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1시 47분.
당신은 침대에 누워 인스타그램을 스크롤하고 있다. 아까부터 세 번째다. 끄려고 했다. 분명히 끄려고 했다. 그런데 또 켰다.
동기가 올린 사진이 눈에 박혔다. 하와이. 비즈니스석. 옆에 앉은 여자친구. 해시태그에 "연차 소진"이라고 적혀 있다. 좋아요 347개.
당신은 그 사진을 3초 동안 바라봤다. 고작 3초. 하지만 그 3초가 당신의 밤을 통째로 삼켰다.
왜 저 자식은 비즈니스석이고, 나는 이 침대인가. 왜 저 자식에겐 여자친구가 있고, 나는 혼자인가. 왜 저 자식은 하와이고, 나는 다음 달 카드값을 걱정하고 있는가.
당신은 이것을 '질투'라고 생각한다.
틀렸다.
당신은 아마 이 감정의 원인을 알고 있다고 믿을 것이다. 자존감이 낮아서. 비교 습관이 있어서. 원래 예민한 성격이라서.
세상은 당신에게 이렇게 말해왔다. "비교하지 마." "네 속도로 가." "남은 남이고, 나는 나야."
당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니까. 그리고 다시 인스타그램을 켰다.
왜?
"비교하지 마"라는 말이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말은 당신의 문제를 진단하지 못한다. 증상만 가리킨다. "열이 나면 이불을 덮어라"와 같은 수준의 조언이다. 바이러스가 몸속에서 증식하고 있는데, 이불 따위가 무슨 소용인가.
당신의 문제는 비교 습관이 아니다. 자존감 부족이 아니다. 성격 탓은 더더욱 아니다.
당신의 문제는 이것이다.
당신의 욕망은 당신의 것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욕망이 '나'로부터 나왔다고 믿는다. 내가 승진을 원하는 건 내가 성장하고 싶어서. 내가 오마카세를 가고 싶은 건 내가 맛있는 음식을 좋아해서. 내가 테슬라 주식을 산 건 내가 미래를 보는 눈이 있어서.
전부 착각이다.
당신이 승진을 원한 건, 동기가 먼저 승진했기 때문이다. 당신이 오마카세를 예약한 건, 인스타그램에서 누군가의 사진을 봤기 때문이다. 당신이 테슬라를 산 건, 유튜브에서 누군가가 수익 인증을 했기 때문이다.
당신은 '원한' 게 아니다. '감염된' 것이다.
프랑스의 사상가 르네 지라르는 이 현상을 정확히 꿰뚫었다. 인간의 욕망은 자기 안에서 태어나지 않는다. 타인으로부터 복사된다. 당신과 대상 사이에는 반드시 '모델'이 있다. 당신이 원하는 것을 먼저 원한 누군가. 당신은 그 사람의 욕망을 복사하고, 그것을 자신의 욕망이라고 착각한다.
지라르는 이것을 '모방 욕망'이라고 불렀다.
나는 이것을 '욕망 바이러스'라고 부른다.
나도 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있었다. 오랫동안. 그리고 나는 감염되어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오히려 나는 자유로운 줄 알았다.
학교 다닐 때도 공부만 하지 않았다. 몰래 나가서 술도 마시고, 연애도 했다. 대학 갈 때 성적 맞춰서 쓰지 않았다. 철학, 문학을 공부하고 싶었다. 국문과에 갔다. 대학에서는 방황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시간을 보냈다. 영화 잡지를 만들어보기도 했고, 테니스에 미쳐서 살기도 했고, 작곡을 해보겠다고 온갖 장비를 사들인 뒤 접기도 했다. 외무고시를 준비하다 우울증이 너무 심해서 그만뒀다.
남들과 다른 길을 걸었다고 생각했다. 내 선택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에디터 쪽으로 취업을 알아보던 어느 날, 연봉을 확인하고 멈췄다. 너무 적었다. 그 순간, 나는 창업을 결심했다. 포르쉐가 타고 싶었다. 돈을 벌어야 했다. 스타트업. 투자 유치. 매출 성장. 꿈은 커야 한다. 돈이 전부다.
재밌는 건, 이 욕망에는 감염원을 특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유튜브도, SNS도, 선배도, 동기도. 전부였다. 공기처럼 퍼져 있었다.
나는 반항아인 줄 알았다. 남들과 다른 길을 선택한 줄 알았다. 하지만 돌아보면, '무엇에 반항할 것인가'조차 주변이 정해준 프레임 안에 있었다. 국문과를 간 것은 내 선택이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래도 돈은 벌어야지"라는 생각은 어디서 온 것인가. "포르쉐를 타야 성공한 거지"라는 이미지는 누가 심은 것인가.
혹시나 해서, 정말로 포르쉐 911 계약을 해봤다. 전혀 설레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한 게 있었다. 10년 넘게, 내 버킷리스트 1번은 바뀌지 않았다.
'바다가 보이는 집.'
노르웨이나 핀란드 같은 곳. 차가운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절벽 위. 아늑한 집. 바닥에는 낡은 모조 가죽 카펫. 벽난로. 안락의자. 커피 향. 창문으로 들어오는 따뜻한 햇살과 서늘한 바람. 책. 음악. 아무도 나를 평가하지 않는 공간.
그것이 내 심상 속에서 '나의 공간'이었다. 내가 정말로 원하는 꿈의 장소. 포르쉐 911 계약서 앞에서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던 내가, 이 장면을 떠올릴 때만큼은 가슴이 뛰었다.
그런데 현실의 나는 정반대 방향으로 달리고 있었다.
왜?
지라르를 만난 건 한 권의 책을 통해서였다. 읽고 나서 처음으로 이해했다. 반항이라고 생각했던 것들, 내 선택이라고 믿었던 것들, 심지어 "돈을 벌겠다"는 결심까지 — 전부 감염된 복사본이었다. 반면 10년 동안 변하지 않았던 그 장면 — 바다, 절벽, 벽난로, 안락의자 — 그것이야말로 감염되지 않은 나의 원본이었다.
그 순간 모든 것이 설명됐다.
술자리에서 변호사가 된 친구의 연봉을 들었을 때, 집에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하루가 무너졌던 것. 그 친구의 삶을 원한 적도 없으면서. 변호사가 되고 싶었던 적도 없으면서. 그런데 그 숫자 하나가 나를 완전히 부숴버렸다. 그것도 같은 코드로 작동하고 있었다.
모방 욕망.
나는 누군가의 욕망을 복사해서 내 것인 줄 알고 살아왔다. 그리고 그 복사본이 원본과 일치하지 않을 때마다, 나를 탓했다.
이것이 내가 겪은 감옥이다. 그리고 아마, 당신이 지금 갇혀 있는 감옥이기도 하다.
이 바이러스가 무서운 이유가 있다.
첫째, 보이지 않는다. 당신은 자신의 욕망이 복사본이라는 사실을 모른다. "내가 진짜 원하는 거야"라고 확신한다. 그 확신 자체가 감염의 증거다.
둘째, 가까울수록 강하다. 빌 게이츠가 돈을 벌어도 당신은 아프지 않다. 하지만 동기가 돈을 벌면 밤잠을 설친다. 바이러스는 '가까운 사람'을 통해 전파된다. 당신의 동기, 당신의 친구, 당신의 선배. 가장 가까운 사람이 가장 치명적인 감염원이다.
셋째, 중독된다. 한 번 감염되면 끝이 아니다. 승진을 해도 다음 승진이 보인다. 명품을 사도 다음 명품이 보인다. 욕망은 충족되는 게 아니라 증식한다. 복사본 위에 복사본이 쌓인다.
그 결과가 무엇인가.
당신은 끊임없이 달리지만, 결승선은 영원히 도착하지 않는다. 왜? 결승선 자체가 당신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결승선을 빌려서 달리고 있으니까. 그 사람이 결승선을 옮기면, 당신의 결승선도 옮겨진다. 이 게임에서는 아무도 이기지 못한다.
당신의 지독한 피로감. 아무리 해도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 성취해도 만족하지 못하는 반복.
전부 이 바이러스의 증상이다.
이 책은 위로하지 않는다.
"괜찮아, 너는 충분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 말은 거짓이기 때문이 아니라,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당신은 충분하다는 말을 백 번 들어도 인스타그램을 끄지 못한다. 문제는 자존감이 아니라, 시스템이다. 당신의 욕망을 조종하는 보이지 않는 시스템.
이 책은 그 시스템의 설계도를 공개한다.
1부에서는 직장을 해부한다. 왜 당신은 동기의 승진에 미치도록 흔들리는가. 왜 존경했던 멘토가 어느 날 갑자기 적이 되는가. 왜 '공정함'을 외치는 당신이 오히려 더 불행해지는가. 당신의 직장은 노동의 현장이 아니라, 모방 욕망의 전쟁터다.
2부에서는 SNS를 해부한다. 인스타그램은 욕망을 '보여주는' 곳이 아니라 '만드는' 곳이다. 당신이 줄 서서 사는 그 빵, 품절 대란에 뛰어드는 그 운동화. 그 욕망의 출처를 추적한다.
3부에서는 관계를 해부한다. 가장 불편한 진실이 여기에 있다. 왜 가장 가까운 사람이 가장 상처를 주는가. 왜 집단은 늘 만만한 한 사람을 제물로 삼는가. 직장 내 따돌림, SNS 조리돌림, 가스라이팅. 이 모든 것이 하나의 코드로 작동한다. 지라르가 '희생양 메커니즘'이라고 부른 그것. 쉽게 말하면, 집단이 내부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만만한 제물을 선택하는 코드다.
4부에서는 무기를 준다. 진단만 하고 끝나는 책이 아니다. 당신이 이 바이러스로부터 탈출하는 4단계를 설계한다. 인정하기. 거리두기. 선언하기. 창조하기. 추상적인 마인드셋 강의가 아니다. 당장 내일부터 실행할 수 있는 물리적 행동을 지시한다.
한 가지만 약속한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당신은 인스타그램을 같은 눈으로 보지 못하게 된다. 직장 동료의 소식을 같은 방식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된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뭐지?"라는 질문을, 처음으로 진지하게 던지게 된다.
그것이 해독의 시작이다.
밤 11시 47분. 당신은 아직 침대에 누워 있다.
하지만 이제, 왜 그 사진이 당신의 밤을 삼켰는지 안다. 그것은 질투가 아니었다. 당신이 약해서도 아니었다.
당신은 감염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 책은, 그 감염의 해독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