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를 준비하느라 바쁜 와중에도 틈틈이 대리운전을 뛰어야 합니다. 당장 내일 사 먹을 밥값 정도는 벌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대리운전을 뛰다 보면 유난히 호기심 많은 고객이 종종 계십니다. 오늘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이런 일 할 사람으로 안 보이는데, 직장 다니면서 투잡 뛰시는 거죠?''
방금 모셔다 드린 고객은 호기심이 많으셨습니다. 말끔한 슈트에 짝 빠진 코트, 브랜드 있는 백팩을 걸친 모습을 근거로 제가 '대기업 다니는 사람'이라는 결론까지 내리셨습니다.
제가 피식 웃기만 하니 답답해하시며 자신이 하는 일을 쭉 풀어놓습니다. 그러고 나서 재차 묻습니다.
''기사님, 도대체 뭘 하는지 말해주세요. 나 하는 일이랑 비슷하면 서로 돕고 시너지도 내자고요. 딱 보니 사무직인데...''
''고객님, 저는 예전 석유류 회사 경영기획실에서 일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백수예요. 백수여서 이것저것 맘껏 하면서 살았는데, 이제 백수 그만하고 다른 거 하려고요.''
''오, 뭐 좋은 아이템 찾으셨나 봐요. 저는 여러 번 말아먹어서 뭐 새로 하는 거 웬만해선 추천하지 않는데요.''
나는 깊이 심호흡하고 말을 꺼냈습니다.
''저는 이제 정치인이 되려고 합니다. 세상을 바꾸는 일을 하고 싶어서요. 사표 쓰고 난 뒤 지금까지 시민운동을 해왔어요. 공동체 운동이란 표현이 더 적절하겠네요. 비판하고 요구했던 입장을 넘어서 이제 결과를 내고 책임을 지는 정치를 할 때가 됐다고 생각했어요.''
고객님은 적잖이 놀랐는지 곧바로 대답하지 않고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난 어색함을 풀고 싶어 명함 하나를 꺼내서 고객님께 건네드렸습니다. 명함을 유심히 보던 고객님이 건넨 말이 어색함을 깼습니다.
''오, 인상이 참 좋으세요. 명함 잘 만드신 거 같은데요? 그 힘들다는 정치를 하시는 게 걱정되긴 해요. 뭐 그런 거 있죠. 써먹고 버리는 그런 거. 기사님이 그렇게 되신다는 건 아니고요. 그냥 정치가 멀쩡한 사람을 갖다 쓰고 버리는 걸 많이 봐서요.''
고객님은 진심 어린 걱정을 해 줬습니다. 사실 정치판에서 별똥별처럼 등장했다가 금세 사그라진 사람들이 적지 않았으니까요.
''고객님, 걱정 감사합니다. 명심하고 조심할게요. 그런데 저는 버려진다고 생각하지 않고요, 그래서 누구에 의해 내 역할이 주어지는 걸 원치 않아요. 저에게 정치란 끊임없이 내가 해야 할 역할과 내가 있어야 할 자리를 스스로 만들어 내는 거라고 보거든요.''
그 사이 고객님의 집에 도착했습니다. 반듯하게 주차하고 나니 뿌듯했습니다. 그리고 대화 중에 내 생각이 정리된 듯하여 기분도 좋았습니다. '정치란 내 역할과 자리를 스스로 만들고 찾아가는 것', 잊지 말고 기억해야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