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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느날 갑자기

가벼운 통증? 엑스레이 꼭 찍어보세요

by 디오니




그림에 몰두해 종일그림을 그리는 작은딸이 중학교 2학년 가을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오더니 '엄마 오른손 가운뎃손가락이 연필을 잡으면 너무 아파'했다.

첫째 마디는 펜을 잡는 곳이니 굳은살도 생기도 아프기도 할 거라고, 그렇게 몇 시간씩 그림을 그려대니 아프지 않은 것도 이상하지 하는 마음이었으나 가까운 정형외과를 방문했던 날.

대기시간이 짧은 동네 A정형외과에서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어야 했다.


엑스레이결과가 나와서 의사 옆에 딸과 같이 앉았는데 의사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여기 손가락 둘째 마디 까만 거 보이시죠?"

확연하게 보였다. 중지 둘째 마디 전체가 까맣게 보였다.

얼른 딸의 얼굴을 보니 놀란듯했고 나도 가슴이 철렁했다.

"여기 이 까만 게 전부 혹입니다. 뼈가 있어야 할 곳에 전부 혹이 차지하고 뼈는 손가락 테두리 쪽으로만 너무 얇게 이어져 있는데, 다행히 양성이고 혹은 제거수술을 받아야 하는데 보통 골반뼈를 떼어다 손가락 혹을 제거한자리에 이식합니다."


미리 보았으면 보호자만 들어오라 하던가, 아이도 같이 있는 자리에서 이식수술, 양성, 혹 같은 이야기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늘어놓다니, 화가 치밀었다.

나의 질문에 의사의 말이 이어졌다.

어느 날 손이 아프다, 발이 아프다 손목이 아프다 해서 찍어보면 이런 경우 많고 흔한 겁니다.


의사 입장에선 흔한 질병이지만, 환자입장에선 이름도 처음 듣는 희한한 질병 아닌가.

일단, 약처방만 받아 돌아오면서 딸을 안심시키는데 진정이 되지 않았다.

딸은 큰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한데 그냥 울면 될 것을 고개를 치켜들고 눈물을 삼키고 있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딸은 '도대체 나는 왜 이런 병도 생긴 거야'하면서 울먹거렸다.

어찌 되었거나 지금에라도 발견하게 되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손가락 수지접합을 잘하는 B정형외과에 가보자.

소문난 정형외과인 만큼 한참을 기다려 진료를 보았다.

역시나 같은 말이지만 훨씬 보호자 입장에서 안심시키면서 친절하고 구체적인 설명을 이어갔다.

수술은 언젠가는 꼭 해야 하고 지금 할 거 아니면 3개월에 한 번씩 혹이 자라는지 검사받아볼 것과 손가락이 툭 부딪히기라도 해서 골절이 생기면 그땐 더 큰 수술이 되니까 골절을 조심해야 한다고, 현재 뼈가 너무 없다고.

수술은 여기 병원에서도 하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도대체 언제부터 하필이면 딸의 오른손 중지에 혹이 자라고 있었을까?

내연골증은 평소 아무 증상도 없다가 어느 날 갑자기 통증을 느끼고 병원을 찾아 엑스레이를 찍어보고 나서야 알게 되니 언제부터 혹이 뼈의 자리를 차지하고 살고 있었는지는 모른다.

딸이 아직 중학교2학년이니 조금이라도 더 성장한 후에 하면 좋을 듯 싶어 우리는 최대한 조심하기로 하고 수술을 미뤘다.


우리는 인터넷을 검색하여 자세한 수술후기를 올려준 분들의 경험담을 익히며 향후 우리의 일정을 그려보기도 했다.

대부분 '어느 날 갑자기 아파서 갔더니', '충격', '골반뼈 떼어낸 부분이 손가락 수술보다 더 아프다'등의 경험담을 익히며 차분해져 갔다.

3개월에 한 번씩 검사를 받아봤고 다행히 중지 가운데 마디를 채우고 있던 혹은 더 커지지 않았으며 통증을 느끼지도 않았다.


그렇게 1년여가 지나가던 중학교 3학년 늦가을 어느 날, 손가락이 아프다고 했다.

저녁 늦은 시간이라 약처방을 받으려고 다른 C정형외과에 방문했더니 의사 선생님이 너무 좋으셨다.

미루지 말고 수술을 하는 게 더 좋을 거라고 해서 B병원에서 수술을 하려 한다 했더니 대학병원 가서 하라고, 의뢰서 써 주신다고 하시니 또 더 심란해졌었다.

B병원은 집에서 가까우니 출퇴근하면서 병간호하기도 좋은데 타 지역 대학병원으로 가려면 직장에 휴가신청을 해야 했다.


대학병원 의사 선생님은 더 친절했다.

딸은 이제 차분하고 의젓하게 자신의 수술과정을 귀 기울여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용기를 냈다.

골반뼈의 두께를 보고 양쪽 중 더 튼실한 쪽에서 뼈를 떼면서 갈아서 손가락에서 혹을 긁어낸 곳에 갈려진 가루형태의 뼈를 채워 넣는 수술을 할 거고 흔한 수술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겨울방학을 맞아 새해 1월 초로 수술일정을 잡고 직장에 4일 휴가를 냈다.

방학에는 학생들 수술이 많다고 했다.

딸을 수술실에 들여보내고 보호자 대기실에서 전방의 수술현황 모니터에 '수술대기중문구'를 보는데 눈물이 고여왔다.

울고 싶지 않고 정말 흔한 거야, 위중한 수술환자도 얼마나 많은데 스스로 위로하는데도 그냥 주르륵 눈물이 흘러 당황스러웠다.


대기하는데 딸의 이름을 부르며 보호자를 찾아 가슴이 덜컹하는데 수술실 문이 열리며 나온 의사 선생님이 '담당교수님이 어머님께 수술과정을 잘 설명드리라고 해서 불렀다며 걱정하지 마세요' 하면서 사라졌다.


이미 전날도, 당일아침도 충분히 설명을 들었는데 재차 또 설명한다.

대학병원이라서 그런가 싶었다.

대기실 창가 쪽 의자에 앉아 전방의 수술대기 중 모니터를 보고 있는데 또 눈물이 그렁했다.

슬프지도 않은데 왜 주책맞게 자꾸 눈물이 흐르지.


누가 나를 불렀다.

담당여자교수님이 수술실로 가시려다 나를 알아보시고 '지금 수술준비됐다 연락받아서 내려왔는데 어머니 흔한 질병이고 일주일에 네다섯 번이나 하는 수술입니다 잘할게요' 하면서 들어가신다.

뭐지..... 너무 친절하시고 신경 써주심에 감사했다.

흔한 거라면서도 굳이 불러서 위로하시니 덤덤하고 시크하려 했는데 마음이 흔들려 저절로 눈물이 났다.


수술은 잘 되었다.

인터넷 후기만큼이나 이 흉터가 사라지긴 할까 싶게 디귿자로 꿰매 놓은 무서운 손가락보다 골반이 아파서 일어나 앉지도 못하고 화장실 한번 가려면 골반통 때문에 우리 둘 다 진땀을 흘려야 했다.

아이가 작아 보여도 휠체어에 앉히려면 그렇게 무거울 수가 없었다.

진통제 때문이랬는데 토하고 두통과 어지럼증을 호소하는 딸을 지켜보며 나도 말라가는 거 같았다.

퇴원하고 집으로 오는 차의 흔들림에도 골반의 통증을 호소하고 집에 와서도 혼자 일어나 앉지를 못해 고통스럽고 머리 감기는 것도 여간 힘든 게 아니며 어지럼증과 울렁거림 때문에 힘든 시기를 보내면서 3일에 한번 2주 동안 C정형외과에서 정기적 소독을 했다.

원장님이 예쁘게 잘 꿰매어놨네 하셨다.


퇴원 2주 후에 대학병원에서 실밥을 뽑고 3개월 후인 4월에 이식된 뼈가 자리를 잘 잡고 있는지 경과를 보러 다녀왔고 7월에 정기검진시도 경과좋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고2가 된 1월의 정기검진시 결과 좋으니 일상생활지장 없고 보통은 진료종료를 이때쯤 하지만 아직 성장하는 청소년이니 내년 1월에 최종진료를 한번 받고 종료하자고 하셨다.

교수님이 너무 자상하셨다.


누더기 같던 손가락 흉터는 어느새 희미한 자국만 남아있을 뿐이고 골반흉터는 그래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작은 딸 영이가 '엄마 비 오려나 봐 골반이 쑤셔' 가끔 농담을 한다.

정말 쑤시는지 알 수는 없다.

손가락은 마무리되었는데 이젠 또 다른 고민이다.


태어날 때부터 있던 목의 반을 차지하며 쇄골 부분부터 턱밑까지 목의 피부를 전체적으로 덮고 있는 점.

영이가 성장할수록 피부도 늘어나고 목을 덮고 있는 얼룩덜룩한, 눈에 확 띄는 그 점이 문제다.

어릴 적 '나는 왜 이래'라는 영이의 말. 초등학교 1학년 입학 2달만의 교통사고.

거기에 보탠 내연골증.

난 뭔가 딸에게 빚을 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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