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 동기 단톡방에 메시지가 올라왔다.
"재현이 승진했대."
누군가가 축하 이모지를 보냈다. 다른 누군가가 "오 대박"이라고 답했다. 당신도 축하한다고 짧게 쳤다.
그리고 밥맛이 사라졌다.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아무 표정도 짓지 않았다. 그런데 속이 뒤집어지고 있었다. 설명할 수 없는 감정. 분노는 아니다. 슬픔도 아니다. 그냥 — 뭔가 무너지는 느낌. 바닥이 빠지는 느낌. 아까까지 멀쩡했던 하루가, 카톡 한 줄로 폐허가 됐다.
재현이. 같은 해에 입사했다. 비슷한 프로젝트를 했다. 비슷한 야근을 했다. 비슷한 성과를 냈다. 적어도 당신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재현이가 먼저 올라갔다.
당신은 이 감정을 '억울함'이라고 이름 붙인다.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내가 부족해서? 정치를 못 해서? 팀장이 편애해서?
틀렸다.
당신이 지금 느끼는 감정의 진짜 이름은 따로 있다.
질문 하나를 던지겠다.
당신은 정말로 팀장이 되고 싶었는가?
진지하게 생각해봐라. 팀장이 되면 무엇이 달라지는가. 회의가 늘어난다. 보고가 늘어난다. 팀원 관리를 해야 한다. 실무에서 손을 떼야 한다. 연봉은 오른다. 하지만 당신이 좋아하는 일 — 직접 기획하고, 직접 만들고, 직접 성과를 내는 일 — 에서는 멀어진다.
그걸 알면서도, 당신은 팀장이 되고 싶다.
왜?
재현이가 됐으니까.
재현이가 팀장이 되기 전, 당신의 머릿속에 '팀장'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자주 떠올랐는지 떠올려봐라. 솔직하게. 아마 거의 없었을 것이다. 자기 프로젝트에 집중하고 있었다. 다음 분기 목표를 고민하고 있었다. 팀장은 먼 미래의 일이었다. 혹은 아예 관심 밖이었다.
그런데 슬랙 알림 하나가 모든 것을 바꿨다.
갑자기 팀장이 되어야 할 것 같다. 갑자기 내가 뒤처진 것 같다. 갑자기 내 커리어가 실패한 것 같다.
이것이 모방 욕망의 첫 번째 작동 방식이다.
당신은 '팀장'을 원한 게 아니다. 재현이가 원하는 것을 똑같이 원한 것이다.
르네 지라르는 이 구조를 '삼각형'으로 설명했다.
욕망에는 언제나 세 꼭짓점이 있다. 당신(주체), 대상(팀장 자리), 그리고 모델(재현이). 우리는 욕망이 '나→대상'의 직선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팀장을 원한다. 끝.
하지만 현실은 직선이 아니다. 삼각형이다.
당신은 재현이를 본다. 재현이가 팀장을 원한다. 재현이가 팀장이 된다. 그 순간, 당신도 팀장을 원하게 된다. 욕망은 '나→대상'이 아니라 '나→모델→대상'으로 흐른다. 모델이 없으면, 욕망도 없다.
이것을 지라르는 '욕망의 삼각형'이라고 불렀다.
증거는 간단하다. 만약 재현이가 아니라, 당신이 전혀 모르는 다른 부서의 누군가가 팀장이 됐다면? 아마 아무 감정도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아, 그 사람 승진했구나." 그걸로 끝이다. 화장실에 가지도 않았을 것이다.
당신을 무너뜨린 건 '팀장 승진'이라는 사건이 아니다. '재현이의' 팀장 승진이라는 사건이다. 대상이 아니라 모델이 문제다.
여기서 한 가지 불편한 진실을 꺼내야 한다.
재현이는 누구인가. 당신의 적인가? 아니다. 당신의 동기다. 같이 입사했다. 같이 야근했다. 같이 점심을 먹었다. 가끔 퇴근 후 맥주도 마셨다. 당신은 재현이를 싫어하지 않는다. 오히려 좋아할 수도 있다. 어쩌면 존경하는 부분도 있다.
바로 그것이 문제다.
지라르는 욕망의 모델을 두 가지로 나눴다. '먼 모델'과 '가까운 모델'. 먼 모델은 당신과 접점이 없는 존재다. 연예인, 재벌, 역사 속 위인. 이 사람들의 성공은 당신을 아프게 하지 않는다. 일론 머스크가 로켓을 쏘아도 당신의 밤은 무너지지 않는다. 너무 멀기 때문이다. 경쟁 자체가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까운 모델은 다르다. 같은 해에 입사한 동기. 같은 학교 출신 친구. 비슷한 나이, 비슷한 이력, 비슷한 출발선. 이 사람이 올라가면, 당신은 산산조각 난다. 왜? 비교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나도 저기 있을 수 있었는데"라는 생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지라르의 언어로 말하면, 먼 모델은 '외적 매개', 가까운 모델은 '내적 매개'다. 쉽게 번역하면 이렇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 가장 위험한 감염원이다.
당신은 재현이와 가깝기 때문에 재현이의 욕망에 감염된 것이다. 재현이가 올라갔기 때문에 당신도 올라가야 한다고 느끼는 것이다. 만약 재현이가 다른 부서였다면, 다른 회사였다면, 다른 나라에 살았다면 — 당신은 팀장에 관심조차 없었을 것이다.
이 구조가 직장에서 특히 치명적인 이유가 있다.
직장은 '가까운 모델'의 밀집 지역이다. 같은 시간에 출근하고, 같은 공간에서 일하고, 같은 기준으로 평가받는 사람들이 밀집해 있다. 비교의 조건이 완벽하게 갖춰져 있다. 학교를 졸업하면 동창과 물리적으로 떨어진다. 하지만 직장 동료는 매일 만난다. 매일 비교당한다. 매일 감염된다.
그리고 직장은 이 감염을 부추기는 시스템까지 갖추고 있다.
인사평가. 등급제. 상대평가. 승진 공지. 연봉 협상. 이 모든 것이 "당신 옆의 사람과 비교하라"는 신호다. 회사는 당신에게 이렇게 속삭인다. "재현이는 S등급이야. 너는?" 회사가 의도한 건 '건전한 경쟁'일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발생하는 건 모방 욕망의 전염이다.
당신은 자기 일에 집중하고 싶다. 하지만 시스템이 허락하지 않는다. 옆 사람의 성과가 슬랙에 공유되고, 승진자 명단이 전사 메일로 발송된다. 당신의 눈은 자동으로 그 이름을 훑는다. 내 동기는 있는가. 나보다 늦게 들어온 사람은 있는가.
그 순간, 감염이 시작된다.
더 무서운 이야기를 하겠다.
모방 욕망은 한 번 작동하면, 연쇄 반응을 일으킨다.
재현이가 팀장이 됐다. 당신이 뒤틀렸다. 그런데 당신만 뒤틀린 게 아니다. 같은 해 입사한 수진이도 뒤틀렸다. 영호도. 민정이도. 모두가 같은 모델(재현이)의 욕망에 동시에 감염됐다.
이제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모두가 팀장을 원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자리는 하나다. 다섯 명이 같은 것을 원한다. 어제까지 동료였던 사람들이 오늘부터 경쟁자가 된다. 점심 메뉴를 고르던 사이가, 성과를 뺏는 사이가 된다.
지라르는 이것을 '동일성의 위기'라고 불렀다. 모두가 같은 것을 욕망할수록, 모두가 같아진다. 같아질수록, 차이가 사라진다. 차이가 사라질수록, 더 격렬하게 싸운다. "나는 재현이와 다르다"고 증명해야 하는데, 원하는 것이 똑같으니까 증명할 방법이 없다. 남은 건 서로를 깎아내리는 것뿐이다.
회의에서 동료의 아이디어를 슬쩍 깎아내린다. 팀장 앞에서 자기 성과를 과하게 어필한다. 뒤에서 누군가의 실수를 흘린다. 당신이 '사내 정치'라고 부르는 것의 정체가 이것이다. 능력의 문제가 아니다. 성격의 문제가 아니다. 같은 욕망을 가진 사람들이 같은 공간에 갇혀 있을 때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구조적 폭력이다.
당신이 직장에서 느끼는 피로감. 회의가 끝나고 느끼는 허탈감. "왜 다들 이러지?"라는 의문. 전부 이 구조 안에서 작동하고 있다.
여기서 한 발짝만 더 들어가겠다.
당신은 아마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나는 순수하게 성장하고 싶어서 승진을 원하는 거야. 남과 비교해서가 아니라."
점검해보자.
만약 이 회사에 당신 혼자만 있다면? 동기도 없고, 비교 대상도 없고, 승진 공지도 없다면? 당신은 여전히 팀장을 원하는가?
아마 원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은 자기 프로젝트에 몰두할 것이다. 더 좋은 기획을 만들 것이다. 더 깊이 있는 실무를 할 것이다. '팀장'이라는 타이틀은 떠오르지도 않을 것이다.
그런데 옆에 재현이가 있다. 재현이가 올라간다. 순간, 팀장이 당신의 욕망이 된다.
이것이 모방 욕망의 가장 교활한 점이다. 당신은 이것을 '성장 욕구'라고 포장한다. "나는 더 높은 곳을 원하는 사람이야." 하지만 실제로는, 재현이라는 모델이 당신의 욕망을 설계한 것이다. 당신은 설계도를 읽고 있으면서, 자기가 설계했다고 착각하고 있다.
물론, 모든 승진 욕구가 모방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순수하게 리더십을 발휘하고 싶은 사람도 있다. 팀을 이끄는 것 자체에서 보람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정직하게 물어봐라. 당신의 승진 욕구는 동기의 승진 '이전'에 존재했는가, '이후'에 생겨났는가. 그 순서가 전부를 말해준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장에서 무기를 전부 꺼낼 순 없다. 그건 4부의 몫이다. 하지만 하나만 말하겠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이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행위는 '알아차리는 것'이다.
다음에 동료의 승진 소식을 듣고 속이 뒤틀릴 때, 3초만 멈춰라. 그리고 물어봐라. "나는 이것을 정말로 원했는가, 아니면 이 사람이 원하니까 나도 원하게 된 것인가."
대부분의 경우, 답은 후자다.
그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바이러스의 힘은 약해진다. 감염의 첫 번째 조건은 '모른다는 것'이다. 내가 감염되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순간, 바이러스는 은신처를 잃는다.
당신은 아직 해독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바이러스의 얼굴을 봤다.
다음 장에서는 더 불편한 이야기를 하겠다. 당신이 존경하는 멘토. 당신이 배우고 싶어 하는 선배. 그 사람이 어떻게 당신의 가장 위험한 감염원이 되는지. 존경이 어떻게 질투로, 멘토가 어떻게 괴물로 변하는지. 그 메커니즘을 해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