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에 한 번씩 하는 파마를 하던 날.
주식공부에 열을 내며 일하는 중에도 귀에 이어폰을 꽂고 강의를 듣는 열성 미용실 원장이 내게도 열심히 주식의 이점에 대해 설명하지만 관심이 없었다.
세상 이렇게 가늘고 기운 없을까 싶은 머리카락을 말고 커피 한잔을 하며, 끝없이 늘어놓는 원장의 얘기를 귓등으로 듣다가 미용실원장이 혹시 고양이 키울 생각 없냐며 폰을 들이밀었다.
세상 귀여운 얼굴을 한 흰색털옷을 입고 있는 주먹만 한 고양이를 소개해주었다.
마침 우리 집도 고양이든 강아지든 뭐든 길러 보자며 '소원이에요'를 남발하던, 시기적절했던 터에 고양이는 강아지보다 손이 덜 갈 것 같아 솔깃해졌었다.
앙증맞기도 하고 한 번쯤 키워보고 싶기도 하고.
단골 손님네 중학생 딸이 키우는 고양이를 아빠가 너무 싫어해서 불가피하게 파양을 결정했다고 한다.
용기를 내어 키워본다고 했다.
아이들에게 문자를 보내 '얘들아, 고양이 키울래?' 했더니 다들 난리가 났다.
고양이 집사인 여중생이 엄마와 함께 캐리어를 들고 왔다.
여중생이 울어서 눈주위가 발갛다.
두 사람을 보니 감사인사를 하기도 애매한 분위기인데 미용실원장이 고양이가 새 주인 잘 만난 거라고, 이 손님네 애들도 엄청 착하고 동물 좋아하는데 못 키우고 있었다고 너스레를 늘어놓았다.
미안한 맘과 기대하는 맘이 교차하는 가운데 미용실 원장이 캐리어지퍼를 열었다.
이런 반전.
캐리어에서 나온 고양이는 미용실원장이 호객행위했던 휴대폰 속의 주먹만 한 몸집이 아니고 다 자란 성체처럼 보였다. 심지어 무겁게도 보였다.
'헉' 탄식이 나오는데 티를 낼 수 없었다. 두 사람이 정말 아픈 이별을 하는 중이라 도로 데려가라고 하고 싶은데, 난 또 나대로 이미 아이들에게 문자를 보내둔 터라 애들이 얼마나 실망할까 싶어 말도 못 하고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집사인 두 사람이나 '새 가족인 나'나 피차 말도 못 하고 미용실 원장만 양쪽이 할 인사를 혼자 해치우고, 얼떨결에 고양이 '메기'를 데려왔는데 메기가 1년여를 우리 집에서 동거하는 동안 소파를 다 긁어두고 계속되는 이불빨래에 청소에 끝도 없는데 더 중요한 건 메기를 데려온 후로 나의 눈물과 콧물은 멈추지 않았고 3일에 한 번씩 병원을 다니며 약을 먹어야 했다.
[메기를 보내고 몇 년 후 받은 알레르기 검사에서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느 날은 너무 지쳐 혼잣말로 '메기가 자기 발로 집을 나갔으면 좋겠다'라고 말해서 아이들의 원성을 듣기도 했다.
그런데 진짜로 청소하느라 아파트 현관문을 조금 열어둔 틈으로 메기가 걸어 나가는 일이 발생했다.
애들 말로는 그 순간 내가 맨발로 '메기야' 부르며 집을 뛰쳐나갔다고 한다.
위층 계단에서 메기를 안고 내려온 다음부터는 환기를 해도 현관문은 열지 않았다.
어느 날 초등학생 딸이 방학을 하며 학교소식지를 들고 왔는데 딸의 글이 실려있었다.
제목은 가을이. 가을에 와서 가을이가 된 고양이를 엄마가 약을 먹어가며 키우는 중인데 제 발로 나갔으면 좋겠다더니 현실이 되자 맨발로 뛰쳐나가더라는, 말과 행동이 다른 엄마의 모습을 그리며 쓴 글이었다.
읽다 보니 감동.
아이들도 메기를 좋아하는데 메기는 슬쩍 곁을 내줬다가 어느샌가 가버리고.....
가을에 데려와서 '가을'이라 불러보다가 '메기'가 혼란스러울까 봐 본래의 이름인 메기로 불러주었는데 메기는 좀처럼 활짝 곁을 내어주진 않았다.
1년여 동안 약복용으로 얼굴은 부어있고 속은 쓰라려갔기에 슬픈 이별을 결심해야 했다.
40여분 거리 아버님 주택으로 보금자리를 옮겼는데 다행히도 시아버님은 메기를 위해 집을 마련하고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주시며 10여 년간 사랑을 듬뿍 주고 계신다.
메기는 자신의 생애동안 행복한 삶을 영위하고 있으니 걱정 말라고, 미용실원장을 통해서 여중생에게 전해달라고 오래전 얘기했었는데 잘 전달되었을 것이다.
울어서 바알 간 얼굴로 마주했던 그 여중생에게도 그나마 위로가 되었길 바라본다.
메기는 온실 속 화초처럼 집안에서 귀하게 자라다가, 아버님집 야생의 환경에서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세상구경을 하고 3일 만에 돌아온 모습이 아버님말로는 어지간히 시달리고 구르다 온 패잔병 같은 모습이었다고 한다.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돌아온 후 이틀 동안 먹지도 않고 잠만 내리 자더라고 하셨다.
자유로운 영혼인 메기는 그 이후 긴 외출은 삼가고 짧디 짧게 외출하며 곧장 집으로 온다고 했다.
시어머니 말씀으로는 메기가 요물이라고 한다.
꼭 본인의 외출과 귀가를 알려준다고 한다.
마실 갈 때면 현관문밖에서 자기 나간다고 야옹, 돌아오면 왔다고 야옹. 아버님이 하는 말에 대답도 찰떡같이 잘하며, 새벽에 앞마당에서 두런두런 목소리가 들려와 내다보면 아버님이 새벽잠이 깨어 메기와 이야기를 나누고 계시더라고.
시아버지의 좋은 말동무가 되어 세상을 엮어나가는 하루하루가 참 훈훈해 보였다.
매사 무덤덤하고 시크하신 시어머니는 메기가 본인을 안 좋아하는 것 같다고 하신다.
아버님한테만 애교를 부린다고.
동네 길 고양이들이 메기 밥을 먹어도 메기는 지켜만 본다고 한다.
덕분에 아버님은 동네 고양이들도 거두고 있다.
메기가 마음이 넉넉하다고, 얼마나 똑똑한지 아냐고 그렇게 자랑을 하신다.
"메기 어디 갔어요?" 하면 " 아까 나갔는데 올 때 됐다"하신다.
우리 가족이 아버님집을 방문할 때 '메기야'하고 가만히 부르면 '야옹'하고 눈을 맞춘다.
그럼 어머니가 '봐라 너희들을 알아본다'하시며 요물이라 하신다.
어머니에게 '요물'은 신통방통하고 야무지게 똑똑하단 뜻이다.
키우지 못해 짠한 마음이 있었어도 메기가 자연스러운 환경에서 세상 편하게 지내고 있는 걸 보면 흐뭇하다.
식구로 받아줄 아버님이 계시지 않았다면 메기는 어찌 되었을까? 생각도 하기 싫다.
이제는 동물은 바라보는 게 좋다. 키움에는 헌신, 애정, 책임, 자신의 건강상태도 따르니까.
메기도 나이가 들었다. 좀 온화해진 듯도 하고.
메기가 더운 여름 자기 집에 없을 때는 아버님 주택 이층에서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돌아다니기는 힘들고 단독주택 이층의 시원한 그늘에서 동네구경을 하면서.
아버님의 사랑을 담뿍 받고 생을 마치는 날까지 부디 평안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