이 체온 조절을 위해서 몸집이 작아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몸집이 너무 크면 몸에서 열을 방출하기 어려우니까요 (큰 주전자와 작은 컵에 뜨거운 물을 담아놓고 어느 쪽이 더 빨리 식는지를 생각해 보면 이해가 될겁니다.) 그러다가 지구가 추워지면서 체온유지를 위해서 땅늘보들은 몸집이 커지는 방향으로 진화를 한 것입니다. 거기에다가 기후가 추워지면 숲보다는 초원처럼 개방된 환경이 주로 조성됩니다. 숲이 많을 때는 포식자로부터 몸을 숨기거나 피하기 유리한 나무가 많이 있으나 초원은 그렇지 않지요. 그래서 몸집이 큰 동물일수록 초원에서 살기에는 더 유리합니다. 즉, 추운 기온과 초원라는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땅늘보들은 몸집이 커진 것입니다.


4.jpeg 아메리카 대륙에서 살았던 메가테리움의 모습. 출처- 위키피디아
5.jpeg 여러 땅늘보와 사람의 크기 비교. 출처- 위키피디아


2. 땅늘보의 기원과 멸종

그러면 이 땅늘보들은 언제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까요? 화석기록을 보면 가장 오래된 땅늘보의 화석은 4천만 년 전 즈음에 살았던 어느 땅늘보의 이빨 화석이었습니다. 이 이빨은 무려 남극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즉, 땅늘보는 무려 남극에서도 살았다는 것입니다. 물론 당시 남극은 오늘날만큼 춥지는 않았습니다. 당시 남극에는 여러 종류의 새, 포유류, 심지어 거북과 악어가 살았던 흔적이 있었습니다. 즉, 이 시대의 남극은 오늘날보다 훨씬 더 따뜻하였던 것이죠. 이 이빨은 여러 땅늘보 중에서 메가테리움상과에 속하는 땅늘보의 이빨이었습니다.


6.png 남극에서 발견된 땅늘보의 이빨. 출처-Vizcaíano & Scillato (1995)


4천만 년 이후에 살았던 땅늘보의 화석은 남미와 북미대륙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페루, 볼리비아 등지에서 발견되었지요. 즉, 땅늘보는 조상 대대로 남미에서 살아온 셈입니다. 남미와 북미대륙이 9백만 년 전에 본격적으로 연결이 되자, 땅늘보 역시 북미로 갈 기회를 얻었습니다. 메갈로닉스(Megalonyx)라고 하는 이 땅늘보는 북미대륙에 진출한 후 상당히 최근 시기인 10만 년 전 즈음까지 살았습니다. 심지어는 대략 1만 년 전까지 땅늘보가 살았습니다. 이 시기엔 신생대 말 대부분의 대형 포유류, 가령 매머드나 털코뿔소 같은 동물이 멸종을 맞이하던 시기였습니다. 특히 빙하기가 시작되면서 다른 포유류들과 함께 땅늘보 역시 거대해졌지요.


7.png 뉴욕 자연사 박물관에서 전시 중인 메갈로닉스의 화석. 출처- 위키피디아
8.jpeg 런던 자연사 박물관의 땅늘보 메가테리움. 대략 1만 년에서 그 이후까지 살아남은 최후의 땅늘보 중 하나이다. 출처- 위키피디


그러면 오늘날 살아있는 나무늘보는 언제 출현하였을까요? 사실 오늘날 살아있는 나무늘보는 화석기록이 매우 부족한 상황입니다. 브라질과 페루에서 대략 1만 년 전에 살았던 일부 세 발가락 나무늘보의 화석만 발견되었을 뿐이죠. 하지만 2019년에 발표된 나무늘보와 땅늘보의 분자 배열 연구 결과, 오늘날 나무늘보는 대략 5백만 년 전 즈음에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3. 물과 땅속에서 사는 늘보

지금까지 땅에서 사는 땅늘보를 간략하게 살펴봤습니다. 4천만 년 전부터 살았던 땅늘보. 이들은 땅뿐 아니라 물속에서 적응하기도 하였다는 화석기록이 있습니다. 1995년에 페루의 피스코층(Pisco Formation)이라는 5백만 년 전 지층에서 탈라소크누스(Thalassocnus)라는 땅늘보의 화석이 발견되었습니다. 언뜻 보기엔 그냥 죽어서 바다로 떠내려온 게 아닌가 할 수도 있을법합니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니 이들은 다른 친척들과는 달랐습니다. 이 동물들의 꼬리뼈를 이루는 척추뼈에 붙어있는 횡돌기(척추뼈의 측면에 난 돌기.)라고 하는 돌기가 후면으로 휘어있는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뒤로 갈수록 한 쌍에서 두 쌍으로 숫자가 늘어났지요. 이런 구조는 다른 땅늘보에서는 보이는 구조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비버나 수달에서 보이는 구조이죠. 이 동물들은 물에서 헤엄칠 때 꼬리를 위-아래로 휘젓는데, 횡돌기가 두 쌍으로 늘어나면 꼬리가 강한 힘을 낼 수 있도록 도움이 되는 역할을 하지요. 게다가 바다로 떠내려왔다고 하기엔 개체 수가 많이 발견되었다는 점, 당시 화석이 발견된 피스코층의 해안가가 사막이었다는 점 등을 근거로 이 동물은 물에서 살았던 늘보로 보고 있습니다.


9.jpeg 파리자연사박물관의 탈라소크누스. 출처- 위키피디아


10.png 탈라소크누스의 꼬리뼈. 화살표로 가르친 부분이 횡돌기이다. 출처-De Muizon & McDonald (1995)


상당히 최근 시기에 살았던 땅늘보중에는 무려 절벽을 오르내리며 살던 땅늘보도 존재하였습니다. 디아블로테리움 (Diablotherium)이라는 이름의 이 땅늘보는 페루에서 살았던 땅늘보였습니다. 페루의 절벽지대에서 살았던 이 땅늘보는 팔이 다른 땅늘보보다 가늘며 동시에 팔꿈치가 매우 발달하여서 억센 힘을 낼 수 있었고, 팔을 105도 정도의 각도로 휘두를 수 있었죠. 이런 특징은 오늘날 나무늘보에서도 비슷하게 보이는 특징입니다. 즉, 디아블로테리움은 나무늘보처럼 붙잡고 올라갈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채로 절벽에서 절벽을 오르내리며 살았던 것이죠. 오늘날 산양처럼 말이에요!


11.png 디아블로테리움의 모습. 출처-https://www.youtube.com/watch?v=pt9tBtQoAHo&t=347s


땅늘보의 멸종

이렇게 다양하게 번성하였던 나무늘보의 옛 친척 땅늘보. 상당히 최근까지 살았던 땅늘보는 왜 멸종하였을까요? 아직 정확한 이유는 알기 어렵습니다. 다만 인간의 사냥이 멸종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견해가 있습니다. 2019년에 땅늘보의 뼈에서 인간의 흔적이 발견된 화석이 학계에 보고된 사례가 있습니다. 아르헨티나의 캄포 라보르데(Campo Laborde)라는 1만 년 정도 된 화석지에서 메가테리움이라는 땅늘보가 인간의 석기로 도축된 흔적이 발견된 것이죠. 즉, 고대 인류 땅늘보를 사냥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앞서 소개한 땅늘보의 진화와 몸집의 크기에 대해서 다룬 부에노스 아이레스 대학의 연구에서도 이와 비슷한 결론이 나왔습니다. 땅늘보는 2만 년 전에서 1만 5천 년 전에 급격히 사라지게 되었는데, 이는 인류가 처음 북미 대륙에 도착한 시기와 비슷하다고 합니다. 따라서 몸집이 큰 땅늘보는 인류의 주요 사냥감 중 하나가 되어서 멸종하였을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12.png 땅늘보 메가테리움의 뼈에서 나온 인간의 도축 흔적. 출처- Politis et al (2019).


어떤 이유로 인해서 멸종하였든간에 땅늘보는 현재 멸종하였습니다. 언뜻 보기에 몸집도 작고 나무에만 매달려 살면서 매우 느릿느릿하게 움직이는 나무늘보는 땅늘보에 비해 매우 연약해 보입니다. 하지만 땅에서 살던 몸집이 큰 땅늘보는 멸종한 반면 나무늘보는 살아남았죠. 이는 곧 다윈이 주장하였던 자연선택에 부합되는 사례라 볼 수 있습니다. 다윈은 자연 선택을 이렇게 정의 하였습니다 "가장 힘이 쌔거나 가장 똑똑한 종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변화에 가장 잘 적응하는 종이 살아남는다.". 땅늘보와 나무늘보는 이 말에 적합한 사례라 볼 수 있습니다.


연구 및 자료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Sloth


https://en.wikipedia.org/wiki/Diabolotherium


https://youtu.be/pt9tBtQoAHo

(PBS Eons: How Sloths Went From the Seas to the Trees)


Boscaini, A., Casali, D. M., Toledo, N., Cantalapiedra, J. L., Bargo, M. S., De Iuliis, G., ... & Soto, I. M. (2025). The emergence and demise of giant sloths. Science, 388(6749), 864-868.


De Muizon, C., & McDonald, H. G. (1995). An aquatic sloth from the Pliocene of Peru. Nature, 375(6528), 224-227.


E. G. Leigh and S.J. Wright. 1990. Barro Colorado Island and Tropical Biology. Gentry, A.H., ed., Four Neotropical Rainforests, Yale University Press, New Haven 28-47


J. Terborgh. 1990. An Overview of Research at Cocha Cashu Biological Station. Gentry, A.H., Four Neotropical Rainforests, Yale University Press, New Haven 48-59


Politis, G. G., Messineo, P. G., Stafford, T. W., & Lindsey, E. L. (2019). Campo Laborde: a Late Pleistocene giant ground sloth kill and butchering site in the Pampas. Science advances, 5(3), eaau4546.


Pujos, F., De Iuliis, G., Argot, C., & Werdelin, L. (2007). A peculiar climbing Megalonychidae from the Pleistocene of Peru and its implication for sloth history. Zoological Journal of the Linnean Society, 149(2), 179-235.


T. S. Lovejoy and R.O. Bierregaard, Jr. 1990. Central Amazonian Forests and the Minimum Crtical Size of Ecosystems Project. Gentry, A.H., ed. 60-71


Vizcaíano, S. F., & Scillato-Yané, G. J. (1995). An Eocene tardigrade (Mammalia, Xenarthra) from Seymour Island, West Antarctica. Antarctic Science, 7(4), 407-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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