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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정현 Dec 08. 2023

나는 대리운전기사가 되기로 했다.


나는 대리운전기사가 되기로 했다.


나의 본업은 활동가이다. 세상을 바꾸는 일에 관심이 많다. 그러나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누구의 지시도 없고 정해진 출근시간이 없는 일이 필요했다. 대리운전기사가 되기로 했다. 

대리운전기사 면접을 앞두고 적잖이 긴장이 됐다. 사실 취업준비생 기간이 유난히 길었던 덕분에 내가 썼던 이력서만 해도 500개가 넘었다. 숱하게 면접을 봤지만 오랜만에 보는 면접심사라 적잖이 떨렸다. 


벌이가 일정치 않았던 나에게 대리운전기사일은 사막 한가운데 있는 오아시스 같은 일이었다. 대리기사에 대한 대리운전업체의 부당한 처우를 합리적으로 개선했다고 평가받는 카** 회사에 입사지원을 했다. 그리고 2주일이나 기다려 드디어 오늘 면접을 보게 되었다.


보험가입절차와 대리기사 인증사진촬영을 마치자 곧이어 그룹면접이 시작되었다. 면접관 1인에 면접자 4인이 마주 보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자리에서 나는 인상 깊은 질문을 받았다.


''취객이 당신의 몸을 가격한다. 쉼 없이 당신을 때리며 주사를 부린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5년 전 대리운전기사를 할 때 비슷한 경험을 했다. 경찰을 부르면 쉽게 해결 것 같지만 그러면 그날 대리운전은 종 쳐야 한다. 이 질문에 대한 모법답안은 이렇다.


''상해를 입거나 안전운전에 위해가 되지 않는다면 인내해 봅니다. 그러나 안전에 위해가 된다고 판단되면 고객의 불편사항을 듣고 곧바로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어 고객과 통화를 하게 하고 필요하다면 다른 기사로 교체해 줄 것을 요청합니다. 만약 불쾌하다고 고객을 방치하고 가버리면 대형사고가 날 수 있으니 조치가 취해질 때까지 기다립니다.''


이 대답을 듣고 난 뒤 면접관은 매우 흡족해했다. 오늘 면접 중 가장 느낌이 좋다고. 사흘 뒤 결과발표가 난다는데 적잖이 탈락한다고 했다. 오랜만에 떨리는 마음으로 합격자 발표를 기다려 보기로 했다.

땀 흘려 버는 천 원 한 장의 소중함을 배우는 일, 전혀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는 설렘을 주는 일, 시민들의 속 깊은 얘기를 경청하는 일, 고달픈 일과 속에서 희망을 품는 일... 대리운전기사는 내게 그런 고마운 일이다.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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